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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대표 화백 강요배, 그가 자화상을 그리지 않는 이유
제주 대표 화백 강요배, 그가 자화상을 그리지 않는 이유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4.12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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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5일 제주도립미술관서, 40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초대 기획전
제주 역사·자연을 넘어서서 '자아'를 찾아가는 강요배 화백의 인생보고서
오는 4월 15일부터 7월 10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초대기획 '한국현대미술작가, 강요배 : 시간속을 부는 바람'전_2015년 '구름이 하늘에다' 외
 

“하나의 작품으로 자신을 대표하지 마라. 더하거나 덜한 모든 작품의 완성이 거대한 대하드라마일 수도 있다. 그것이 예술의 길이고 삶의 길이다”

제주 대표 화백 강요배의 60년 작품 활동이 하나의 인생역작으로 태어났다.

오는 4월 15일부터 7월 10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한국현대미술작가, 강요배 : 시간 속을 부는 바람‘展이 개최된다. 1976년 제주시 관덕정 인근 대호다방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후 40년 만에 제주도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초대기획전이다.

제주의 자연과 역사 속에서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완성한 80여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

12일 전시 개막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강요백 화백은 “지금껏 60년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을 기회가 없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 뿐만 아니라 나 자신 또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강 화백은 “작품은 커졌는데 정작 내용은 없어진 것 같다”는 말로, 얼핏 들으면 겸손이지만 그 속에 장대한 포부를 담은 소회를 밝혔다.

실제로 메인 홀에 전시된 2000년대의 최근작을 보면 아기자기한 초기작과 달리 대형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반면 작품 안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물은 사라졌다. 이러한 ‘비어있는 그림’의 숨은 뜻을 헤아리는 것이 곧 이번 전시의 감상 포인트다.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강요배 화백의 시기별 작품 경향을 정리해봤다.

강 화백의 10대는 말을 배우고 현상을 이해하며 세상을 모방하는 학습시기였다. 20대는 그 개념을 확장한 시기다. 삶과 죽음, 선과 악 등 우주의 원리를 상징적 개념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작가는 그의 청춘을 바쳤다.

강요배 화백은 “20대에는 삶 전체에 대한 연륜이 쌓이지 않은 시기이다보니 고민은 많았지만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에 대한 표현이 블랙홀 그림과 같은 막연한 덩어리로 그려졌다”고 설명했다.

30대 초반이 되자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화폭 속에 사람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일상이 담겨졌다. 30대 말에 접어든 강 화백은 삶과 죽음의 역사적 상황을 그림의 소재로 활용했고 그 결과 4.3역사화 ‘동백꽃 지다’가 탄생했다.

마흔 줄에 이르러 그는 제주로 귀향했다. 모두가 ‘세계화’에 들떠 바깥으로 나아갈 때 고향 땅으로의 회귀를 선택한 작가는 ‘진실’을 찾는데 더욱 몰두했다. 캔버스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나무, 바람, 바다가 남았다. 50대까지도 제주의 대자연에 대한 그의 동경은 계속됐다.

또다른 변혁기는 50대 후반에 찾아왔다. 더 이상 그는 외적 대상에 몰두하지 않게 됐다. 바다와 바람, 나무를 바라보는 내적 리듬에 귀기울여 모든 것이 가라앉은 침전의 상태를 포착하고, 그 앙금을 담아내기 위해 현재까지 무한한 열정을 쏟고 있다.

강요배 화백은 “어린 나이에는 말로,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표현하다보니 상징과 추상의 기법을 썼다. 그러나 50이 넘어서면서부터 말은 뒤로 물러났다. 아직도 충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더 단순화시켜서 진정한 앙금을 만들고 싶다”면서 남은 창작활동의 지표를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작에는 스무살 청년 강요배의 푸른 정기를 감상할 수 있는 자화상이 있다. 그의 자화상은 30대를 마지막으로 40년 동안 멈춰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강 화백은 “성장기 이후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뒤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자화상을 그리지 않고 있다”면서 "자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다르게 변화할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두고 나를 찾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자화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아직도 미완인 작가 자신을 찾아가는, 그 시간의 연속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마지막으로 장작 60년이라는 긴 '시간 속의 바람'을 타고 어제와 오늘, 너와 나를 이어주고 있는 그의 투철한 예술혼에 경의를 표한다.

<조보영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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