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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언제나 신성하고 숭고하기만 한가요?”
“국가는 언제나 신성하고 숭고하기만 한가요?”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4.01.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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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강연·글 등 엮은 「기억하라, 연대하라」 출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지난 2012년, 주간지 <시사저널> 조사에서 천주교계 전문가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 3위로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 뽑힌 바 있다.

1위는 이미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이었고 2위 역시 고인이 된 교종 요한 바오로 2세였다. 4위 또한 영화 ‘울지 마 톤즈’로 유명한 고(故) 이태석 신부였다. 천주교계 전문가들이 살아있는 인물 중에서는 강우일 주교를 가장 만나고 싶어 한다는 조사 결과인 셈이다.

강우일 주교를 아는 이들이 이처럼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를 그의 말과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강우일 주교의 강연과 글 등이 책으로 엮어진 신간 '기억하라, 연대하라' 책 표지.
최근 발간된 「기억하라, 연대하라」에는 그가 이 시대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제1부 ‘기억하라, 연대하라’에는 지난해 5월 22일 인권연대의 수요대화모임에 초청을 받고 서울에서 강연한 내용들이 수록됐다.

강연에서 그는 제주도와 제주 4.3 항쟁에 빗대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들을 이야기하면서 “국가는 언제나 신성하고 숭고하기만 한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바 있다.

“우리는 보통, 국가란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하는 굉장히 신성한 가치를 지닌 존재, 국민보다 높은 존재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런 사람들을 애국자, 순국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가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보았듯이 역사 속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너무 끔찍한 일들, 너무나 옳지 않은 불의와 죄악이 저질러져 왔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국가의 안보를 걱정하면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들, 그들이 말하는 국가의 정책이 국민들의 동의나 공감대 속에서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을, 그러니까 지배층의 소수 권력자들만을 위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들만의 편향된 사고와 이념,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위해서 국가의 이름을 내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국가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가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소박한 생각이 아닐까요.”

강 주교의 강연 내용 중 일부다.

책을 기획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강 주교에 대해 적은 내용을 보면 그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활동하거나 젊은 시절 활발한 사회 참여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주교가 되기 전 신부 시절부터 시대적 소명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해왔다.

작고한 김근태 등 젊은 운동가들이 설립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지도위원을 맡았던 데서 그런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짧은 본당신부 생활을 하다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있던 그가 제주교장으로 임명된 것은 지난 2002년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을 이어 서울대교구 교구장이 될 것이라던 관측이 많았던 그가 한국 천주교회에서 가장 작은 교구를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착취당해 온 아픈 역사가 있는 제주로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살고자 하는” 강 주교야말로 가장 든든한 힘이 됐다.

지난 2007년 정부가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하고 강정마을회 주민총회에서 ‘계획된 날치기’ 통과가 이뤄졌을 때, 천주교 제주교구가 가장 빠르고 단호하게 행동했던 것도 강 주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는 평화기도회’를 열어 단식기도에 돌입했고, 시국미사를 직접 집전하기도 했다. 제주교구에는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이를 중심으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은 더욱 활발하고 뜨겁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무장 없이는 평화가 지켜질 수 없다”고 했지만, 강우일 주교는 “인간들이 의지하는 군사력이 결코 이 땅의 평화를 지켜주는 보증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를 통해 호소했다.

오 국장은 또 강 주교에 대해 “언제나 전형적인 예언자의 태도로 늘 새로운 주제에 대해 말하며, 늘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고 호소한다”고 평가했다. 가령 FTA 문제가 대두되면 일단 협정문과 관련 도서를 모두 찾아 꼼꼼히 읽고 주위 신부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가 옳다고 생각한 바에 대해 굽힘이 없는 것은 자신의 평생을 바치기로 서약한 그리스도 교회의 가르침을 근거로 눈앞에 닥친 현안의 답을 끊임없이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도서출판 삼인. 오창익 기획.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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