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집 하나…’ 누군가는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돌담으로 울타리를 둘렀지만, 대문도 없고, 마당인지 텃밭인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조그만 공간,  유채꽃 설게 피어 오는 이 맞아주고, 한 사람 오가면 그만인 길 하나로 족한 우리 이웃집,  누군가는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내 꿈은 사라지고 말리라.

부엌이며, 안방이며, 마루, 화장실 모두가 재래식,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다. 40년전 우리의 삶의 공간도 이보단 나았으리라.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세월을 초월했거나 사회를 등졌거나, 아니면 그냥 살기가 귀잖아 게으름의 가난을 파먹고 사는 사람, 혹은 자연주의자, 시 나부랭이나 쓴답시고 허울 덮고 허송세월하는 사람 …,  이 집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니다.

제주시 중산간의 조용한 마을,

애월읍 광령1리에 소재한 이 집의 주인은 김신자(여. 64세)씨,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이 초가집은 그녀가 사는 우주다.

이 우주는 그녀와 많이 닮았다.

무질서가 곧 질서이며,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그녀의 삶이고, 자유인 듯 했다.

환갑, 진갑을 넘겨 할머니가 다 된 김씨는 8살 동심에 머물러 있다. 순박하기 이를 데 없다. 긴 삶의 여정 속에 익숙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가는 것은 김씨 할머니에게 곧 도전이고 위협이다. 그래서인지 김할머니는 다녀보지 않은 길을 웬만해서는 가려 들지 않는다.

안면이 없는 사람하고는 말하기조차 꺼린다. 그냥 자연과 벗하여 살아간다.

손바닥만한 텃밭에는 마늘도 한줌, 당근도 한줌, 완두콩도 한줌, 한줌들의 식량이 자라고 있었다. 이들 작물은 김씨할머니의 식량이자 경제이기 이전에 말벗이요, 지루한 시간을 함께 해주는 동무들이다.

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피어난 유채꽃은 자라면서 계절의 변화를 일러준다.

설게 핀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조용한 봄의 낮잠을 자고 있다.

여기에선 꿈도 희망도 욕심도 없어 보인다. 시간도 멈춰선 듯 하다.

젊었을 시절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깜깜한 밤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올 만큼 “김씨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았다.”고 동네사람들은 말을 했다.

그래서 이 우주 공간에선 소리 없는 적막함이 너무 깊게 느껴진다.

며칠 전 할머니는 집 근처 비탈진 밭 언덕배기에서 달래(꿩나물)를 캐다가 굴러 넘어져 손등이 긁히고 다리를 다쳤는지 거동이 시원치 못하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병원에 모셔가거나 약을 사다줄 사람이 곁에 없는 것이다. 살아평생 배로 난 자식이 없으니 돌봐줄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다.

텃밭에서 키운 한줌 야채들을 셈 없이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씨할머니는 하루하루를 그냥 저양 살아가고 있다.

난방시설은 물론 위생시설이 전무하고 금방이라도 허물어 질 듯한 열악한 주거환경, 그래서 화재 등 각종재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그 위험천만의 주거공간에서 긴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를 둘러싼 부엌, 화장실 등 주거 공간 전체가 40년전 재래식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체되어 있다. 그런데도 문제없이 살아가는 할머니를 보는 주민들의 가슴은 더욱 안타깝다.

분명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장애등록이 아직까지 안 되어 있고, 생활보호대상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남모를 사정이 있겠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김씨할머니에겐 이 모든 것이 허상이고 무명이다.
 
#김씨 할머니에게 사랑의 손길 잇따라

이런 김씨할머니를 10여 년 넘게 돌봐온 사람들이 있다. 97년에 이장을 비롯한 새마을부녀회장, 청년회장과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광령1리 가정봉사대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 봉사대는 광령1리를 중심으로 애월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을 찾아 빨래와 청소, 목욕봉사는 물론 쌀과 반찬지원, 말벗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봉사를 해오고 있다.

광령1리 가정봉사대(회장 이굉민)는 각종 사회단체들이 추진하는 어려운 이웃돕기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사각지대의 어려운 이웃주민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 봉사대가 김씨 할머니를 가까이에서 보살펴 오고 있다.

김씨할머니의 처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광령1리 가정봉사대원 모두는 할머니에게 새집을 지어 조금이나마 안전하고 편한 삶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금껏 회원 회비만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전개해 온 터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안타까움과 걱정이 계속 이어지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EBS효도우미0700프로그램을 접하고 김씨할머니의 어려운 사연을 제주도장애인종합복지관을 통해 EBS교육방송에 전달했다. 이에 EBS교육방송측은 김씨할머니를 효도도우미0700대상자로 선정,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장애인종합복지관 양윤숙 복지사의 도움이 컸다.

EBS교육방송은 김씨할머니에게 7평 규모의 조립식 주택을 지어주기로 하고 5백만원의 예산을 지원키로 약속했고, 예산지원에 앞서 EBS교육방송은 김씨할머니의 어려운 사정을 전국에 알려 돋움을 받기로 하고, 이에 따른 방송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3일 내도하여 현지촬영에 들어갔다.

소식을 접한 애월읍주민자치위원회에서도 3백만원의 예산을 지원키로 하였으며, 광령1리 가정봉사대와 애월읍 사랑의 삼고리 현장봉사회 역시 집짓기 노력봉사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애월읍사무소는 건강검진을 통해 장애인 등록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촬영이 시작되는 날 광령1리사무소에는 강종훈 이장님을 비롯해 여러 주민들이 나와 촬영지원 등 김씨 돕기에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김씨할머니를 위한 새집은 오는 7월에 완공될 예정이며, 공사 착공에 앞서 김씨할머니의 어려운 형편과 사연이 오는 5월(12일 오후 4시20분 예정, 일주일 빨라질 수도 있음)중에 방영될 계획이다.

이렇게 김씨할머니를 돕기 위한 애월읍민의 노력이 새봄을 맞아 시작되고 있다.

광령1리 가정봉사회가 희망의 물꼬를 트면서, 지난달 13일 ‘사랑의삼고리지원협의회’, ‘노인요양자원봉사센터’, ‘개인택시봉사회’, ‘사랑의삼고리현장봉사회’, ‘장애인지원협의회’, ‘광령1리가정봉사회’등 6개 봉사단체가 뉴제주운동 실천을 위한 애월읍 사회복지자원봉사단체협의회를 창립하였는데 앞으로 이 협의체가 EBS교육방송과 함께 김씨할머니를 위한 사랑의 새집지어드리기 프로젝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나갈 계획이다. 

도민들의 아낌없는 협조와 도움이 절실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