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개마을 배움의 시작이 된 마을이 바로 명도암
봉개마을 배움의 시작이 된 마을이 바로 명도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2.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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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개마을 아이들] <5> 명도암을 가다

김진용이라는 유학자라부터 마을 이름 유래
오래전부터 멀리서 이 마을로 배우러 오기도
마을 입구에 마지막 훈장 비석도 세워져 있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봉개동은 다섯 개 마을로 구성돼 있다. 이들 마을 가운데 오름을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마을을 꼽으라면 명도암을 들 수 있겠다. 열안지오름과 칠오름(혹은 칡오름), 안세미오름에 둘러싸여 있어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마을이다.

동아리 ‘봉개마을 아이들’이 자주 가는 마을이 명도암이기도 하다. 명도암에 실제 사는 건 아니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주 들르게 됐다. 아무래도 4.3평화공원이 있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도암을 안내해 준 분은 김중환 마을회장이다. 명도암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명도암에서 살고 있다.

명도암은 산간마을이지만 마을 형성은 빨랐다고 전한다. 1620년, 광해군 12년에 이 마을 이름이 등장한다고 김중환 마을회장이 아이들에게 전해줬다.

그런데 명도암을 얘기하려면 김진용이라는 인물을 빼놓아서는 안된다. 마치 전설처럼 그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으니 아이들의 귀를 쏙 빼앗는다.

하지만 김진용이라는 인물에 앞서 알아야 할 인물이 있다. 고이지라는 인물이다. 명도암이라는 마을을 세웠다는 인물이다. 그의 무덤은 명도암에 있는 열안지오름에 자리잡고 있다. 그의 자녀 무덤과 손녀딸 무덤도 있다. 여러 무덤이 옹기종기 나열돼 있다.

명도암 김진용 선생의 부인 묘를 둘러보고 있는 봉개마을 아이들. 미디어제주
명도암 김진용 선생의 부인 묘를 둘러보고 있는 봉개마을 아이들. ⓒ미디어제주

고이지라는 인물이 명도암에 정착해서 마을을 일궜다고 하지만, 정작 마을이름은 김진용과 관련돼 있다. 김진용의 호가 바로 명도암이다. 김진용은 구좌읍 한동리 출신이지만 과거급제 후 자신의 부인을 따라서 이 마을로 오게 된다. 그 부인이 고이지의 손녀이다. 김진용은 고이지의 큰아들인 고경봉의 딸과 결혼을 해서 현재 명도암에 정착을 했다.

마을 이름을 고이지가 아닌, 김진용의 호로 삼은 건 그만큼 김진용이라는 인물이 후대에 더 큰 영향일 미쳤기 때문이다. 김진용 선생이 제주에 끼친 영향이 적잖았다. 김진용이라는 인물을 소개해주던 김중환 마을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왕자를 가르치라고 조선 중앙에서 발령을 냈는데, 김진용 선생은 후학을 가르치겠다며 제주에 있게 되지. 제주목사로 이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김진용 선생이랑 얘기하며 젊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 장수당을 세웠지.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가 되는데, 김진용 선생이 교장을 했던 것 같아.”

김중환 마을회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진용은 장수당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명도암은 예전부터 학문이 발달했다고 한다. 멀리서 명도암에 공부를 하러 오곤 했다고 한다. 함덕에서도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명도암 마을의 한학에 대한 열정을 알만하다.

명도암 입구엔 마지막 훈장 김승보라는 인물에 대한 비석도 있다. 지금은 그의 제자가 80세를 넘는다.

그런데 이상한 건 김진용 선생의 묘는 명도암에 없다. 그의 부인의 묘는 고이지 무덤 바로 남쪽에 있는데 말이다. 이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명도암이 세상을 뜨고 묘자를 택하는 일을 고전적이라는 인물이 맡게 됐다. 고전적은 열안지오름에 묻게 했다.

얼마 후에 명도암 선생이 서울에서 참봉을 지낼 때 가르쳤던 대감의 아들이 제주목사가 되어 부임해왔다. 그가 은사인 명도암 선생을 찾아본다고 와보니 이미 세상을 뜨고 없었다. 무덤이라도 찾아봐야지 하고 왔으나 아무래도 산자리가 이상했다. 그래서 묘자리는 누가 썼는지 물어봤더니 고전적이라는 인물이었다.

명도암 안세미오름 기슭에 있는 물. 예전 명도암 사람들이 마시던 물이다. 미디어제주
명도암 안세미오름 기슭에 있는 물. 예전 명도암 사람들이 마시던 물이다. ⓒ미디어제주

목사는 고전적에게 왜 바람이 부는 곳에 묻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김진용에게 섭섭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묘자리를 일부러 나쁜 곳에 택했고, 그게 들통이 났다.

목사는 이후 풍수사들을 불러 김진용의 묘자리를 알아보라고 했고, 지금은 서귀포의 명당 자리에 무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김진용 부인의 묘만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대신 명도암엔 김진용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가 안세미오름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명도암은 물도 좋았다고 전한다. 안세미오름 아래 쪽에 지금도 샘물이 있다. 김중환 마을회장은 지금도 그 물을 마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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