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건축에 관용 베풀려면 옛 건축을 가지고 있어야”
“새 건축에 관용 베풀려면 옛 건축을 가지고 있어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8.03 10:4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에서 배우다] <3> 건축에도 ‘톨레랑스’를 심는 나라
양재영 선재건축 소장 “새로운 것과 오랜 것 잘 버무려진 도시”
프랑스 파리는 옛 건축물과 새 건축물의 조화가 잘 이뤄져 있다. ©김형훈

자유의 나라, 평등의 나라, 박애의 나라. 프랑스 삼색기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가리킨다. 프랑스는 국기의 색이 상징하는 의미를 꼭 닮은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 건축 기행을 하면서 느낀 점도 자유와 평등과 박애이다. 사회 곳곳이 프랑스 삼색기를 닮았고, 건축에도 프랑스의 상징이 통용된다는 게 남달랐다.

프랑스는 피비린내 나는 혁명으로 근대국가의 기틀을 다졌지만 그 혁명은 잘못된 봉건을 뜯어고치는 것이었지, 있는 걸 완전 없애는 행위는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문재인 정부가 내건 ‘적폐 청산’을 철저하게 행하는 나라였다. 근대국가 탄생에서도 그렇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철저한 나치 청산이 지금의 프랑스를 있게 만들었다. 바로 제대로 된 인적 청산이 가져온 결과물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프랑스다.

앞서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 파리의 건축을 살짝 들여다봤다. 수많은 건축물이 사라지고 생겨나기를 반복한다. 프랑스도 건축물의 명멸이 없지 않지만 그들의 건축에서는 조화와 관용이 보인다. 흔히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을 빗대어 부르는 ‘톨레랑스(관용)’가 어쩌면 그렇게 건축에도 잘 들어맞을까.

프랑스에서 말하는 관용은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의미인데, 그들의 건축이 바로 관용이다. 옛것을 함부로 뜯지 못하는 제도자체가 잘 되어 있기에 건축에서의 관용도 이뤄질테지만, 옛것을 지켜야 한다는 시민적 공감대 역시 중요한 바탕이 된다.

더더욱 중요한 건 파격적인 건축물을 수용하고 소화해내는 능력에 있다. 제대로 된 심의를 통해 논란을 빚는 건축물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논의를 거쳐 그들의 땅에 세우곤 한다. 뜯어낼 계획으로 세웠던 에펠탑이 대표적이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옛것과 새것의 조화에 있다. 옛것이 새것을 수용하는 자세는 프랑스가 가진 독특성이기도 하다. 옛것을 무조건 까부순 상태에서 새것을 번듯하게 올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파리는 옛것이 있기에 새것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건축물이 켜켜이 쌓여서 파리를 만든다.

퐁피두센터 외관. ©김형훈
퐁피두센터 내부. ©김형훈

프랑스 답사에서 계획에 없던 곳을 방문한 곳은 퐁피두센터다. 1969년 프랑스 대통령에 오른 조르주 퐁피두에 의해 계획되고, 세워졌다. 퐁피두 대통령은 생전에 센터의 준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을 하기는 했으나, 그 건축물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워졌고 건축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봐야 하는 그런 건축물이 됐다.

퐁피두센터는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이면서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건축물 자체는 미술관의 이미지를 주지는 않는다. 아무나 오라고 손짓하는 느낌이다. 엄격하지도 않다. 아니, 근엄한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프랑스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퐁피두센터도 논란의 건축물이었다. 퐁피두센터는 흔히 바라보는 건축물에 반기를 든 어쩌면 ‘충격적’ 건축물이다. 배관이라는 배관은 다 뱉어냈다. 숨겨놓아야 할 것들이 건축물 표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람으로 따지면 몸에 있는 내장을 다 꺼낸 모습이다. 당시 <르 피가로>지는 영국 네스호의 괴물을 빗대 “프랑스도 마침내 괴물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퐁피두센터는 그런 논란을 뒤로 하고 1977년 지어졌으니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이제는 별로 파격적이지도 않다. 당시는 파격이었지만, 누구 파격을 깨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퐁피두센터는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공동 작품이다. 둘 다 젊은 시절 퐁피두센터 설계에 참가했고, 지금은 세계적 건축가에 반열에 올라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렌조는 1998년 받았고, 리처드는 2007년 그 상을 받았다.

제롬 세이두 파데재단박물관 외부. ©김형훈
제롬 세이두 파데재단박물관 모형. ©김형훈

건축에서의 파격이 가능한 이유는 계속 강조하지만 수용 능력에 있다. 그리고 조화에 있다. 개개의 건축물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파격은 꼴불견이 될 뿐이다. 그런데 최근엔 렌조 피아노가 프랑스 파리에 또 다른 파격적 건축물일 심어놓았다. ‘제롬 세이두 파데재단박물관’이다. 퐁피두센터가 겉으로 드러나는 ‘괴물’이라면, 파데재단박물관은 건물 사이에 숨겨둔 ‘괴물’이다. 파리에 ‘파데재단박물관’이 있다면, 오스트리아 그라츠엔 ‘쿤스트하우스’가 있다.

에펠탑으로부터 시작해서 퐁피두센터, 파데재단박물관을 연이어보면 거기엔 건축 기술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건축물은 옛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니라 기술 변화에 따라 어떤 변화를 주고, 어떤 흐름을 주도해야 하는지를 이들 건축물이 보여준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지금에 맞는 건축물은 뭘까.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건축물은 뭘까. 프랑스 건축답사를 함께 했고, 퐁피두센터도 동행했던 선재건축사사무소의 양재영 소장의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기대를 하고 갔죠. 역시였습니다. 파리는 바닥부터 건물 외관까지 역사가 쌓여 있어요. 햄버거는 두툼하잖아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잘 버무려져 있고, 부러웠습니다. 명품도시가 뭔줄 알게 됐어요.”

그가 말하는 프랑스 파리는 시간이 내재된 도시라는 설명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도시가 아니라 흘러버린 시간이 있고, 지금의 시간이 있는 그런 도시다.

“제주는 파리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파리를 바라보면서 제주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제주는 과연 어떤가요. 특징이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뭐가 있을까요. 옛것과 연결된 건물들이 없어요. 파리를 바라보면 누굴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가잖아요.”

제주도는 천 년의 도시라고 한다. 건축물에 역사가 담기는 파리를 닮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왜 그들은 옛것을 남겨둔 상태에서 현재를 심으려 하는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제주도가 나가야 할 도시재생의 방향이기도 하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병주 2017-08-03 18:59:50
시간이 내재된 도시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아름다운 시간, 슬픈 시간, 즐거웠던 시간, 이 모든 시간들이 잘 어울러 담겨있을 때 역사가 담겨지겠지요. 김 기자님 같은 분이 제주 땅도 여러 시간이 잘 축적된 땅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