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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돈기념관 건립이 시급하지 않다고?
고상돈기념관 건립이 시급하지 않다고?
  • 미디어제주
  • 승인 2015.12.16 14: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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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정효(사진가, 한라산 저자)
강정효 사진가

엊그제 제주특별자치도의 내년도 예산이 도의회를 통과됐는데, 일부 예산에 대해 제주도 당국이 부동의 처리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고상돈기념관 건립 사업을 위한 실태조사 7000만원이 포함됐다. 그런데 부동의 이유를 보니 '정부 지원방안이 협의되고 있어 시급한 현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 논리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사실관계를 알리고자 한다. 그에 앞서 먼저 필자를 소개한다면 기자생활을 하던 1996년 취재를 위해 고상돈산악인이 숨진 북미 최고봉 매킨리에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산악인의 길로 들어서 지금까지 고상돈 기념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2009년 ‘정상이 사나이 고상돈’이라는 고상돈평전 제작, 그리고 지난 10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왜 고상돈기념관이 필요한지에 대한 주제발표 등을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 먼저 ‘정부 지원방안이 협의’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현재 (사)고상돈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도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지난 10월 국회에서 기념관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 것 외에는 그 어떤 형태로도 협의는 고사하고 거론조차 된 적이 없다. 누가 협의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혹 제주도 당국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실체도 없는 잘못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시급하지 않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지난 80년 고상돈산악인의 유품을 제주도에 기증할 당시 이규이 제주도지사와 이희수여사, 보증인으로 참여한 양하선 제주산악회 회장이 각각 서명한 합의서에 보면 「제5조(진열) 기증받은 유품을 전시 진열하기 위하여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실을 확보한다.」고 되어 있음에도 35년이 지난 아직껏 그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몇 차례에 걸쳐 특별전시회를 한 것이 전부다.

35년 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을 이제라도 지키자는 것인데, 시급하지 않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이제껏 35년이나 아무 소리 없이 기다렸으니 몇 년 더 기다려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논리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고상돈기념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제주도에는 특정 개인을 기리는 수많은 기념관이 있는데, 그 사례를 보자. 75억4천만원이 투입된 추사기념관을 필두로 10억 4600만 원이 소요된 이중섭기념관, 37억원이 투입된 소암기념관,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김만덕 기념관 등이다.

이번에는 국내외 산악인의 사례를 보자. 먼저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후 매킨리에서 실종된, 고상돈과 비슷한 길을 간 우에무라 나오미의 경우 고향인 효고현에 우에무라 나오미 보켄칸(植村直己冒険館)이 있고, 훗날 활동했던 도쿄도 이타바시구에도 우에무라 나오미 모험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8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19년 동안 히말라야 8천m급 16개 봉우리를 등정한 엄홍길의 경우 고향인 경남 고성군에 33억4천여만원의 국비와 지방비 투입된 기념관이 있고, 3세 때부터 생활한 의정부시에 기념관, 최근에는 신흥대학교와 엄홍길휴먼재단이 함께 엄홍길 전시관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05년 세계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후 2011년 안나푸르나 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다 실종된 박영석씨의 경우 정부 50억원, 마포구 10억원에 국민성금 20억원 등 80억원이 소요되는 박영석기념관이 2016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건설 중이다.

알다시피 고상돈은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산악인이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기도 했고, 한때는 애국가의 영상과 교과서에까지 그의 사진이 실렸다. 심지어는 기념우표와 엽서, 담배가 발행될 정도로 국가적인 영웅이었다. 앞서 제주도와 국내외 산악인을 기리는 기념관의 사례를 살펴봤는데, 그들과 비교할 때 결코 뒤지지 않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껏 기념관이 없다는 것은 결국 무관심 때문이라 여겨진다.

고상돈은 최고의 명예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의 길로 나서 북미 최고봉 매킨리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필자는 2009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상돈사진전을 개최할 당시 기획을 맡았었는데, 당시 전시회의 제목을 ‘잊혀진 영웅 고상돈’이라고 명명했었다. 이에 고상돈을 아는 몇몇 산악인이 왜 잊혀진 영웅이냐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필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고상돈이 누군지 아느냐 물어보라고. 그렇게 고상돈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그 와중에 한때 인터넷을 중심으로 ‘고상돈은 매킨리에서 실종돼 시신을 찾을 수가 없기에 1100고지의 묘에는 시신이 없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나돈 적이 있다. 우리가 기념해야 할 가치가 있음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한라산의 가치는 경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가치에 인문자원이 추가될 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어린 시절 한라산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는 고상돈의 이야기를 포함한.

현재 고상돈의 유품 674점이 민속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그의 유품에는 생전에 사용하던 등산장비를 비롯해 등정사진, 에베레스트 정상의 암석, 77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집 등 도서, 상패, 훈장증서 등 그의 인생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여타의 기념관들이 건물은 제법인데 반해 전시 내용물이 빈약한 것과는 달리 완벽하게 자료가 보관되고 있는 것이다. 상설 전시공간을 통해 그의 도전정신을 보여줄 날만을 기다리며.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은 제주도와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1차적으로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1980년 유품을 기증받으면서 상설 전시실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부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등정은 우리나라를 에베레스트에 오른 8번째 국가로 등록되는, 당시 개발도상국가인 대한민국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쾌거였다. 그리고 이를 정부는 적극적으로 활용한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생전에 고상돈산악인은 이런 말을 했다. 비단 산악인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보다 더 큰 교훈이 없다고 여기기에 소개하며 끝을 맺고자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고상돈기념관이 하루빨리 건립되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한 사람의 평범한 산(山) 사람이다. 우리 대원 누구나가 그만한 팀워크와 협조가 주어졌다면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내가 남보다 뒤지지 않는 면이 있다면, 끊임없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노력했다는 사실뿐이다. 산인들이여! 열심히 훈련하고 열심히 훈련하고, 또 열심히 훈련하라. 그 밖에 달리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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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사나이 2015-12-16 14:50:06
옳은 말씀 백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