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7:02 (일)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0> 건축학개론 : 첫사랑, 추억,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도시와 건축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 <10> 건축학개론 : 첫사랑, 추억,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도시와 건축
  • 김태일
  • 승인 2013.04.25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우리는 삶의 공간에 추억의 흔적을 남기려 노력하는가"
-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미디어제주>가 ‘건축’과 ‘영화’를 담은 고품격 인문학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오는 5월 16일부터 현장 건축기행을 포함해 모두 5차례에 걸쳐 ‘미디어제주 제1회 인문학 강좌’를 개최합니다. 주제는 ‘김태일 교수와 함께하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입니다. 이번 인문학 강좌는 주제가 그렇듯 영화를 통해 도시건축을 말하려 합니다.
축은 쉬울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어려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미디어제주>는 이번 인문학 강좌의 시행에 앞서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미디어제주> 지면을 통해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를 설명하게 됩니다. 여기엔 건축 전문가와 건축 비전문가의 글이 번갈아 실립니다. 건축 전문가로는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가, 건축 비전문가로는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가 영화를 본 뒤 글을 씁니다. 지면에 나갈 미리 보는 인문학 강좌는 ‘영화 속 도시건축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모두 13편의 영화 이야기가 펼쳐지며, 제주도내 건축가들의 비평도 아울러 실으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주]

오늘 다루고자 하는 도시건축의 영역은
감성의 도시에 대한 내용이다. 리스본 이야기도 소리를 통한 감성적인 도시의 이야기, 역사적인 도시의 의미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기억의 공간을 통해 감성의 도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은 다르게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최근에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터라 영화가 우리에게 전해준 감미롭고 풋풋한 이야기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개봉 당시부터 영화 건축학개론은 몇가지 점에서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톱 배우 엄태웅씨와 한가인씨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각본과 감독을 맡은 이용주 감독 자신이 건축을 전공하였다는 점, 그리고 영화내용 전개에 맞게 실제로 증개축을 하면서 촬영하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평범한 생활을 해온 두 청춘 남녀, 승민(엄태웅 역)과 서연(한가인 역)이 건축학개론 교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게 되고 오랜 이별 과정속에 기억의 공간, 추억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뒤늦게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각자 꿈꾸었던 미래를 향해 원래대로의 삶을 살아간다는 줄거리로 건축학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첫 사랑의 이야기를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개해 나가는 것이 흥미롭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파편적으로 던지고 있다. 스스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항상 여린 마음으로 바라만 보며 희망과 좌절을 경험하는 젊은 남녀대학생의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고 현대 한국사회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의미, 그들이 만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무대인 집, 그리고 도시의 이야기를 함축적이고 서사적으로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럼 영화 건축학개론이 파편처럼 던진 몇 가지 주제를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첫 번째 주제는 건축가와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를 던지고 있다.

주인공 서연이 승민의 설계사무소를 찾아 설계를 의뢰하면서 서로 의견충돌의 대화속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승민 : “집은 왜 짓는데?” “그 비싼 강남에 사는 사모님께서 구태여 제주도 촌구석에서 집을 짓는다는게 그게 뭐냐고?”

서연 : “공기가 좋잖아!”

승민 : “남편이 돈을 잘 버는가봐! 공기가 좋은 곳에 집도 뚝딱 짓고. 아 투기야? 허기야 제주가 올레 때문에 핫하기는 하지! 잘만 하면 꾀 남을거야.”

서연 : “그래 돈지랄이야. 집짓는 이유가 그리 중요해? 왜 내가 사기라도 칠까봐?”

승민 : “그게 아니라 왜 집을 짓는가 그걸 알아야 어떤 집이 필요한지 알지! 너를 잘 알아야 너에게 잘 맞는 집을 지을거 아니야!”

