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이 아닌 1896년에 제주 첫 소학교 등장”
“1907년이 아닌 1896년에 제주 첫 소학교 등장”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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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5> 제주 근대교육의 태동
소학교 이후 제주북초등학교 첫 보통학교로 문 열어
제주북초등학교 모형. 탐라지예 권정우 작품. ©미디어제주

 

‘길 위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팀을 꾸렸다. 혼자만으로는 ‘불가’라는 말이 딱 맞다. 원도심 곳곳을 돌며 이야기를 찾고, 자료도 만들어야 하기에 혼자가 아닌 팀을 구성하는 게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제주시 원도심의 가장 핵심적 도로였던 한짓골을 돌던 팀은 갑자기 교육에 꽂혔다. 제주 교육이라면 제주북초등학교를 떠올린다. 100년을 넘은 학교가 아닌가. 그런데 제주북초의 시작은 1907년이라고 하는데 그게 맞을까 그런 의문을 먼저 제기를 해보겠다.

 

근대교육은 서양식 교육의 도입을 말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부터 교육의 틀이 갖춰졌으나, 서양식 교육이 도입되면서 예전 교육은 낡은 것이 돼버렸다. 그래서 교육의 시점도 서양식 교육이 뿌리내리는 시기로 잡고 있다.

 

근대교육이라는 이름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제주에서의 근대교육의 시점을 찾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근대교육은 조선 고종 32년(1895)이 시발점이다. 이때 소학교가 설치된다. 조선 정부는 1895년 7월 ‘소학교령’을 공포해 초등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 같은해 8월에는 학부령 제3호로 ‘소학교규칙대강’을 공포해 소학교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소학교는 3년제 심상과와 고등과가 있었다. 다 마치면 5~6년은 된다는 말이다. 만 8세부터 15세까지를 혁령으로 정했다. 과목도 다양했다. 수신, 독서, 작문, 습자, 산술, 체조 등이 있었고 여학생을 위한 재봉 강좌도 있을 정도였다. 소학교는 남녀 모두 취학 가능하도록 돼 있었다.

 

소학교령이 공포되고 나서 서울엔 5곳의 심상소학교와 4곳의 소학교가 문을 연다. 그렇다고 서울만 소학교 교육이 이뤄진 것 아니다. 소학교령이 공포된 1895년 그 해에 수원·공주·전주 등 13곳에 소학교가 문을 연다.

 

제주는 1896년 소학교가 설립됐다고 기록이 돼 있다. 조선시대에도 <관보>가 나오는데 그 관보에 제주공립소학교의 실체를 읽을 수 있다. 1896년은 고종이 ‘건양’이라는 연호를 쓴 원년이다. 그해 11월 18일 발간된 제484호 관보에 따르면 “전석규를 11월 16일자로 제주목(濟州牧)공립소학교 교원으로 임명했다”는 글이 나온다.

 

제주목공립소학교에 소속된 교원들은 인사이동도 됐다. 광무 9년(1905) 제3269호 관보(10월 13일자)엔 부교원이던 현상휴와 정맹종을 해임하고, 강희룡과 김이행을 신임 교원으로 임용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김이행은 한달만에 해임되고, 그 자리를 장성흠이 맡게 된다.

 

조선은 근대적 교육의 시초인 소학교를 만들었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후 상황은 바뀐다. 일제는 통감부를 통해 각종 법령을 반포하고, 교육도 손질을 본다. 소학교는 사라지고 보통학교라는 이름이 1906년부터 등장한다. 보통학교는 5~6년제의 소학교를 4년으로 단축하고, 심상과와 고등과로 나눠 있던 체계도 하나로 통일한다. 입학연령도 만 8세부터 12세로 조정을 했다.

 

100주년 기념 역사관 내부에 교육의 발상지가 제주북초등학교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제주북초등학교에 있는 100주년 기념 역사관. ©미디어제주

 

일제의 압박은 제주교육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제주목’ 당시 소학교는 사라지고, 1907년 5월 새로운 이름을 단 보통학교가 등장한다. 바로 지금의 북초등학교다. 북초등학교는 제주에서 가장 오랜 학교로 올라 있다. 동문들의 힘도 막강하다. 북초등학교 내엔 ‘100주년기념역사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관은 근대교육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를 자료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자료는 물론, 동문들의 신상을 기록한 자료도 있다.

 

예전 제주북초등학교는 최고의 학교였다. 원도심의 중심이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그 자리를 잃고 있다. 원도심의 쇠락과 함께였다. 그러나 답이 없는 건 아니다. 그 답은 다음 기획에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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