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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눌음·조냥단지, 부족한 섬에서 생존을 위해 생겨난 문화”
“수눌음·조냥단지, 부족한 섬에서 생존을 위해 생겨난 문화”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4.10.0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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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섬의 한계 인식하고 환경·자원총량 조율 준비해야”
‘제주문화의 인문학 이야기’ 두번째 강좌 ‘제주 전통문화의 특성과 계승방안’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제주문화의 인문학 이야기’ 두번째 강좌에서 ‘제주 전통문화의 특성과 계승방안’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최근 국제자유도시라는 구호 때문인지 제주도가 도시인 줄 안다. 조냥정신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주는 섬입니다. 여기는 갇힌 곳이에요. 섬이라는 한계를 인식하고 환경총량, 자원총량을 조율하는 준비를 해나가야 미래 생태환경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문화의 인문학 이야기’ 두 번째 강사로 나선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의 강연은 특유의 달변가답게 거침이 없었다.

1일 저녁 리더십센터 제주교육원 강의실에서 진행된 ‘제주 전통문화의 특성과 계승방안’ 주제 강연에서 박경훈 이사장은 “제주 문화의 환경 요인에 의한 가장 큰 특징은 섬 전체에 걸쳐 고도에 따라 생활문화의 특징이 달라진다는 점”이라는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섬의 고도에 따라 바다에 인접한 해촌은 반농․반어, 양촌은 반농․반목, 산촌은 반목․화전․수렵으로 생업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이 가운데 해촌은 주로 토착 주민들이 살았고 양촌은 제주로 유배 온 이주민들의 집성촌으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제주인들의 동서 정주관습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동촌 사람의 경우 제주시 중앙로를 기점으로 동쪽인 일도동과 건입동 권역에, 서촌 사람들은 삼도동과 용담동 권역에 모여 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6~70년대까지만 해도 동․서촌간 혼인관계가 드물 정도였다”면서 최근까지도 대부분 지켜지고 있는 제주인들의 공간 관습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제주 문화의 주역은 역사적으로는 양촌 주민들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해촌인들이었다”면서 “배를 부리는 기술과 바다라는 위험한 자연환경에 대응하면서 세대를 건너 추적된 지식들이 교역과 어로활동을 가능하게 했지만 200여년간 이어진 ‘출륙 금지령’이 해촌 사람들을 ‘몰명지게’ 만들어버렸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제주 전통문화의 특성과 계승방안’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또 제주도민의 85%가 ‘입도조(入島祖)’의 후손들이라고 설명한 그는 이른바 제주인들이 외지인들을 배척하는 의미로 사용된 ‘육지것’이라는 말에 대해 “제주 섬에 육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다만 오랜 옛날부터 그래왔듯이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보듬고 제주 섬의 생태를 사랑하고 뿌리 내려 나갈 ‘입도조’만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입도조’는 결국 새로운 제주인이며, 제주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동반자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온갖 탄압에도 지금까지 무려 400여곳의 신당이 ‘당당하게’ 살아남아 있다고 제주의 신당을 소개한 그는 이 신당들 중 ‘일뤠당(七日堂)’에 대해 “일뤠당은 치병의 신으로 아픈 데를 고쳐주는 할망신이다. 매월 7일과 17일, 27일에 다니는 신당”이라면서 “일뤠당에만 올리는 독특한 제물로 삶은 달갈이 있는데, 바로 삶은 달걀처럼 매끈한 피부가 되게 해달라고 당신에게 빌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가 피부병으로 고생했던 예를 든 그는 “일뤠당은 제주의 습한 기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면서 “습한 제주의 기후 때문에 생겨난 신앙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주는 지역이 협소하고 인구가 적기 때문에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였다. 모르는 사람도 세 사람만 건너면 어떤 식으로든 인연의 고리를 찾을 수 있는 게 제주사회”라고 ‘실명사회’로서의 특성을 설명했다.

그는 “4.3이라는 역사적 후유증과 좁은 실명사회의 인간관계 때문에 속내를 쉽게 털어놓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보다 남의 견해에 묻어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때문에 건강한 비판정신이 발붙이지 못하고 사회적 의제에 대한 담론 형성을 크게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실명사회의 장점으로 전근대시대 공동체적인 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궨당주의’의 기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궨당문화의 긍정적인 발전 형태로 수눌음 문화를 꼽으면서 ‘수눌음’의 어원에 대해 “수눌다의 명사형으로 ‘손을 쌓다’, 즉 ‘손 노동을 보태다’라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그는 ‘궨당 문화’가 정치적으로 나쁜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수눌음’처럼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자원이 부족한 제주 섬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 중 하나인 ‘조냥단지’를 설명하면서 “제주가 갇힌 섬이라는 한계를 인식하고 환경총량, 자원총량을 조율하는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얘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이 끝난 후 강봉수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원장의 진행으로 질의 응답 순서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문화의 인문학 이야기’ 두번째 강좌가 1일 저녁 7시부터 리더십센터 제주교육원 강의실에서 진행됐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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