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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2015년 강우일 주교 예수 부활 대축일 사목서한
[전문] 2015년 강우일 주교 예수 부활 대축일 사목서한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5.04.04 2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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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2015년 강우일 주교 예수 부활 대축일 사목서한

형제자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총으로 만물과 함께 새로운 생명의 축복을 가득히 나누어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교회는 이 부활축제에 많은 이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세례를 통하여 물속에 몸을 담그는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세례를 통해 물속에 몸을 담그는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할 것을 수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세례는 현재의 죽음을 수락하고 미래의 부활을 전망하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수락하신 십자가의 죽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셨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수락하신 까닭은 당신을 미워하고 모함하고 단죄하고 고발한 사람들을 수락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죽음의 골짜기로 떨어뜨린 사람들과 맞서 싸움을 벌이지 않고 그들의 올무에 걸려 넘어져도 그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적으로, 원수로 다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형제로, 혈육으로 거두어 주셨습니다.

세상은 오늘도 많은 이들이 차별과 배척, 증오와 저주, 단죄와 대결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서로에게 고통을 주며 어둠의 포로가 되어 삽니다. 그것은 수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도 나아가는 예수님의 길에 동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 여러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을 응징하고 소탕하기 위해 보안에 엄청난 예산과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와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왜 그런 극단적인 전투에 나서는지, 무엇이 그들을 목숨을 건 싸움터로 몰아냐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해소하기보다 이미 전투에 나선 사람들만 대적하려 하기에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며 갈수록 많은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삶을 포기합니다. 노인은 노인대로 노년을 안심하고 살아낼 방안이 안 보이고 함께 해 줄 동반자도 안 보여 삶을 포기합니다. 젊은이를 일자리에서 몰아내고 노인을 외톨이로 몰아내는 것은 끊임없는 경쟁을 통한 탈락과 선발의 사회구조입니다.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만 선발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락시키는 무한 경쟁의 사회구조입니다. 이런 사회구조는 갈수록 죽음의 문화를 키워갈 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배제하고 탈락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민족이 다르고 계층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우리 모두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당신을 배척하고 제거하려는 사람들조차 형제관계를 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쳐놓은 올무에서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죽음의 문화를 치우고 생명의 잔치를 벌이려면, 예수님과 함께 모든 종류의 적의와 대결의 갑옷을 벗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자신이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과는 달리 ‘진보’에 가까운 사람들도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이고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자신이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보수’ 쪽에 가까운 사람들도 같은 민족이고, 하느님은 그들을 위해 해를 비추어 주시고 비를 내려주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재산으로 회사를 일구셨습니까? 어떠한 기업도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고, 노동은 자본에 우선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노동자는 경영자가 마음대로 부리는 종이 아니라 경영의 동반자입니다.

당신은 박봉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이십니까? 노동의 대가는 금전만이 아니라 이마에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경영자는 척결해야 할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함게 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당신은 며느리가 자신만 아는 철부지, 게으르고 위아래를 모르는 젊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며느리도 친정부모에게는 손에 물 묻히게 하기 싫고 언제까지나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귀중한 자식입니다.

당신은 시부모님이 자신만 알고 심술궂고 욕심 많은 노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만나기 전까지 내 배우자를 수십 년 사랑하고 양육하고 공짜로 키워주신 분, 내 배우자가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지고 있는 분들이십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먼저 예수님과 함께 내 안에 죽음을 수락할 때, 예수님과 함게 부활에도 동참할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을 위해 지금 작은 죽음을 거듭 받아들일 때, 후에 주님의 큰 생명을 선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 주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에페 4,32~5,2)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자애와 평화가 여러분 가족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5년 부활대축일에 제주 감목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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