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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건 쓰레기와의 승부
영혼을 건 쓰레기와의 승부
  • 미디어제주
  • 승인 2015.11.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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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귀포시 생활환경과 홍기확
서귀포시 생활환경과 홍기확

건곤일척(乾坤一擲). 당(唐)나라 시인 한유(韓愈)가 지은 시에 나오는 유방과 한우의 승부를 말한다. 하늘과 땅을 걸고 주사위를 한번 던진다는 뜻이다.

서귀포시의 청소행정과 클린하우스, 음식물 RFID 장비 업무를 맡고 있다. 어느덧 생활환경과에서 일한지 1년이 되어 간다.

그간 미약하나마 성과가 있어 2015년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지자체 경진대회에서 230여개 지자체를 제치고 서귀포시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하반기 우수모범공무원 후보에도 올랐다.

2014년 12월. 발령이 나자마자 마주하게 된 매립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어떤 통계를 살펴봐도 증가추세인 음식물, 재활용, 소각, 매립쓰레기. 도망가고 싶었다. 온통 문제점만 보였다. 하지만 당장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건곤일척의 영혼을 건 승부를 펼쳐보자고.

환경부의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현장실사단을 모시고 다니며 같은 얘기를 했다.

“이번 직장이 다섯 번째인데, 그 동안 제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공무원은, 아시죠?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되도록 편하게 가려는 거요. 하지만 가끔은 미친 생각이 들 때가 있으시죠? 내 영혼을 걸고 일을 해보자. 저는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실사단은 잠잠해졌다. 몇 분간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했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짧은 시가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내 생애 언제 다시 이렇듯 일에 대한 열정이 타오를지 모르겠다. 그래도 휴화산(休火山)이었던 삶에 추가된 활화산(活火山)이라는 경험은 깊고도 오래 지속될 것이다.

물론 아직 쓰레기와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관광객이든 도민이든 인간은 누구나 먹고 싸고 자며 쓰레기를 만들어내니까 말이다.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다. 나 역시 진행의 톱니바퀴 안에서 퇴직공무원 선배들이 흔히 하는 ‘40년 동안 큰 공이나 큰 잘못 없이 공직 마무리’라는 비겁하고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도록, 상처를 입더라도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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