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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솔도 마을 황토집 그리고 왕이메 오름
[기고] 솔도 마을 황토집 그리고 왕이메 오름
  • 미디어제주
  • 승인 2013.07.2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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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제주포럼C 탐방 - 장진아 음악 프로듀서

삶의 시공간을 빚어내는 한 마을의 낮은 소리, 마음을 울리다.

솔도마을 초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소설의 한 주인공이 인생의 중반 무렵에 이르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문장을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의 제목도,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 하나 ‘인생의 중반 무렵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본다’라는 문장만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막연하게 그 글귀에 대한 살폿한 동경만 간직한 채 어느 덧 중반에 이른 내 자신을 깨달았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여러 의미로 ‘순례의 해’를 보내자는 마음을 먹고 고향 제주에 왔다. 18년 만에 돌아온 제주는, 치유와 평화의 땅으로 재부각 되고 있었으며, 나 역시 제주의 이곳 저곳을 탐방하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제주의 바람과 소리와 색깔을 이제서야 제대로 느끼던 중에 제주포럼C에서 주관하는 정기탐방 행사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강의를 듣고 있는 탐방객들과 오영덕 대표
최근, 서울에서도 ‘마을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동안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늪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뜻있는 사람들이 ‘공동체’ 회복 운동을 통하여 건강한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제주에 와서도 뭐랄까 관광지라던가 공공으로 내보여진 공간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기는 한 개인의 힘으로는 참 어려웠다. 그런 차에 이번 35회 탐방에 구성된 프로그램 중 ‘솔도 마을’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이정표 같았다.

제주의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솔도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확연히 다른 소리의 질감을 느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에 이는 바람과 그 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새소리 외에는 일체의 다른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 마치 어느 나라에서 시행한다는 씨에스타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마을이어서 아무 소리가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되려 탐방객들의 발검음 소리가 그 마을의 정적을 깨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솔도 황토집 전경
솔도 마을에는 그리 많지 않은 여러 채의 집들이 있었는데, 집의 모습들이 참 독특했다. 흙으로 빚은 집, 돌로 만들어진 집, 돌과 흙과 기와 지붕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디자인 한 것처럼 보이는 집 등등… 도시에서 소위 잘 지었다는 건축가의 솜씨는 분명 아니었다. 뭐랄까, 기존 문법을 부러 깨뜨리고 집주인들의 ‘자아’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집주인들을 보진 않았지만, 만약 보게 된다면 그 집들이 빚어내는 이미지가 고스란히 그 주인과 닮을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제주포럼C 사무국의 안내로 그 집들 중 ‘황토집’이라는 곳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바람에 너풀거리는 빛 바랜 듯한 질감의 통이 넓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탐방객들을 맞았다. 그 곳은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인 오영덕씨의 집이었고, 우리를 맞아 들이신 분 역시 그 분이었다. 기분 좋은 웃음을 받으며 우리들은 마당으로 들어서 저마다 자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솔도 황토집 내부
간단한 인사와 함께 마당에서 바람 소리를 들으며 오영덕 대표의 강의를 들었다. 흙집을 짓게 된 경위, 생태적인 자립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두런두런 펼쳐 놓으셨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나 강의를 하시는 분이나 편안한 기분으로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내실있는 강의였다.

오영덕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여 대체 의학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관심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 분야에 지속적인 연구를 해오신 분이었다. 17년 전 제주살이를 시작했고, 7년 전에는 솔도 마을에 황토집을 짓고 살고 있다. 살아 숨쉬는 공간에서 생태적인 자립방식으로 먹고, 입고, 치료하는 삶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분이었다. 뭔가를 한 번 하고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닌 그것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자아의 삶의 철학이, 살아가는 시공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분명 사회적 무게에 맞서야 하는 때도 있었을 것이고, 그 사회 속에서 결국 자아라는 무게에 맞서야 했을 것이다. 그 무게로부터 삶을 향한 중심을 견고하게 잘 지켜내신 분이었다. 그 시간의 지속성에 마음 깊이 박수를 드렸다.

솔도 황토집 연못에 핀 수련
한 시간 반 정도의 강의가 끝난 후, 참가자들과 두런두런 모여 앉아 도시락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마당 한 가운데 만들어 놓은 연못 위에 피어있는 수련도 감상했다.

식사 후에 대표님의 황토집 실내도 구경하게 되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의 호빗족 집이 연상되는 황토집 안은 ‘원’모양의 둥근 형태로 디자인 되었다. 사각형 구조와는 달리 원형 구조는 참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기운을 내뿜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삐뚤빼뚤 걸쳐진 선반이며 이층으로 통하는 계단들이 적이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건 왜인지… 자로 잰 정교함이라기 보다 손가락 마디로 재어서 계측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 뿜는 기운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강의와 실내 탐방과 식사가 끝나고 아쉬움을 뒤로 하며 솔도 마을을 나왔다. 솔도 마을 초입에 걸려있던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은은한 종소리를 내뿜고 있었고, 초입 간판에는 ‘소리를 낮게 하시오’란 글귀가 고요하고 평화롭게 그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그 곳을 뒤로 하고 우리가 탄 대형버스는 또 다른 곳으로 우리를 실어다 주었다.

 
왕이메 오름
탐라국의 삼신이 하늘에 제를 올렸다는 왕이메 오름에 도착했다. 360여 개의 오름 중 몇 안 되는 원형 분화구가 있는 오름으로 분화구는 110m 깊이이다. 드라이브로 이 근처를 왔다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곳에 오름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편백 나무 숲이 울창하게 들어선 왕이메 오름을 줄지어 걸어 올라갔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완만한 경사의 오름이었다. 어느 정도 올라간 곳에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이 나왔고, 역시 줄지어 분화구로 내려갔다.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오름보다 내림이 더 힘들긴 한가보다. 분화구 바닥까지 내려가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더니 둥근 원형이 빚어놓은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과 초록빛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옆에 있는 분들이 꽈리를 따서 입에 넣고 맛을 보기도 하는 등 참으로 평화로운 초록 풍경이다. 약간의 비가 내렸으면 더 운치 있을 법한 포근한 장소였다. 안내자의 말대로 원형 분화구답게 이 곳은 부드러운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 하니 왜 하늘의 삼신이 이곳에서 제를 지냈는지 알 법도 하다.

왕이메 오름에 있는 편백나무 숲
솔도 마을과 왕이메 오름, 두 곳의 탐방을 마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아침에 집결했던 한라수목원 근처로 돌아온 후, 각자 저마다의 일상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탐방은 마무리 되었다.


 
솔도 마을도 왕이메 오름도 우리가 가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그 곳에 존재하고 있는 곳일 터인데 기이하게도 그 때의 시간과 공간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잃어버린 시계를 찾으러 들어갔던 곳인 것 같은 아주 묘한 공간에 있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곳을 갔다가 돌아온 이는 들어가기 전과 분명 달라져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게 몇 만분의 일만큼이라 해도…

건강한 장소를 찾아내어 안내해 준 제주포럼C와 삶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신 오영덕 대표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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