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21:11 (금)
인식의 ‘모호성’이 전문가의 무기더냐
인식의 ‘모호성’이 전문가의 무기더냐
  • 장금항 객원필진
  • 승인 2006.09.23 09:3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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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장금항 상명교회 목사

 

흑인노예를 부리던 근대의 유럽 사상가들은 아프리카 흑인을 유럽 문명에서 배제하려했다. 흑인을 그토록 혹독하게 부리려면 흑인은 문명화가 불가능한 미개인이거나 동물에 가까운 유인원이라는 결론이 필요했다.

그래서 검은 피부의 혐오감은 물론이고 잘 발달된 엉덩이와 근육골격을 쾌락으로 연결 지으며 인종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였다. 그러나 피라밋은 실재하는 유물이었고 아프리카의 이집트는 축척된 부를 바탕으로 한 부자들의 최고의 관광지였다.

더구나 178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후에는 이집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알려지면서 그들의 피부색 문제가 관심이 되었다. 흑인의 문명화를 부정하며 이집트인의 타락과 사제의 이교적 시술 등의 비판적 연구에 치중하던 인종편견을 기저에 깔던 연구자들은 ‘밝혀지는 사실’ 앞에서도 검은 피부색과 그들의 문명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부정에도 ‘피라밋의 수학적 우아함에 매료된’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문명의 고유성과 힉소스 침입 이전 고왕국 중왕국까지의 강력했던 이집트왕조의 파라오가 흑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의 지식으로도 지난 7천년 동안의 이집트인에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그리고 지중해 사람이 포함되었고, 나일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주민의 피부색이 검은색이라는 것은 실제 하는 결론이다.

이집트인은 흑인과 백인, 황색인과 침략자와 포로자등을 통하여 다양한 인종이 편입되었다. 이집트인의 인종적 위치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근대 유럽의 관심사인 듯 보이나 본질은 인종편견이었고, 인도게르만족과 셈족을 중심으로 문명사를 한정하는 그리스 로마 중심의 서양인류사의 보수성의 문제였다.

그 편견은 과학적 사실과 객관적 증거 앞에서도 인식의 ‘모호성’을 유도하였고 그 ‘모호성’은 사실이 아닌 주장에 근거한 편협한 연구자가 객관성을 요구하는 학문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었다.

또한 역사연구에서 자료와 유물의 제한성 때문에 현실에 필요한 역사인식으로 오역되고 왜곡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 교수라는 전문직 직함은 획득하기만 하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학설이 된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한반도 역사왜곡 등은 현실에 필요한 논리를 얻기 위해 전문가 권위를 빌리는 형식으로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곡학아세의 방법이고 유물과 인식의 모호성 때문에 그것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고고학적 실증주의에서 ‘유물 object'를 다루면 ’객관적 objective'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유물 object'에 의존하다 보면 역사적 상상력이 제한 받을 위협이 있지만 인식의 기초는 ’object'이다. 인식의 모호성, 사회적 현상의 양면성, 말의 숲에 숨어 입맛 따라 논리를 제공하는 제주의 ‘전문가 집단’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제주발전연구원 몇몇 교수가 도정 전문가 집단 '좌지우지'

그런데 도정과 언론, 전문가 집단의 일부 사람들이 object가 아니라 희망 섞인 ‘바램’을 기초로 하고 있다.

도정의 희망 섞인 바램이 신문에 활자화됨으로 바램이 ‘사실’이 되고 전문가 교수가 보증하므로 그것이 다시 도정의 추진과제가 되고 있다. 모두 신념과 소신이라 하겠지만 사회적 현상의 양면성에 기인한 ‘모호성’에 의지해 도정에 묻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 제주발전연구원의 몇몇 교수가 도정의 전문가 집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 그 느낌이 더하다. 그래서 인식의 ‘모호성’, 말의 ‘모호성’에 의지해 현실보다는 책임지지 못할 장밋빛 미래를 전문가라고 보장하는 몇몇 교수의 해악은 행정의 책임자 못지않게 크다.

신문에 시내 병원의 이사장님이 ‘비전문가가 보는 제주경제......’라는 글은 하나마나한 신문의 칼럼보다 훨씬 잘 읽히고 현실적이었다.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 기초한 생활인의 글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사람은 매우 젊거나, 그 분야에 매우 생소한 자들이다.”는 토마스 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상명에서 장금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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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담설 2006-10-03 12:38:21
의사가 환자를 치료 할 때는 대소변으로 상태를 감정한다, 흔히 배설하는 그 오물속에 건강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거다. 허지만 그걸 몰랐던 시절엔 미친 짓거리 일 뿐이다. 이런 의학기술의 발달은 그런 미친자 같이 대접 받던 자들의 열정의 만들어진 혜택이다. 시대는 기득권과 실용적 개혁자 혁신적 개혁자들의 정, 중, 진의 반목과 협의 속에 이끌어져 왔다. 패러다임은 역사를 읽는 바른 길 속에 있다.

지나가다 2006-09-23 15:04:38
그 잘난 전문가만 없어도 제주세상이 이러지는 않을건데 ㅉㅉㅉㅉ

애독자 2006-09-23 10:05:32
너무 산뜻,,
미디어제주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