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00:55 (일)
못다 핀 꽃송이들의 절규
못다 핀 꽃송이들의 절규
  • 미디어제주
  • 승인 2014.07.18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고경실(제주특별자치도 국제자유도시본부장)

고경실 도 국제자유도시본부장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기적같은 일이 생기겠지. 햇살에 그을리지 않은 파리하고 아리한 얼굴들. 수줍은 풋풋한 봄나물 같은 아이들.

그 아이들의 꿈은 세상을 구하고 지구를 따뜻하게 보듬어 보겠다는
꿈도 있었고 선생님에서부터 환경지킴이를 비롯해서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학교 교실에서 축복받은 아름다움을 묻히며
각자의 꽃송이를 피울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었다.

그들은 어른들을 믿었다. 설마 먹는 음식이야 속이랴. 설마 조금 잘못하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비행기야 철저히 하겠지. 4∼5백 명이 함께 타는 선박이야 원칙대로 점검하고 완벽하게 안전수칙이 정해져 있겠지.

국민의 안전을 위임받고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것이야 설마 대충할까.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아무리 돈이 없어도 사람 생명줄이 걸려 있는 일을 대강대강 해버리는 어른들은 없어. 그러니 믿고 이 배를 타자. 그리고 방송이 나오면 그래 시키는 대로 하자. 그렇게 철저하게 아버지나 어머니를 믿듯, 어른들을 믿은 아이들은 차가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이들이 믿었던 어른들은 어느 하나도 믿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아이들이 절규하며 원망스러운 아우성을 파도에 실어 보내오지만 어른들은 아비규환 네 탓 공방으로 정신이 없을 뿐이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통탄을 하고 비탄을 담아서 온갖 형태를 보이려 해도 아이들은 이내 모든 것을 알아 버린 것이다.

영혼이 되고 우주의 기가 되어 어른들의 숨겨진 거짓과 썩어버린 양심과 온갖 악취가 누룩처럼 기생하는 잘못된 짓거리를 알아 버린 것이다.

우리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OECD에 가입된 몇 개 안되는 국가, 폐허에서 풍요로움을 일궈 낸 국가, 선진국들이 하고 있는 행태를 두루 갖춘 위대한 국민, 온갖 수식어가 어떤 기념일이면 매끄러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서 온 나라에 울려 퍼지고 국민들은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나도 대단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비행기가 이상하게 착륙해서 아비규환이 되더니 지금은 “세월호”가 침몰해서 3백여 명 가까이 생명을 앗아 가버린 것이다. 그 중에 어른들은 많이 구조됐지만 못다 핀 꽃송이들은 차가운 물속에 그렇게 잠겨 버린 것이다.

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 얼마나 차가웠을까. 아!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그 영혼들은 아직도 얼마나 덜덜 떨며 구천을 방황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 땅에 어른들의 썩은 양심에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맡긴 것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양심있는 자들이라면 눈을 감고 처참하게 숨져가는 꽃송이들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라.

나는 공직자이다. 이 땅의 공직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몇년 전 일본은 해일피해와 지진으로 수 만명의 생명이 졌다. 거대한 중국 역시 그랬다. 우리는 자연의 심술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 방심과 잘못으로 벌어진 가장 미개한 짓을 해 버린 것이다.

나도 이제 내일 모레면 배를 타야 하는데 여기는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걱정스럽다”.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도 못 믿고 다른 이들도 못 믿겠다.

우리는 정(情)을 장점으로 갖는 민족이다. 그래서 자네와 나 사이에 그렇게 야박하게 굴 것인가 하면 모든 게 넘어 간다. 어쩌다 밤에 술이나 한 잔 사주면 더욱 미소 한방으로 모든 게 넘어 가는 게 십상이다. 안전조치는 잘했겠지, 자네만 믿네, 그러면 아! 걱정말게 그 정도는 책임지고 잘할 것 일세하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리 만만하던가. 개인사, 가정사, 조직 속에 상관의 눈치 등등 보다 보니 챙겨야 될 일이 방기되고 넘어가는 것이다.

작은 물구멍 하나를 남겨 두었는데 둑이 무너지고 마을이 붕괴되는 것이다. 말만 있는 원칙과 신뢰 그 허울 속에 사람들은 속고 속아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못다 핀 꽃송이들의 절규, 죽음으로 대한민국의 하늘은 잿빛으로 슬픔에 잠겨 있다. 홀연히 느낀 사람들은 우왕좌왕 네 탓으로만 느껴지는 일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금이야 옥이야 가슴과 생명으로 키워오던 꽃송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들은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다. 이제 목소리도 안 나오고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오열해 보지만 싸늘해진 아이들은 소리없는 아우성만 무심한 저 파도에 실어 보낼 뿐이다.

생각해 보자. 안전점검만 잘해도 교육만 잘 시키고 반복된 훈련만 했었어도. 언제나 이런 위험이 있음을 알고 있는 자들이 아니었는가?

당사자도 감독기관도 그들을 믿었던 사람들도 미몽 속에 헤매이었기에 벌어진 참사가 아니던가. 선진국은 건너뛰어서 이룩하는 것이 아니다. 촘촘하게 자기 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순간부터 오는 것이다. 여기에는 효율성이 아니라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원칙만이 존재 할 뿐인 것이다.

말이 아니고 행동하는 원칙은 무식할 만큼 융통성이 없어야 지켜 질 것이다. 국민적 합의로 만들어진 법은 누가 뭐라해도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누구든 조금씩 자리 잡을 때 선진사회란 말은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많은 꽃송이들이 피기도 전에 우리 어른들이 잘못으로 보내야 했던 우리 어른들은 처절하게 반성하고 아이들의 생명의 가치를 다시금 써 내려 가야 할 것이다.

이 아침에 나는 창가에 꽃비가 되어 내려지는 아이들의 영혼의 절규를 이렇게 느껴보고 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으로 키워왔던가. 그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얼마나 또 후회하게 될 것인가. 한 순간도 가슴을 내려놓지 못하는 수많은 부모들이 아닌가.

그러기에 적당히 어물쩍 정 때문에 그냥 대충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고 이 하늘을 향해 소리소리 가슴에 치솟아 오르는 분노의 외침을 외쳐 본다.

아! 대한민국이여 꼼꼼해지자. 그리고 우리 모두는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이 순간 느껴지는 이 가슴 떨리는 비극적인 아픔은 나만의 아픔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과 함께하는 이 시대의 기성세대이기를 나 스스로에게 탄식해 말해 본다.

내가 공직자임이 죄스럽고 슬퍼지는 아침이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면 언제 어디서나 역사 앞에 자랑스러워야 할 자긍심의 원천이어야 하련만 그들을 보낸 지금 이 아침에 짙게 드리워진 불신의 끈은 나의 온몸을 덧씌우고 이렇게도 슬프게 한다.

아! 통탄스럽고 아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