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 날을 버틴 강정친구들, 우리가 구럼비다”
“4천 날을 버틴 강정친구들, 우리가 구럼비다”
  • 김은애 기자
  • 승인 2018.04.28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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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결성 4000일 문화제
강정마을 예술가 및 활동가, 주민 다수 참여
문화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비폭력 축제의 장
강정마을로 가는 길, 해군기지 반대싸움 3999일이 되었음을 알리는 입간판.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결성 4000일 하루 전, 4월 28일 해군기지관사 맞은편 공간에 강정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 4000일 문화제’를 찾은 이들이다.

귤꽃향이 물씬 풍기는 봄날의 오후.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문화제는 강정평화활동가 민경 씨의 여는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4000일 투쟁의 시간 중 한 조각으로서 개인의 경험을 드러낸다는 취지로 기획된 퍼포먼스였다.

'허울놓은 평화의 섬'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린 해군기지관사 앞, 민경 씨가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다.

해군기지관사의 입구 앞, 보도블록에 누운 민경 씨는 “지금 제가 베고 있는 것은 공소장입니다. 주로 업무방해의 이유로 저에게 날아온 공소장이죠. 재판은 현재 몇 년째 멈춰진 상태입니다”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 그녀는 교도소 생활 중 강정마을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해군기지건설에 대한 우려와 앞으로의 계획 등 당시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부르는 민경 씨.

퍼포먼스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모두 함께 부르며 끝이 났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의 가사를 읊조리는 강정 사람들의 눈가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반짝였다.

문화제 공연 전, 해군기지반대주민위원회 강동균 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강동균 회장이 마이크를 들자 강정마을 사람들은 큰 환호로 화답했다.

새롭게 결성된 해군기지반대주민위원회의 강동균 회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강 회장은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가 해군기지반대주민위원회로 다시 태어났다. 앞으로 해군기지반대주민위원회를 공식 단체로 등록해 활동할 것이다”라는 결의를 다졌다.

이어 강 회장은 “우리는 국가가 정의롭기를 원했다. 우리는 행정기관이 깨끗하기를, 그리하여 사회가 평화롭기를 원했다. 그러나 해군이라는 군대조직이 주민을 상대로 사기를 쳤고, 경찰은 해군의 앞잡이로 일하며 주민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다”라며 지난 시간을 평가했다.

강 회장은 “오는 10월 강정 해군기지에서 ‘2018년 대한민국 국제관함식’을 개최한다고 한다. 관함식이 개최되면 미군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을 비롯한 전 세계 군함들이 제주 앞바다로 몰릴 것이다”라며 국제관함식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강 회장은 “해군은 강정 주민들과의 갈등을 먼저 해소한 후, 주민과 상생할 수 있을 때 관함식을 개최해도 늦지 않다”라며 “현재 해군기지는 준공되었지만, 그로 인한 마을의 질적 향상은 하나도 없다. 때문에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의 맥을 이어 탄생한 해군기지반대주민위원회는 존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다짐을 했다.

한편, 2007년 5월 18일 결성된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는 그동안 강정의 마을회장이 위원장직을 맡아왔다. 하지만 2017년 12월 새로운 마을회장으로 선출된 강희봉 씨가 위원장직에 대한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는 사실상 해체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강정마을 사람들은 해군기지반대주민위원회를 새로이 결성했다. 해군기지를 반대한다는 명맥은 잇되, 이름을 바꿔 활동한다는 취지다.

문화제는 평화를 노래하는 뮤지션들의 노래 공연으로 꾸며졌다.

강정지킴이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조약골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강정지킴이로 살며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가사로 쓰는 싱어송라이터 ‘조약골’은 애국자가 없는 세상 등을 노래로 불러 아픈 현실을 희극으로 승화시켰다.

강정마을의 활동가들이 현수막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화제에 참석한 ‘멸치활동가’는 “여기 모인 친구들은 구럼비가 발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이들이다. 해군기지 준공식을 하며 군함에서 축포를 터뜨릴 때, 강정마을에서는 생명평화선포식을 했다. 총과 칼, 무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생명과 평화를 문화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선포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번 문화제도 마찬가지다. 폭력과 맞서기 위해 비폭력의 방식을 선택한 강정친구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강정, 그리고 제주의 평화”라는 소감을 밝혔다.

4000일 문화제의 '기억미술전' 오프닝 행사로 테이프 컷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좌)문정현 신부가 문화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강정에는 특별한 속담이 하나 있다. 바로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속담이다. 우스갯소리로 보일지 몰라도,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평화를 외쳤던 마을 사람들의 숨가쁜 일상이 담긴 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투쟁했으며, 지금도 자신의 자리에서 목청높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정 사람들은 ‘투쟁 4000일 성명서’를 통해 “우리가 평화다”라고 외쳤다. 비록 구럼비는 폭파되어 조각조각 흩어졌지만, 강정에는 스스로 구럼비를 자처하며 4천 날을 버틴 강정친구들이 있다.

강정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날까지 이들은 바위가 되어 굳건히 평화를 지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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