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건축을 말하다] <1> 안도 다다오의 작품인 본태박물관과 주변 이야기들
제주에 덧씌워진 오명 하나를 얘기해야겠다. 바로 제주 곳곳에 들어서 있는 박물관이다. 그래서 제주도를 ‘박물관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혹자들은 ‘박물관의 천국’이라는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으나 기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박물관의 천국’에서 ‘천국’이라는 의미는 박물관이 넘쳐서 제주도민들에게 문화적인 긍지를 안겨주는 ‘천국’이 아니라, 박물관을 너무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천국’이다. 제주엔 박물관이 너무 많아서 대체 몇 개나 되는지를 기자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게 박물관인가’라고 싶을 정도로 박물관답지 않은 박물관이 숱하다. 비슷비슷한 부류의 것도 너무 많다. 기자의 지인 가운데 제주도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는 이가 있다. 그 분은 “이런 것도 박물관이 될 수 있느냐”고 기자에게 자료를 보여준 적이 있다. 분명 박물관은 아닌데, 박물관의 등록을 받으려고 무늬뿐인 학예사를 고용한 곳이었다. 박물관으로 등록을 받으면 세제 혜택 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뚝딱뚝딱 건물을 지어 박물관으로 등록을 받으러 안달이다.
박물관은 공공의 것이어야 한다. 박물관은 그걸 만든 주인의 배를 채우려고 만드는 게 아니다. 주인의 배를 불릴 요량이라면 박물관으로 등록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기자로 하여금 박물관 얘기를 꺼내게 만든 건 지난 3일 본태박물관에서 열린 ‘박물관 문화를 더하다’의 주제로 열린 세미나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에서 전보삼 한국박물관협회장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 전보삼 회장은 “여기 와보니 펜스가 쳐 있다. 여기에 빌라를 짓는 걸 보니 제주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제주도는 자연친화를 강조하면서 그걸 살리지 못한다면 문제이다”고 했다.
‘빌라’며 ‘펜스’라는 말에 궁금증이 촉발했다. 이유인즉 SK핀크스 주식회사에서 추진하는 ‘핀크스 비오토피아 휴양리조트’ 사업 때문이었다. 이 리조트는 본태박물관과 바로 이웃한 곳에 있으며, 본태박물관이 앉은 터에 대한 의미를 헤집는 것이었다.
애초에 본태박물관은 SK핀크스 비오토피아내에 들어설 계획이었으나 입주한 이들의 반대로 현재 부지로 옮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연못’이었다. 비오토피아내에 들어설 계획이던 본태박물관은 주변에 연못을 낀 상태에서 설계가 진행중이었기에 부지를 옮긴다면 당연히 연못이 조성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SK핀크스측도 본태박물관의 핵심인 연못 조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본태박물관과 SK핀크스는 합의서를 작성했고, 확정된 연못은 상호 서면합의가 없는 한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SK핀크스측이 리조트 공사를 벌이면서 본태박물관 바로 남쪽에 위치한 연못을 리조트 사업에 포함,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더욱이 SK핀크스의 리조트는 본태박물관의 주변 조망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가 이뤄져 있다.
호사가들은 이를 두고 좋은 가십거리가 생겼다며 떠들고 있다. 현대와 SK라는 그룹의 대결 구도로 보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기자는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못마땅할 뿐이다. 애초 설계된 조경의 파괴는 이 건축물이 가진 생각의 훼손이라는 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박물관은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건물쯤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박물관은 내부의 콘텐츠 못지않게 건축물 자체로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물론 그래야 한다. 박물관을 만든다면 첫째는 건축물의 가치를 생각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박물관 건축은 달랑 건축물 하나만을 놓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박물관 건축이란 주변의 조화를 끌어들이려 한 작가의 의도까지 포함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박물관을 미술관로 별개로 분류하곤 하지만, 뮤지엄(museum)이라는 틀에서 보면 다를 게 없다.
건축물 자체로도 유명한 박물관은 숱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인 구겐하임 미술관은 뉴욕에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몰락해가던 스페인의 빌바오를 일으킨 건축물도 다름아닌 박물관이다. 지난 1991년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정부는 빌바오를 부흥시킬 유일한 방법은 문화산업이라고 판단,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한다.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그 땅에 들어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러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근민 지사가 간간히 소개하는 일본의 나오시마도 마찬가지이다. 그 섬에 작품성 지닌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섬을 바꾸고 있다.
본태박물관은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도심에 있는 박물관이 아니라, 제주의 자연을 안고 설계된 건축물이다. 안도의 작품이 그렇듯 본태박물관은 연못이 필수요소이다. 그렇다면 본태박물관을 설계한 안도는 자신의 작품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2편에 안도의 생각을 싣는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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