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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5> 터미네이터 : 미래는 인간이 만드는 것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5> 터미네이터 : 미래는 인간이 만드는 것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3.05.20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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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본능을 지닌 인간과 이기적 인간에 대한 경고 메시지

미래도시의 두 번째 영화는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봇 병기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이름 그대로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터미네이터는 영화내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터미네이터><아바타>로 유명한 제임스 카메론이 메가폰을 잡았다. <터미네이터>는 지난 2009년까지 시리즈로 줄기차게 나올 정도로 재미와 흥행을 가진 작품이다. 1984년 처음 등장한 <터미네이터 1>1991년 작품인 <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은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을 맡았으나 <터미네이터 3-기계들의 반란>(2003)은 조나단 모스토우가, <터미네이터 4-미래 전쟁의 시작>은 맥지 감독이 각각 맡았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시리즈물이기에 어느 한 작품만을 놓고 영화를 평가할 경우 자칫 흐름이 끊길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1><터미네이터 2-심판의 날>을 통해 우리의 도시건축과 미래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림 1. <터미네이터 2>에 나오는 핵전쟁의 모습. 영화에서는 ‘심판의 날’로 부른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핵전쟁 이후 벌어지는 인간과 기계의 다툼을 그리고 있다. 여기엔 두 개의 시점이 있다. 영화마다 미래의 시점은 같다. 인간과 기계의 다툼이 절정에 다다른 2029년이 영화 속 미래의 배경이다. 미래에서 바라보는 과거, 아니 영화속의 현실은 각각 영화가 개봉된 해와 같다. <터미네이터 1>1984, <터미네이터 2>1991년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2029년 미래가 과거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있다. 과거를 없앰으로써 미래를 바꾸려는 게 목적이다. 기계는 그들에게 반항하는 인류저항군 테크 컴의 우두머리인 존 코너를 없애기 위해 그의 과거를 지우려 한다. 그래서 터미네이터라는 기계를 과거로 보낸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미래의 인간들은 과거의 존 코너가 사라지면 미래의 자신들도 없다는 위기감에 미래의 전사를 보호하려 터미네이터의 대항군을 보낸다. 대항군을 보내는 이는 미래의 존 코너 자신이다.

2029년 미래도시는 컴퓨터 방어 시스템인 스카이넷이 장악을 하고 있다. ‘스카이넷은 미군의 전략방어를 위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개발됐다. 영화 속에서는 199784일 이후의 모든 시스템은 스카이넷이 자동적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후 스카이넷은 인공지능으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스카이넷의 성장을 우려한 인간들이 그것을 저지하려 하자, 스카이넷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러시아를 향해 핵탄두를 발사한다. 핵전쟁의 시작이며, 인간 종말의 시작이다. <터미네이터 2>의 부제가 심판의 날인 건 이 때문이다. 인간끼리의 핵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절반 이상은 사라지며 남은 자들은 이날을 심판의 날이라고 했다. 이후 인간은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기계들과 또다른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림 2. 핵전쟁 이후의 미래도시는 모든 게 파괴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림 3.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바라본 과거의 모습. 영화에서는 미래보다 ‘인간적인’ 과거가 오히려 낫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스카이넷은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와 닮았다. ‘빅 브라더는 권력자들의 사회통제 수단이다.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이라는 통제기구를 가지고 있다. 텔레스크린은 송수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구와 마이크로폰과 사상경찰, 어린이들로 구성된 스파이단으로 이뤄진다. 텔레스크린은 집안의 방, 거리, 광장 등 어디에나 장치돼 있고 마이크로폰은 산이나 야외 곳곳에 숨겨져 사람들의 속이야기까지 탐지를 한다.

더구나 소설 1984빅 브라더는 과거를 통제하려 든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이론을 만들어 과거의 모든 기억을 뜯어고친다.

조지 오웰은 1984를 발표한 다음해인 1950년 숨을 거둔다. 그의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이 놀라울 정도이다. 소설 1984에서 강조하는 과거를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보이는 과거 지배와 닮았다. 다만 다른 점은 1984는 과거의 사실을 조작하려 한 점이며, <터미네이터>는 첨단기술을 활용해 직접 과거로 돌아와 역사를 바꾸려고 하는 점이다.

<터미네이터 1>은 장차 존 코너를 낳게 될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를 죽이려고 스카이넷이 파견한 ‘T-800 모델 101’이라는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사라 코너를 보호하려고 미래에서 온 카일 리즈(마이클 빈)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이어진다. 결과는 늘 그렇듯 인간이 승리한다. <터미네이터 2>에서는 존 코너의 어머니가 아니라 존 코너를 겨냥한다. ‘테크 컴을 진두지휘하는 존 코너를 없앨 방법으로 택한 건 1991년의 어린 존 코너를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다. ‘스카이넷은 종전 모델 101보다 훨씬 진화한 모델인 T-1000(로버트 패트릭)을 보낸다. 존 코너는 이에 맞서 어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프로그램을 재생한 터미네이터 모델 101(아놀드 슈왈제네거)을 과거로 보낸다.

SF영화가 그렇듯 영화는 현실과는 동떨어진다. 그럼에도 영화 속 주인공들이 뱉는 대사는 다가오는 미래엔 인간을 닮은 기계의 등장은 물론, 과거 여행도 가능하게 들린다.

사라 : 기계라고요? 로봇 말이에요?

카일 : 로봇이 아니라, 사이보그. 인공두뇌 유기체요.

사라 : 난 바보가 아녜요. 그런 건 못 만들어요.

카일 : 아직까진 그렇죠. 40년 후엔 가능해요.

사라 : 미래에서 왔단 얘긴가요?

