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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이전 당시 제주향교 대성전 모습 첫 확인
90년 전 이전 당시 제주향교 대성전 모습 첫 확인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8.10.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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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본부, 제주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한 발굴조사 결과 공개
월대와 마당 바닥 전체적으로 벽돌 깔려있고 보도시설 등 설치 확인
2018년 발굴조사 후 제주향교 대성전의 모습.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2018년 발굴조사 후 제주향교 대성전의 모습.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제주향교가 1828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을 당시의 원래 대성전 모습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올 4월부터 (재)제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고재원)에 의뢰, 보물 제1902호인 제주향교 대성전 발굴조사를 추진한 결과 순조 28년인 1828년 이행교 제주목사에 의해 제주향교가 현재 위치로 이전할 당시 원 모습이 최초로 확인됐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지난해 대성전 주변에 변형된 돌담 정비공사를 하던 중 일부 구간에 대한 해체 작업이 이뤄지면서 과거 철거돼 사라져버린 서무(西廡)의 초석으로 추정되는 원형 유구가 확인되면서 조사가 시작됐다.

모두 1억3000만원(국비 9100만원, 도비 3900만원)의 발굴 비용이 투입된 이번 조사에서는 대성전 앞 월대(月臺)와 앞마당 등 651㎡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 대상지에는 전면적으로 잔디가 깔려 있었고 월대(月臺)의 기단석과 석축, 1952~53년 훼철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무·서무(東廡·西廡)와 관련한 초석 및 석렬, 중앙의 신도(神道)가 표면에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제주향교의 월대와 마당의 바닥면이 전체적으로 전(塼, 벽돌)이 깔렸고 중앙에 신도(神道)와 더불어 동무와 서무 앞에도 보도시설이 설치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또 동무와 서무의 터에서 각각 2매씩의 대칭되는 문주석(門柱石)과 건물의 서편 경계에 해당하는 기단석렬이 출토돼 기존 문헌과 사진자료로 추정하고 있던 본 건물의 세로 폭이 4.8m 가량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동·서무의 존재가 본 조사범위 외에 제주중학교 운동장까지 연장돼 있어 정확한 전체 길이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다수의 기와편이 출토됐는데 이 중에는 ‘수성(守城)’과 ‘임신(壬申)’이라 새겨진 명문기와도 확인됐다.

기와에 새겨진 ‘수성(守城)’은 성문거교군(城門擧橋軍)이 근무했던 ‘수성소(守成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유사한 기와는 제주목관아를 비롯한 오현단 부근의 제주성과 운주당 터에서 발견되고 있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는 향후 제주향교와 대성전의 원형 정비·복원 방향을 설정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제주 향교의 옛 위용을 회복하는 데 힘써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발굴조사가 시작되기 전 제주향교 대상전 전경.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2018년 발굴조사가 시작되기 전 제주향교 대상전 전경. /사진=제주도 세계유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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