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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3> 세 번째 주제 ; 감성의 도시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3> 세 번째 주제 ; 감성의 도시
  • 고성천
  • 승인 2013.05.09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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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공간에서 ‘장소성’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
고성천 시유재 대표·건축가

<미디어제주>건축영화를 담은 고품격 인문학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오는 516일부터 현장 건축기행을 포함해 모두 5차례에 걸쳐 미디어제주 제1회 인문학 강좌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김태일 교수와 함께하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입니다. 이번 인문학 강좌는 주제가 그렇듯 영화를 통해 도시건축을 말하려 합니다. 건축은 쉬울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어려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제주>는 이번 인문학 강좌의 시행에 앞서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미디어제주> 지면을 통해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를 설명하게 됩니다. 여기엔 건축 전문가와 건축 비전문가의 글이 번갈아 실립니다. 건축 전문가로는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가, 건축 비전문가로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가 영화를 본 뒤 글을 씁니다. 지면에 나갈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모두 13편의 영화 이야기가 펼쳐지며, 제주도내 건축가들의 비평도 아울러 실으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주]


  건축사사무소 시유재 고성천 대표.
우리 일반 소시민들은 건축·도시에 대하여 공부를 해 본적이 거의 없다. 영화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우리들은 이 두 가지를 빼 놓고 살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 각 대학에서 학기 초에 수강신청을 하는데, 신청자가 몰려 인원 제한을 하는 과목이 있는데 바로 건축학 개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교양과목도 아닌 전공 기초과목인 이 과목은 건축학과 학생들이나 수강하는데, 비전공자들이 수강신청이 많은 것은 건축가로서 반가운 일이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영향이 많겠지만, 그 내면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그 도시를 이루는 핵심 요소인 건축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고, 알고 싶은 당연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영화에 대해 공부해 본적이 없지만 영화를 보고 비평을 하고 감동을 받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반면에 우리는 음악, 미술 등은 공부한 경험들이 있다. 전문가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기본적 교양 수준의 공부는 초··고교 때 받았다. 건축과 영화는 음악, 미술 이상으로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건축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삶아가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장소와 공간은 건축과 도시를 모토로 이루어진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후반부에서 서연의 집이 완공되고 나서 잔디가 덮인 지붕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누워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그 동안의 고민과 번뇌를 내려놓는 듯한 장면과 마지막 장면인 폴딩도어 창가에서 첫눈 오는 날 한옥에 남겨 두었던 CD 음악을 들으며 건축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이며 영화 속의 배경이 된 건축이 얼마나 큰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장면 이라 할 수 있다. 지붕 장면은 건축의 배경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준다면, 마지막 장면인 바다를 향해 열리는 창문은 건축의 주관자가 되어 자연을 건축 안으로 끌어 들이는 강한 건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림1> 완성된 서연의 집 지붕에서 두 주인공들이 못 다한 책임을 다한 듯 쉬고 있는 장면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의 대학시절 첫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집에서부터 학교를 오가는 일상의 생활 영역을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면 체계적으로 정리를 하여 보여주지만 일반인들은 늘 경험 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느끼고 흘려버려서 정리를 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전문가나 일반인 들이나 모두 같은 것다. 그래서 사람은 공간과 장소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건축을 알고 느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건축학 개론수강이 한때 흥행한 영화이기에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다루는 것이기에 교양과 공부가 필요해서 그 인기가 유지되길 바라는 것이다.

또 이 영화의 한 가지 명장면은 대학 1학년 시절 남녀 주인공이 빈집 개량 한옥에서의 이야기이다. 한옥은 건축 속에 들어와 있는 자연을 느끼기에 좋은 공간이다. 대학 1학년 주인공들의 순수한 감정이 빈 마당과 대청마루를 통해서 더욱 정화되며, 첫 눈 오는 날 만나기로 했지만 승민은 방에 눈물을 흘리며 일부러 그곳에 나가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CD가 택배로 서연에게 전달되면서 이 한옥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소성을 갖는 건축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이들에게 추억의 장소로 승화되는 역할을 한다.

