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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1주년, 제주서 6명 독립유공자로 추서
광복 61주년, 제주서 6명 독립유공자로 추서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6.08.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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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출신 김희봉 선생 등 6명 애족장 등 추서

광복 61주년을 맞아 김희봉 선생 등 제주에서는 6명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됐으나 애족장 등은 4명의 유족들만  전수받는다.

14일 제주도에 따르면 8월15일 제51주년 광복절 행사에서는 서귀포시 대정 출신의 김희봉 선생과 전남 장성 출신의 임상규 선생이 애족장을 전수받는다.

임상규 선생의 경우 유족들이 서귀포시에 주소를 두고 있어 제주에서 받게 됐다.

또 제주시 구좌출신의 김태권 선생과 서귀포시 법환동의 변성현 선생은 건국포장을 수여받는다.

이와함께 서귀포시 월평동 출신의 조계성 선생과 제주시 출신의 정우생 선생도 애족장을 받는다.

그러나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는 조계성 선생의 경우 유족이 경기도에 주거하여 경기도 기념식장에서 전수를 받고, 정우생 선생은 유족이 없어서  유족에게 직접 전수되지는 않는다.

김희봉 선생(1907-1991)은 1926년 6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재학중 일본인 교장의 민족차별 언동에 항거해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퇴학당했고, 1931년 10월 일본에 건너가 전협 섬유노조 화가산지부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33년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의 비포책으로 활동하던 중 같은해 4월 화가산시에서 체포돼 징역 4년을 받았다.

임상규 선생(1869-1946)은 1919년 3월 10일과 11일 전남 장성군 백양산에서 박창수, 이창석 등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장성읍내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징역 1년을 받았다.

김태권 선생(1916-1938)은  1929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가 1932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출판 대판지부에 가입해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1933년 6월 전혀 화학신계지구 서부지구준비회에 가입해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같은해 9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해 공산당 신계시위원회 재건에 앞장서다가 1933년 10월 체포됐다.

변성현 선생(1916-1938)은 1934년 6월 제주도 서귀포에서 독서회를 조직해 청소년들에게 사회과학을 교육했으며, 같은해 9월부터 1935년 3월까지 토론회를 열어 제국주의 전쟁반대 등을 논의했다. 1935년 5월 갈개계를 조직해 부녀자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양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1937년 6월 징역 1년을 받았다.

조계성 선생(1880-1949)은 1918년 10월6일 제주 좌면 중문리에서 법정사  김연일 등과 함께 제주 각지의 일본인 관사들을 도외로 축출하고자 모의해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고 방화하는데 참여하고, 시위 군중들을 주도하다가 체포돼 징역 2년을 받았다.

정우생 선생(1913-1935)은 1932년 3월 일본 전현 대판지부에서 활동했고, 이듬해 3월 일본공산청년동맹 관서지방위원회 동지구 책임자로 활동했다. 1933년 7월 일본공산청년동맹 대판시위원회 책임자로서 반제동맹 활동을 통해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3년정도의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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