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12 (금)
'무책임의 체계는 안 된다'
'무책임의 체계는 안 된다'
  • 장금항 객원필진
  • 승인 2006.10.1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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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장금항 상명교회 목사

1946년 동경전범재판(東京戰犯裁判)에서 전범대상이었던 정치가 및 군인들은 일제히 무죄를 주장했다.

전쟁책임이란 승자와 패자의 논리가 달라 승전국의 재판이 얼마나 정당성을 지닐 수 있느냐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기소된 자들은 집단학살과 강간. 약탈 등의 반인륜적 범죄의 책임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부하들에 의해 이루어진 학살, 약탈, 폭행을 이유로 기소된 필리핀 방면군 최고사령관 야마시타 토모유키(山下奉文)대장은 “만약 그런 행위가 나의 부하에 의해 행해졌다면 그것은 나의 생각, 나의 의도와는 절대로 상반되는 것입니다”고 말했고, 남경학살의 책임자로 기소된 마즈이 이와네(松井岩根)대장은“저는 지역군 사령관으로서 각 군의 작전 지휘권을 부여받고 있었지만, 각 군 내부의 군기, 포기를 직접 감독하는 책임은 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진솔했다.

개인의 의지와 책임을 명료하게 인정한 독일의 전범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이들의 책임회피는 주군에 대한 충성이 문제일 뿐, 행위의 선악과 시비를 묻지 않는 사무라이의 정신과 유사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누구도 범죄행위를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발생했으며, 전쟁에서 자신들의 행위는 개인의지가 아니라 전체 구조에서 불가피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존엄성을 고려한 인간의지와 결정이 결여된 구조화 된 전제주의에서 그들은 천황의‘전쟁도구’로 자신을 인식한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주체’로서의 자각이 결여된 이들의 사고는 일본제국주의가 초국가주의체계의 기반이었던 천황의 절대성에서 개인으로 넘어간 현재까지 여전히 유효하며, 그래서 일본의‘비극’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무책임의 체계’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4. 3과 5.18의 학살책임자를 가려내지 못한 것은‘세월’탓으로 돌린다하여도 4조 넘는 손실을 낸 외환은행 매각이나 70억 손실을 본 호접난 사업등과 같은 사실관계가 명확한 현재의 일도 두루뭉실 넘어간다.

그래서 온나라를 도박장으로 만든‘바다이야기’파문에서도 정책입안자의 책임도‘정책적 실패’라는 현학적인 말로 합리화된다.

그러나 나라의 재정과 국민의 혈세가 복지와 보건의료를 핑계로 저토록 낭비되어도 정책에 대한 비난만 있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없다.

신호위반에도 범칙금 꼬박꼬박 내야하는 개인 삶에 대한 규제와 책임에 비해 많은 예산 낭비와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 정책의 실패는 그 책임이 너무 가볍다.

정책에 대해 책임을 정확히 물으면 공무원이 복지부동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차라리 복지부동이 낫다.

IMF뒤의 구조조정과 외자유치노력은 부작용이 더 컸지 절대 효과적이지 않았다. 하여튼 이 모두가 개인의 윤리적 책임을 가벼이 여기는 전체주의의 사고에서 오는 것이다.

공무원 선거개입사건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은 김지사가 공무원 선거개입과 관련해 지시나 공소여부를 부인했다. 검찰이 증거도 정황도 있다고 하니 결과를 두고 볼 일이지만 김지사와 관련자들은 일본의‘무책임의 체계’대로‘주군’을 위해 부하가 희생할 모양이다.

그렇지만 사안이 당선 무효형을 받을 만큼 중하지 않아 지사직은 유지할 수 있다면, 시원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부하들은 살려주는’무사도의‘주군’의 모습을 보고 싶다. 뭐 하나라도‘책임지는’모습을 보여 지도자의 위상을 도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상명에서 장금항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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