[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전형적인 예산낭비”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을 지나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에 대한 도시계획 전문가의 말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지금부터 살펴보자.
# ‘나무'의 중요성, 국가도 알고 있다
지금 전국 지자체는 나무 심기 운동에 한창이다. 여름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아스팔트 위, 빌딩 숲 더위를 식혀줄 가장 좋은 대안은 ‘나무’에 있다.
봄날 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미세먼지를 걱정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를 해결할 방안 역시 ‘나무’다.
산림청에 따르면, 복잡한 표면을 가진 나뭇잎은 미세먼지를 흡착, 흡수하고, 나뭇가지와 줄기는 미세먼지를 차단한다.
나무가 많은 곳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 높은 습도인 곳이 많다. 이곳에서 미세먼지는 아래로 가라앉게(침강하게) 되는데, 이는 공기 중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효과로 이어진다.
이처럼 나무와 숲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좋은 영향은 더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것 같다.
이에 산림청에서는 매년 전국 단위의 나무심기 계획을 수립, 시행 중이다.
산림청에서 밝힌 ‘2019년 나무심기 추진계획’에 따르면, 제주, 남부해안 등의 난대지역부터 경기, 강원 등 온대북부 지역까지 전국 단위로 나무 심기가 펼쳐진다.
2019년 나무심기 추진계획에 들어가는 총 예산은 2180억원이다. 올해 제주도에는 20억원이 투입되는데 소나무, 편백나무 등 제주 기후의 특성에 맞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 돈 들여서 나무 심는 판국에, 돈 들여서 없애겠다는 제주도
우후죽순 들어서는 미분양 건축물 사이, 사라져가는 푸른 숲. 제주도민이라면 몸소 체감하고 있는 문제다. 국민의 쾌적한 삶을 위해 푸른 숲을 지키자는 것이 국가가 ‘나무 심기’에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아이들이 뛰노는 녹지를 없애고, 도로를 만들겠다는 어른들이 있다.
바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 사업을 추진하는 어른들이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 사업은 1965년 3월 4일 수립된 계획이다. 사업비는 약 1237억원, 서귀포시 서홍동에서 동홍동까지 약 4.2km에 이르는 구간에 6차로 도로를 개설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 어른을 위한 도로, 아이들은 위험해요
그런데 문제가 있다. 제2구간으로 불리는 서귀포시학생문화원(이하 문화원) 앞을 지나는 약 1.5km 구간의 도로때문이다.
도로가 개설되면, 문화원 앞의 잔디광장과 소나무 숲이 사라질 예정이다.
이곳 잔디광장과 소나무 숲은 아이들이 자주 왕래하는 곳이다. 문화원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지나는 곳이고, 매년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행복 어린이 대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도로가 생기면 이러한 아이들의 놀이터가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잔디광장과 소나무 숲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넘어 아이들의 ‘안전’ 문제와도 직결된다.
개설될 도로는 문화원 입구 바로 앞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이 문화원을 나서서 바로 마주하는 풍경이 지금의 잔디광장이 아닌, 차들이 쌩쌩 달리는 6차선 도로가 되는 것이다.
사진으로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문화원 입구와 도로가 개설될 위치 간 거리가 너무나 가깝다.
결국, 서귀포학생문화원과 도서관, 유치원 등 교육기관이 즐비한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가 생길 예정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위험천만한 도로가 될 수밖에 없다.
#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전형적인 예산 낭비”
4월 29일 오전 11시 30분,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 계획과 현안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문화원 2층에서 열렸다.
이날 회견은 서귀포시학생문화원, 서귀포도서관, 제주유아교육진흥원, 서귀포외국문화학습관 및 제주도교육청 관계자가 참석해 기자들에게 사업 진행 상황과 문제점을 알리는 자리였다.
문화원과 인근 교육기관, 제주도교육청은 ‘지하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사업 중, 문화원을 지나는 약 350m 부근만 지하도로로 만들자는 것이다. 지상도로로 6차선 도로가 생길 시,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는데, 이를 대비해 내세운 교육기관의 차선책이다.
회견에서는 이러한 문화원 측의 상황 설명 후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지면, 이날 회견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을 찬성하는 주민 및 인근성당 관계자 등이 갑자기 그들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기 시작하면서 원활한 진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회견 자리에서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을 찬성하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은 50년간 기다려온 마을의 숙원 사업이다. 사업을 찬성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도 들어달라.”
서귀포시의 경우 도시를 관통하는 도로가 존재하는데, 단 하나 뿐이다. 바로 일주도로로 불리는 1132번 도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서귀포시 서홍동과 동홍동 지역 주민들은 ‘도시우회도로 사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 이곳에 정말 ‘도시우회도로’가 필요한 걸까?
<미디어제주>가 자문을 구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전형적인 예산 낭비다. 장기 미집행 도로사업이라고, 다 할 필요는 없다” 라고.
그렇다. 이 사업은 장기간 중단된 바 있는 ‘장기 미집행 도로사업’이다. 앞서 언급했듯 첫 계획은 1965년에 수립됐다.
해당 전문가는 문화원과 이어지는 동홍로 도로건설 구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동홍로에서 토평으로 이어지며 건설될 도로는 사진상 제3구간으로, 약 1.6km거리에 이른다. 현재 이곳은 2차선 도로가 나 있는 상태로, 이를 6차선까지 늘리려면 어마어마한 공사비가 투입된다. 대충 어림잡아도 수백억 예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 전문가는 “2차선밖에 안 되는 도로를 6차선으로 확장하려면 도로개발비용이 어마어마하다”면서 “총 폭이 35m 도로가 건설될 예정인데, 일주동로보다 넓은 폭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문가는 “이렇게 엄청나게 넓은 도로가 뭐가 필요한가”라며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는 필요 없는 사업”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로가 건설될 예정인 4.2km 구간의 위, 아래로는 각각 중산간동로와 일주동로가 지난다. 두개 도로 모두 서귀포시 지역을 관통하는데, 중산간동로는 2차선, 일주동로는 4차선의 잘 정비된 도로다.
전문가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며 인근의 중산간동로, 일주동로를 이용하면 될 것인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발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한편, 29일 회견이 중단된 자리에서 한 주민이 한 말이 있다.
“지하도로로 (건설)하면 땅값을 안 쳐준다. 잔디밭을 없앤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들이 노는 데 지장 없다. 너무 지하도로로 (건설)하겠다는 주장을 접어주고, 지역주민을 생각해달라.”
해당 주민은 솔직하게 자신의 재산권에 대한 이야기를 고백한 것이라고 본다.
자, 그렇다면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 계획은 누구를 위한 사업일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