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이 화두가 됐다. 어느 시도를 가든, 도시재생에 매달린다. 특히 그 지역의 핵심지역이면서 최근엔 쇠퇴된 원도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만들어져 있을 정도이다. 제주시 원도심도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돼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도시재생은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지를 일본의 사례 등을 묶어 연재한다. [편집자주]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스페인의 빌바오를 꼽는다.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특징적인 건물이 있으며, 그로 인해 빌바오라는 그 도시의 이미지는 180도 바뀌게 된다. 이렇듯 건축물이 주는 이미지는 무척 강하다. 우리나라에는 그같은 강렬한 이미지의 건축물은 흔치 않지만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도시재생은 건축물을 통해서 발현이 되기도 하지만 건축물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건축물과 도시재생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도시재생을 할 것인가에 있다. 도시재생이라는 건 현재이면서 미래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은 예전엔 무조건 없애는 것에서 시작했다. 바로 재개발을 화두로 내건 시대는 철거 위주의 재생이 활개를 쳤다. 이젠 그런 개념을 탈피, ‘리헤비테이션’이라는 말을 꺼낸다. 그 말은 사람들이 다시 살도록 한다는 뜻으로, 기억을 보존하면서 미래를 일군다고 요약을 할 수 있겠다. ‘리헤비테이션’은 바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담보로 해야만 한다.
도시재생 사업 지구가 된 제주시 원도심.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려는데 벌써 계획은 잡힌 모양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오래된 미래, 모관’이라는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주 원희룡 지사 등을 비롯해 원도심 답사를 하며 도시재생사업의 본격 시동이라고 말을 하고 다닌다.
제주시 도시재생사업이 왜 ‘오래된 미래, 모관’이어야 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모관이라면 조선시대를 말하는 것인데, 제주도가 조선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으며 ‘제주목(濟州牧)’이 된 시대로 가자는 말인가.
도시재생은 과거지향적이어서는 안된다. 과거의 영화(제주인들에게 제주목은 영화일 수 없다)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제주성의 복원만을 강조하는 것도 솔직히 우스운 일이다. 지난해는 제이각 터에 뚝딱 제이각을 올린 장본인이 누구였던가.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우스운 건축물을 만드는 이들이 지금 행정을 하는 이들이 아닌가. 없어진 걸 새로 복원하려면 수십년, 아니면 수백년도 걸릴 수 있는데 수개월에 모든 작업을 끝내는 그런 짓을 언제까지 방치를 해야 하나. ‘오래된 미래, 모관’은 솔직히 말하면 엉터리 복원작업을 하겠다는 발상 아닌가.
우리가 도시재생을 말할 때 내거는 단어로 ‘수복형’(修復型)이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도시재생을 한다는 ‘리헤비테이션’에 다름 아니다. ‘리헤비테이션’이 가능하려면 주민이 주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주민 생각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행정에서 하려는 도시재생은 모든 걸 다 짜놓은 각본에 주민들이 들어와보라는 것에 지나지 않다.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솔직히 모른다. 일부 목소리가 큰 주민들이 만드는 도시재생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을 쫓아내게 만들 뿐이다. 일본은 마을을 살리려 하면 주민들의 의견을 우선으로 한다. 행정은 절대 중심이 되질 않는다.
원도심 재생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봐서도 안된다. 500억원이 투입될 제주시 원도심 재생은 자칫하면 돈만 뿌리는 사업이 되고, 거기에 사는 주민들을 내쫓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 되고 만다.
우선 주민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왕이면 원도심에 살고 있는(세입자를 포함)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한 뒤 도시재생을 하길 권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래된 미래’가 아니라 ‘오래된 과거’만을 상기시키는 도시재생이 될 뿐이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