카일 : 실현가능한 미래에서요.

로봇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에서의 속도는 더욱 빠르다. ‘로봇의 어원은 노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이 부려먹는기계로서의 이미지가 바로 로봇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인공두뇌를 지닌 사이보그, 더 나아가 <트랜스포머>에서처럼 오토봇군단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오토봇은 그들만의 생명체를 지닌 별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보다 더 탁월한 이성을 지녔다.

그렇다면 영화 <터미네이터>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떨까. 그다지 밝지 않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래의 모습은 폐허 그 자체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도시의 육상은 핵전쟁으로 파괴된 잔해만 가득하고, 밤마다 인간과 기계의 전쟁이 벌어진다. 인간은 기계의 공습을 피해 지하세계에 산다. 그 곳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과 고통에 찬 인간들의 신음만 가득하다. 사라와 카일의 대화에서도 미래의 암울함이 읽힌다.

그림 4. 미래 세계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전쟁이 늘 벌어진다.
그림 5. <터미네이터 1>에 등장하는 지하세계. 미래의 인간들이 사는 공간이다. 이 곳에서 인간들은 굶주림에 허덕이며 생활하고 있다.
사라 : 전쟁을 봤나요?

카일 : 못 봤어요. 난 그 후에 자랐죠. 폐허속에서 굶주리고 H-K(헌터 킬러)를 피해서 다녀요. 우린 전멸해가고 있었죠.

로봇은 기계문명을 대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 건 바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기계문명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간들은 기계와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할 날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로봇에 열광한다. 이유는 단 한가지에 있다. 로봇은 인간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1, 2에 등장하는 모델 101은 서로 다른 감성을 지녔다. 아니, 감성이라기보다는 명령에 충실한 사이보그이다. <터미네이터 1>에서는 사라 코너를 죽여야 한다는 미션 완수를 위해, <터미네이터 2>에서는 존 코너를 지켜야 한다는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영화는 제 아무리 미래의 스카이넷이 날뛰더라도 현재라는 시점에서의 로봇은 명령 이상의 것을 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건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제시하고 있는 로봇의 3원칙을 지키려 한 듯하다. 로봇의 1원칙은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면 안 된다이며, 2원칙은 인간을 해치지 않으면서 무조건 복종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터미네이터 2>의 모델 101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간에 복종하는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모델 101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존 코너의 명령을 접수하고, 결국엔 인간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인간화 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T-1000이 용광로에서 사라진 뒤 모델 101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유는 자신이 남을 경우 자신의 뇌에 남긴 칩 하나가 위험한 세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림 6. 모델 101이 존을 향해 “네가 왜 우는지 알고 있다”며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모델 101 : 여기서 끝내야 돼.

: 가지 말라고 내가 명령하잖아.

모델 101 : 네가 왜 우는지 알고 있다. 인간만이 흘릴 수 있지.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의 마지막은 로봇을 위한 것이다. 3원칙은 ‘1, 2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을 보호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모델 101<터미네이터 2>에서 2원칙인 명령도 무시하고, 3원칙인 스스로의 보호 원칙도 깨고 있다. 로봇이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극히 인간적인영역을 모델 101은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터미네이터 2>의 모델 101은 이미 인간화 된 로봇의 미래상을 예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미래도 아닌, 인간화된 로봇도 아닌 바로 인간 자신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인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기계, 즉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 분자를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로봇이다고 정의를 내렸다. 도킨스가 인간을 향해 로봇이라고 한 표현은 그렇지만, ‘생존을 위한 기계라는 점은 수긍이 간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터미네이터 2>에서 존 코너와 모델 101인간에 대한 대화를 곧잘 한다. 다음은 사막의 한 마켓 주변에서 총싸움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둘이 나누는 대화이다.

그림 7. <터미네이터 2>에서 ‘인간의 파괴 본능’을 보여주는 한 장면. 영화 속 주인공들이 우려하는 건 바로 인간 자신들이다.
존 코너 :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들이요.

모델 101 : (애들을 바라보며) 인간은 파괴 본능이 있다.

존 코너 : , 그래서 걱정돼요.

인간이 인간을 향해 파괴 본능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터미네이터인 모델 101이 인간의 파괴 본능을 우려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파괴 본능을 지닌 인간은 새로운 걸 계속 추구한다. 로봇의 진화도 그런 인간의 노력의 한 부분이다. 로봇의 진화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술개발의 상징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로봇이 안드로이드, 혹은 안드로이드를 뛰어넘는 인간화에 가까울수록 기술개발에 대한 우려가 따른다. 영화는 핵전쟁의 위험성을, 기술개발이 낳은 첨단화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첨단화는 결국 인간의 멸종을 뜻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어쨌든 인간이 만드는 세상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그럼 이런 발전만이 능사일까? 개발만이 인간을 흡족시킬까?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로봇은 인간사회의 부산물인가라고 묻고 있다. 오히려 영화는 인간들이 첨단로봇을 만들면 만들수록 인간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2029년의 미래는 암울하고, 참혹하다. 때문에 영화가 선택한 건 암울한 미래가 아닌 과거이다. 인간들이 기계문명에 내준 주도권을 가지려면 과거뿐이다<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잘라 말한다. 이건 우리가 앞으로 바라볼 미래도시에도 적용된다. 모델 101이 말한 인간의 파괴본능은 전쟁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인간에게는 파괴의 대상이다. 건축 행위를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걸 파괴하고 있는가. 있어야 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이익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모델 101이 말한 파괴본능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인간이 아닌 진실한 의미에서의 인간이어야 우리의 도시미래도 밝게 그려지리라 본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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