<그림2> 둘만의 장소성을 지닌 개량 한옥의 마당
우리 건축가들은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있다. 건축학 개론을 강의하는 교수의 대사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 하는 것, 이것이 건축학 개론의 시작이다.” “그곳에 살고 싶다. 좋은데 가서 놀다와! 요즘 날씨 좋잖아!” 이러한 교수의 대사들은 우리가 현실에 급급한 일상에서 건축을 감성으로 접근 할 수 있게 하는 너무도 좋은 가르침 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 서연이 승민에게 피아노 방을 요구하며 설계변경을 요구한다. 약혼자와 회사 상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민은 설계변경을 하고 직접 현장에서 일을 하며 공사를 마무리 한다. 이것은 영화 내용상 두 주인공의 연민의 정이 있어서 가능한 것 일 수도 있으나, 건축가 자신의 작업을 아끼고 소중한 완결을 보고 싶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완공 후 잔디 지붕에서의 휴식과 이삿날 승민이 먼저 서연의 집에 와서 사진 촬영을 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직업 정신과 쟁이 근성이 점점 약화되는 현실에 우리 건축 전문가들이 돌아봐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건축적 접근과 사고는 건축을 전공하고 각본을 쓴 이용주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림3> 건축가 이승민이 책무를 마치고 사진 촬영 하는 모습
영화 파이란은 빈민 아파트 쓰레기통 같은 방의 분위기에서 나오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반항적 소외된 자들의 삶을 잘 대변한다. 반면에 파이란이 살던 세탁소의 허름한 뒷방은 낡은 서민 주택의 쪽방 이지만, 여 주인공의 마음이나 몸가짐처럼 정갈하고 아주 소박한 분위기의 건축이 배경이 된다.

이처럼 건축은 그 공간을 지배하는 사람의 심적 상태를 나타내며, 사람과 공간은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며 상대로 인해 자신이 표출되는 미묘한 관계를 이룬다.

남자 주인공 강재가 여 주인공 파이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장소와 공간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오락실에서, 어지러운 서민 아파트, 도시의 후미진 뒷골목, 화장한 파이란의 유골을 들고 찾아간 세탁소 뒷방에 이르는 과정이 공간이 전위를 통해 건축의 배경이 되어 영화의 전개에 따라 주인공 강재의 심리를 잘 표현한 영화이다.

<그림4> 강재의 어지러운 생활공간
<그림5> 파이란의 정갈한 공간
연풍연가는 제주도의 좋은 자연경관과 인문학적 요소들을 배경으로 서울 총각과 제주 처녀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이 전개된다.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해피엔딩으로 종결된다. 제주도가 신혼 여행지로 각광 받던 때에 제주도가 배경이 되어 청춘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제주의 많은 관광지가 배경이 되지만 그 때 당시에는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제주의 인문학적 배경이 자주 등장 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 주인공 영서는 남 주인공 태희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에요. 길 같은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거든요. 어딜 도착해서 뭘 보길 원하지 가는 길에 뭐가 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나 봐요.” 참으로 맞는 얘기이다. ‘걸음은 길을 만들고, 길은 문화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길은 과정이며 인문학이다. 우리 일반인들은 역사와 과정 보다는 최종 결과에 관심이 많다. 도시와 건축은 성장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중에 잠깐 현시점에서 우리들이 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시는 천년 역사를 지난 도시이다. 그 중에 우리는 수십 년 정도 관여한다. 그것도 대부분 소극적 관여가 많을 것이다.

위의 여 주인공 영서의 대사가 나오는 시점의 장소는 용눈이 오름과 그 하단에 있는 산담 군집이다. 제주도의 가장 대표적인 자연 경관이며, 인문학적 요소이고 서사적 풍경이다. 제주도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좋아하는 제주의 속살이다. 이러한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매력은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을 구체화한 제주의 지역성일 것이다.

<그림6> 용눈이 오름과 산담의 서사적 풍경
요즘 건축계에서 화두가 되는 새로운 지역성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있는 시점에서 이 영화는 건축가 들이 되새겨 봐야 할 부분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 장면은 영서의 집인 약방 건축물에서 보여지는 제주석으로 지어진 상업+주거형 건축으로, 영서와 엄마의 외로운 생활과 육지 남자를 경계하는 제주 여인들의 삶과 그 시대상을 건축물에 지역성을 대입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림7> 제주의 지역성을 내포한 약방 건축
또한 도시 공간적 맥락에서 장소성의 의미가 중요한 것임을 잘 보여주는 요소가 있다. 이 영화의 초반, 후반,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그 아래 벤치가 있는 장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개 아니지만, 두 주인공에게는 사랑의 시작과 기다림 그리고 재회를 나누는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나타난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개량 한옥과 같은 장소성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8> 두 주인공의 특별한 장소성을 갖는 나무와 벤치
건축학개론, 파이란, 연풍연가 세 영화 모두가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감성의 도시에 적합한 영화들이지만 사랑의 배경이 되는 건축, 도시, 장소는 너무도 서로 다르며 건축이나 공간, 장소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는 물론 성격을 달리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다.

이처럼 도시, 건축, 공간, 장소는 영화를 통해서만 의미가 부여되고 우리에게 인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3자인 관객 입장에서 보니 그것이 느껴지고 쉽게 와 닿는 것일 뿐 항상 우리의 일상에 같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삶에 관여하는 요소들을 우리가 인지하고 정리해 갈 줄 안다면 -건축학개론에서 강의시간에 집에서 버스타고 학교까지 오는 루트를 정리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각자의 의미 부여가 많아지는 더욱 풍부한 삶이 될 것이다. <고성천·건축가·시유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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