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측 공개서한 수령 거부, 대표단 일행 40여분간 연좌농성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70년 동안 제주 섬 안에서만 풀지 못한 한을 꾹꾹 눌러담고 살아온 제주도민들의 한 맺힌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에 울려퍼졌다.
4월의 꽃을 시샘하는 한파가 몰아친 7일 오후 광화문 광장. 이날 이 곳에서는 4.3을 ‘항쟁’으로 명명한 ‘제주4.3항쟁 70주년 광화문 국민문화제’가 열렸다.
광장에 서있는 세종대왕상 바로 뒤에는 4.3 당시 스러져간 3만여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돼 있었다. 분향소에는 문화제 참석을 위해 상경한 제주도민들과 전국 20곳에서 분향소를 운영한 뒤 ‘평화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에서 온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동백꽃 만들기를 비롯한 모두 60여개의 체험 부스에서는 4.3을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오후 6시30분부터 ‘70년, 끝나지 않는 노래’를 주제로 시작된 국민문화제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참석했다.
가장 먼저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원희룡 지사는 “이제 더 이상 이념 때문에 편을 갈라놓고 서로를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진정한 평화와 상생의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다짐을 해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석문 교육감은 “70년 전 제주에서 울려퍼진 인간이 존중받은 사람사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평화로운 하나된 나라, 바로 그 외침이 광화문 이 곳에서 촛불 시민혁명의 승리로 귀결됐다”면서 “한라에서 불어온 평화의 봄이 이 광화문을 넘어 백두까지 이어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대표는 “제주4.3이 이 곳 광화문 광장에 오기까지 무려 70년이 걸렸다”면서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여야 모두 힘을 합쳐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개별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사우스카니발의 흥겨운 리듬으로 문을 연 국민문화제는 4.3 프로젝트 밴드의 공연과 4.3의 아픔을 마임으로 표현한 ‘일어나요, 할망’에 이어 민중가수 최상돈의 4.3평화합창단과 함께 부른 ‘애기 동백꽃의 노래’와 ‘잠들지 않는 남도’가 불려졌다.
또 극단 ‘경험과 상상’은 4.3의 도화선이 됐던 1947년 3.1절 기념대회가 열린 제주시 관덕정 광장을 재현해냈고, 2부 순서는 안치환과 자유, 멜로망스에 이어 전인권 밴드의 무대를 끝으로 문화제가 모두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오후 제주4.3유족회와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4.3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이 끝난 직후 이들은 미 대사관에 공개서한을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상황에 부담을 느낀 미 대사관측이 수령을 거부하자 대표단이 연좌농성에 들어가는 돌발 상황이 빚어졌다. 결국 미 대사관측이 주말이 지난 후 9일 중 다시 방문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40분만에 농성이 마무리돼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