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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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확
  • 승인 2017.08.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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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47>

몇 달 전부터 과학책들을 많이 읽고 있다. 또한 『과학동아』라는 잡지도 정기구독해서 읽고 있다.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따라 과학이란 분야를 정의하다면 다음과 같다.

 

‘믿기 싫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을 배우는 학문’

 

최근에 과학을 공부하며 느낀 점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모계의 유전자를 대부분 받기 때문이다.

 

자식이 있다고 치자. 엄마는 XX염색체를, 아빠는 XY염색체를 보유하고 있다. 엄마는 XX염색체를 모두 할머니에게서 받는다. 반면 아빠의 정자는 엄마의 XX염색체와 결합하여, 성별만 결정한다. 아빠가 보유한 XY염색체 중 Y에 있는 DNA를 물려주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면, 적어도 자식의 경우는 아빠에게 1/4을, 엄마에게 3/4을 받는다. 만약 내 자식이 결혼해 자식을 낳는다면 내 유전자는 확률 상 1/16을 손자에게 기여한다. 자식은 자신의 3/16. 며느리는 12/16의 유전자를 손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결국 세대가 거듭될수록 내 유전자는 거의 가치가 없어지고, 기여도도 떨어진다.

유전자로 친자검사를 할 때 보통은 ‘모계 유전자’로 검사를 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다. ‘아기공룡 둘리’를 보자.

둘리는 육식공룡인 케라토사우르스다. 둘리의 엄마는 초식공룡으로 브라키오사우루스다. 둘리는 뿔이 하나 있고, 엄마는 뿔이 없다. 둘리는 다 자라봤자 6미터이지만, 둘리 엄마는 25미터다. 둘리는 분명 1/16의 확률로 아빠를 닮았음이 분명하다.

 

유전학적으로 자식이 아빠를 닮기는 이처럼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바로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자식은 아버지를 닮아 간다. ‘물리적인 유전자 전달’ 부족은 어쩔 수 없지만, 20여 년 간의 ‘사회적인 유전자 조작’을 통해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 되어 간다.

 

히노 에이타로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를 읽으며 피식 웃는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 =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 이상한데?”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 꿈이 직업이 됐던가? 꿈은 이루고 싶은 것이고, 직업은 되고 싶은 것인데.

어제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앞서 말한 책의 구절이 떠올라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꿈이 뭐야?”

 

아이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아직까지는 공룡을 만들고 싶어. 도서관에서 공룡 만드는 법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책을 읽다 말았어.”

 

사실 아이는 최근 1년간 공룡 DNA를 추출해서 공룡을 복원하는 게 꿈이다. 당연히 직업은 과학자다.(작년에는 마법사였다.) 화석발굴은 내가 도와주기로 했다. 귀여운 공룡은 애완공룡으로 키우고, 나머지는 동물원에 팔고, 브라키오사우르스 같은 25미터짜리 공룡은 키워서 고기를 팔기로 했다. 생각만 해도 이미 부자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등애(Godfly)라고 불렀다. 등애는 잠을 자려는 소를 끊임없이 귀찮게 하여 깨어있게 만든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수없이 질문을 하여 ‘너 스스로를 알라’라며 무지(無知)를 일깨우고, 그리스인들을 진리로 향하게 했다.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자주 묻는 편이다. 꿈을 심어줄 수는 없지만, 꿈을 상기시키고 키워줄 수는 있다. 이게 아버지의 역할이다.

아이는 얼굴뿐만 아니라 손가락, 귀, 머릿결까지 엄마를 빼닮았다. 그런데 툭툭 던지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쩐지 내 가치관을 닮아가고 있다.

아이오와대의 생물학 교실에서 실험을 했다.

작은 나무상자에 밀 씨앗을 심고 키웠다. 당연히 키만 자랐지 몸집은 허약해 볼품이 없었다. 실험 팀은 상자를 부수고 뿌리의 총 연장을 측정했다. 그런데 뿌리의 길이가 무려 11,200km에 달했다. 서울과 부산을 13번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였다.

밀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을 것이다. 기름진 땅에서 자란 혜택 받은 밀은, 그렇게 긴 뿌리를 내릴 필요가 없었다. 몇 개의 뿌리만 내려도 충분히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아이는 어디로 튈 줄 모른다. 이를 교육학에서는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자랄지 알 수 없다.

같은 밀 씨앗이라도 자라는 환경과 키우는 방식에 따라 뿌리의 길이가 달라진다. 용비어천가처럼 뿌리 깊은 나무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가 화려한 꽃이 아니더라도, 굵은 뿌리를 가진 단단한 나무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다.

 

결국 아버지란 등애처럼 아이를 자극하는 사람이며, 식물에 물을 주는 것처럼 자식을 교육하는 사람이다. 비록 과학이 ‘믿기 싫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을 배우는 학문’임을 알면서도, 유전적 결정론을 부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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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단 ^^ 2017-08-24 13:41:10
잘 읽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역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