건축이란 평당 단가로 결정되기 이전에 고민해야 한 사항들이 많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등등. 궁극적으로 건축주의 꿈, 희망을 세밀하게 분석, 파악하고 이를 공간화하는 작업이 바로 건축가이며 삶을 조직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반복적으로 암시라도 하듯이 주인공 서연과 승민이 건축학개론 강의를 들으면서 서연이 제안한 미래의 집 설계 요청에 대하여 승민은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림1>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서연이 그려보는 미래의 자기집 그림(위)을 근거로 하여 공간화하고 제작한 모형을 보여줌으로서 건축의 본질적인 면을 암시하고 있다.
감독자신이 건축전공 출신자로서 한국사회에 직면해 있는 직업으로서의 건축가의 현실과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를 언급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둘째 주제는 소통과 공존의 도시건축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남녀 주인공은 좋아하지만 그리고 사랑하지만 스스로 말하기를 어려워했고 상처받기가 두려워 스쳐지나가는 만남으로 끝나게 된다. 소통의 부족은 사람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듯이 소통 없는 건축은 삭막하고 건조한 공간과 삶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주인공 승민 모친이 남긴 여기서 30년 이상 살았는데 이제 어디서 가서 정붙이고 살어. 나는 그저 여기서 마져 살다가 죽을래라는 대화는 화려한 도시 뒤에 존재하는 서민들의 생활공간과 재개발 등은 우리들 삶의 일상이기도 하고 도시건축의 문제점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좋은 도시, 좋은 건축은 과거의 흔적과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좋은 도시, 좋은 건축은 소통의 과정속에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소통은 이해당사자간의 소통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과의 소통, 역사적 흔적과의 소통, 오랫동안 축척되어 왔던 지역사람들의 흔적과의 소통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림2> 두 주인공이 답사과정속에 보여주는 현대도시의 풍경. 삭막하고 고독한 분위기의 콘크리트 숲의 모습(위)과 아늑한 분위기의 개량한옥이지만 개발에 밀려 빈집(아래)으로 남아야 하는 시대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셋째 주제는 기억의 공간, 추억의 공간이 도시와 건축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잠시 영화속 두 주인공이 설계과정에서 나눈 대화를 정리 해보도록 하자.

승민 : “뭐가 마음에 안드는데?”

서연 : “잘 모르겠는데 너무 낯설어!”

승민 : “새로 짓는데 그럼 낯설지 친숙할까?“

그래서 제안된 것이 증축이었다. 증축을 하면서 기존의 집이 갖는 땅과 공간, 그리고 추억을 새롭게 되새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궁리를 하게 되면서 설계의 방향은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그림3> 주인공 서연의 옛집에 남겨진 아련한 추억의 흔적, 키재기 표시눈금(위), 수돗가의 발자국(중앙)은 낡고 허름한 주택이지만 더욱 값지고 공간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를 다양한 형태로 남겨둠(아래)으로서 추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건축이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다.
이것이 건축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서연이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의 벽면에 남겨진 키를 재기 위해 표시한 눈금, 그리고 6살 때 만들어진 수돗가와 그 속에 남겨진 작은 발자국도 그러하다. 굳이 건축과 관련지어 표현하자면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공간을 새롭게 들여다보며 과거의 이야기, 과거의 추억을 뒤돌아보는 상징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사랑, 첫 키스, 첫 아이, 첫 직장, 첫 보금자리. 처음 이사한 곳 지역(도시).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귀중한 추억들이다.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첫 번째의 경험이기 때문에 특정 공간과 장소, 건축과 도시에 대하여 소중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뒤돌아보며 아련한 추억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 추억이 깃든 장소에 대해 기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찾아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속에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장소와 건축이 있는 것인가? 불행하게도 우리의 도시와 건축에는 소통하려는 작업, 추억의 흔적을 담아두고 남기려는 노력과 치밀한 계획이 없다. 그러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애착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의 말미는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4> 가장 인상 깊은 장면중의 하나인 이 장면은 복합적이고 함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추억의 흔적이 남겨진 낯설지 않은 공간이자 아름다운 제주의 해안풍경이 가진 미래를 향한 꿈과 사랑,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하는 주인공 서연을 위해 만들었지만 전해주지 못했던 미래의 서연 집 모형과 도면은 소중한 사랑의 추억이자 희망의 상징물이었다. 학창시절 약속한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아련한 아픔의 추억을 희망으로 바꾸어 가며 살아가는 장면, 그리고 영화속 마지막 장면에서 추억의 흔적이 남겨진 거실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아름다운 해안풍경을 통해 영화가 전하고 있듯이 우리의 도시건축도 아직은 꿈과 희망이 있다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떠한 도시건축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일까? 추억담기, 흔적 지우지 않기, 소통하기, 사람들의 생활담기. 제주의 도시건축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 일본 효고현 장수사회연구소 연구원
- 제주 도시건축을 이야기하등 저서 다수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