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현재로 받아들인 도시, 호이안
과거를 현재로 받아들인 도시, 호이안
  • 조미영
  • 승인 2014.04.18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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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여행&일상] <9>

제주 섬 곳곳에 봄꽃이 만개했다. 바다와 한라산 사이를 노랗게 혹은 하얗게 메우고 있는 경치들 속에서 어떤 아름다움이 이에 비길 수 있을까? 역시 자연이 주는 형형색색의 자연스런 변화야 말로 최고의 가치다. 하지만, 이런 자연적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은 그들의 삶의 흔적에서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유산은 그렇게 탄생한다.

 

베트남 중부의 작은도시 호이안은 과거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무역항이었다.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자리한 작은 도시 호이안은 15~19세기의 번성했던 무역항이다. 하지만 이후 인근의 다낭지역이 무역중심지로 부상하며 쇠락하게 된다. 초라한 어촌마을로 전락한 호이안은 20세기의 어지러운 역사 속에 잊혀 진 채 남겨진다. 덕분에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던 호이안! 나중에 그 진가를 알아본 유네스코에서 호이안의 구시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이후 지금은 관광지로 급부상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구시가
과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호이안을 다녀왔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구시가는 변함없이 따가운 햇살과 함께 나를 맞아주었다. 과거 묵었던 호텔이며 식당까지 고스란히 그대로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와 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앉았다. 창가로 내다보는 풍경들이 여전하다. 물과 잡화를 내다파는 노점과 옷가게 그리고 간간히 지나가는 오토바이들, 마치 고향을 찾은 이의 정겨움이 이와 같을까? 연신 비가 내리는 하노이의 눅눅함과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속도에 지쳐있던 나에게 이곳의 햇살과 한결같은 정겨움은 영양제와도 같은 활력을 준다.

 

씨클로를 타고 구경에 나선 관광객들.

구시가로 산책을 나섰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과거의 기억들을 추억해 냈다. 창문과 벤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 여행책의 표지사진이 되어주었던 고가의 지붕도 이끼가 좀 더 끼었을 뿐 모든 게 그대로다. 다만 기념품가게의 업종이 조금씩 변했다. 시대의 흐름과 유행에 따라 아주 작은 변화들이 일기 시작한 듯하다. 과거 이곳은 맞춤옷으로 유명했다. 빠르고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옷을 맞춰 입는다. 하지만 최근엔 맞춤 신발이 더 유행하는 듯하다. 곳곳에 신발가게가 많이 늘었다. 하지만 큰 틀에는 변화가 없다. 노란색감의 건물외벽과 다소 허름한 집들의 형태 그리고 투본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바와 레스토랑 등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등들까지 모두 여전하다.
 

과거 일본인들이 만든 일본 다리.
고가 입구의 고즈넉함.

일본교 앞에 다다르니 행사가 준비 중이다. 호이안의 구시가에는 고가(古家)와 박물관등이 있는데 이의 입장을 위해서는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마침 그날 호이안을 방문한 관광객중 티켓을 구매한 숫자가 600만이 넘어 이를 축하하고 있었다. 기념식과 함께 베트남 민속공연 등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같이 구경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느꼈다.

 

기념행사를 하는 모습.

해가 지면 호이안의 풍경은 또 한 번 변신한다. 색색의 등을 단 식당들이 화려하게 변신하기 때문이다. 강가에 배를 띄워 간이 바처럼 운영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작은 양초를 담은 소원등을 관광객들에게 판다. 나도 하나 사서 소원을 빌며 띄워 보냈다. 다리를 건너니 기다랗게 노점상이 펼쳐져 있다. 각가지 색상의 등은 물론 장신구와 기념품 등을 팔고 있다. 쇼핑에 흥미가 있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될 듯하다. 난 배가 고파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호이안의 특별메뉴는 까오러우와 화이트 로즈이다. 까오러우는 국물 없이 국수에 양념과 돼지고기를 얹어 나오는 국수이고 화이트 로즈는 하얀 만두외피가 장미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둘 다 맛있어 다음날에도 또 먹었다. 늦은 시간까지 구시가를 돌아다닌 덕분에 그날 밤은 아주 기분 좋은 꿀잠을 잤다.

 

불 밝힌 투본강의 다리.
밤이면 형형색색의 오색등이 켜진다.
새벽시장의 분주함.

다음날 아침은 아주 일찍 시작했다.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했지만 날씨가 맑지 않다. 대신 이른 새벽의 활기찬 시장을 찾았다. 베트남 서민들의 왁자지껄함이 여기 다 모였다. 싱싱한 채소며 과일들이 식욕을 자극한다.

시장을 빠져나오니 구도시의 골목은 어제 저녁과는 달리 고요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와 식당들 그리고 인적 없는 거리. 그래서 더 고즈넉하다. 이제야 제대로 구시가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어 내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사진도 찍고 집의 구조도 유심히 관찰하며 또다시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오르니 관광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시가는 또 한 번 그들의 발길에 흥청거릴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마저도 역사가 되며 시간의 결을 쌓아갈 것이다. 호이안은 그렇게 세월의 무게를 얹으며 과거의 유산을 현재의 가치로 승화해 내고 있다. 만약 그들이 구시가의 가치를 모르고 개발을 선택했다면 이 도시는 그저 스쳐 지나는 조그만 어촌마을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처럼 때론 개발이전의 보전이 더 높은 가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얼마 전, 제주의 밭담이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계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또 하나의 쾌거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이런 자연, 문화적 가치를 어떻게 보전운영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제주 섬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변을 내다보며 즐기는 식사.
호이안의 가치는 오랜 역사의 무게를 더할수록 높아질 것이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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