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마장 길 위의 봄
갑마장 길 위의 봄
  • 고희범
  • 승인 2013.03.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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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의 제주이야기] 제주포럼C 제31회 제주탐방 후기

'제주마'로 불리는 제주 재래마는 '조랑말'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이 이름은 '상하의 진동없이 아주 매끄럽게 달리는 주법'을 뜻하는 몽골어 '조로모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주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이미 말을 기르고 있었다. 그때의 말은 키가 과일나무 아래를 지날 수 있을 만큼 작다 하여 '과하마'(果下馬)라고 불렸던 종으로 보고 있다.

제주가 몽골의 실질적인 지배하에 있던 시절 몽골은 1276년부터 성산읍 수산리 수산평 일대에 '탐라목장'을 설치하고 호마 계통의 몽골말과 서역마(西域馬)를 들여오면서 말의 교잡이 이루어지게 된다. 결국 지금의 제주마는 5세기 이전부터 제주에 있었던 과하마가 고려시대 들어온 호마와 오랜 세월 혼혈로 잡종화하면서 제주의 기후와 풍토에 알맞은 고유의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제주마'는 제주 재래마로서 천연기념물인 제주마의 경우 평균 키가 암놈 119cm, 숫놈 122cm, 체중은 230~330kg이다. 대체로 몸 앞쪽이 뒷쪽보다 낮고, 머리가 체구에 비해 크고, 눈이 머리에 비해 커서 귀엽고 온순한 인상이다. 영리한 데다, 성격이 온순하고 끈질겨 하루 32km씩 22일동안 행군을 해도 잘 견디고, 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게 장점이다.

 

 

제주도에 본격적으로 목장이 형성된 것은 조선 세종 때로, 세종의 총애를 받던 제주 출신 고득종의 건의에 따라 이루어졌다. 해발 200~600m 지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설치한 국영목장 '십소장'(十所場)과, 제주도 동부 해발 400m 이상 산간지역의 '산마장'(山馬場)이 대표적인 목장이었다.

 

산마장에는 '갑마장'(甲馬場)을 두어 산마들 가운데서 골라낸 품질이 가장 뛰어난 '갑마'를 따로 관리했다. 조선 최고의 말을 사육했던 갑마장은 표선면 가시리 일대의 번널오름,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을 연결하는 초지대에 설치되어 1794년부터 100여년 동안 유지됐다.

600년 목축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시리는 마을회가 농림부의 지원을 받아 조랑말 체험공원과 갑마장 둘레를 따라 걷는 '갑마장 길'을 조성해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삼은 문화공간을 마을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갑마장 길은 갑마장 전체를 한바퀴 도는 20km 코스와 갑마장 남쪽 끝 부분을 돌아보는 10km의 '쫄븐(짧은) 갑마장 길'이 있다.

우리는 '쫄븐 갑마장 길'을 택했다. 조랑말 체험공원에서 출발해 2km를 걷는 동안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은 폭 좁은 가시천을 따라 나 있기도 하고, 가시천을 건너기도 했다. 구불구불 뻗어 있는 가시천의 모습도 다양했다. 길가에는 복수초가 무리지어 피어나 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가시천이 끝나는 지점에 따라비오름이 분화구 세개를 품은 채 부드러운 능선을 드러내고 있다. '땅할아버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알오름을 품고 있는 어머니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이 따라비오름과 더불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능선의 흐름과 가을철 따라비의 억새는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비오름에서 내려다 본 갑마장 터는 광활했다. 조선 최고의 말들이 사육됐던 갑마장은 드넓은 평원으로 지금은 밭과 목초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라비오름 아래 무덤 하나가 눈길을 끈다.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의 9대손인 감목관(監牧官)의 묘다.

 

김만일은 고향인 남원읍 의귀리에서 조천읍 교래리까지 이르는 드넓은 지역에서 1만여필의 말을 키웠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선조, 광해, 인조 때에 국가에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네차례에 걸쳐 1300여필을 말을 바치고, 그 공으로 헌마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이후 김만일의 개인목장은 산마장으로 관리되면서 '산마감목관'제를 두게 되었고 200여년동안 그 자손들이 감목관을 세습했다.

 

 

따라비오름 뒷편으로는 13기의 풍력발전기가 서 있다. 제주의 상징인 말들이 뛰어놀던 곳에, 제주의 또다른 상징인 '바람'으로 발전단지가 조성된 것은 절묘한 일이다. 제주도가 삼다수에 이어 두번째로 큰 수익을 내고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최근 도내에 풍력발전단지 지구를 지정하면서 제주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야 할 풍력발전사업을 모두 대기업에 넘겨줌으로써 공공의 자원을 사유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따라비오름을 내려서자 삼나무 숲길과 잣성길이 이어진다. '잣성'이라고 불리는 '잣'은 고득종의 건의에 따라 국영목장이 만들어질 때 말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높이 1.2~1.5m 정도의 겹담으로 쌓은 돌담이다. 해안지역의 농경지와 중산간지대의 방목지 사이 해발 150~250m 지역에 섬 전체를 빙둘러 경계를 쌓은 것이다.

 

가시리 갑마장 길의 잣성은 갑마장과 제10소장의 경계를 나타내는 '간장'(間牆)이다. 6km에 걸쳐 남아있는 제주 최대의 간장이다.

 

 
 
 

유채꽃광장을 지나 '쫄븐 갑마장 길'이 끝날 무렵 '꽃머체'가 우리를 맞는다. '머체'는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어로 '지하 용암돔'이라는 뜻의 크립토돔(cryptodome)을 말한다. 화산폭발과 함께 용암이 땅 위로 솟구쳐 지표면을 흘러내리다 굳는 것과 달리, 퇴적암 지대나 화산암 지대에서 마그마가 올라오다가 퇴적층에 막혀 돔 형태를 이룬 것이다. 이렇게 지하에서 굳은 용암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퇴적층이 침식되면서 겉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크립토돔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시리에만 분포돼 있다. 꽃머체는 구실잣밤나무와 제주참꽃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아름다운 꽃이 피는 돌무더기'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높이 6m, 지름 14m의 규모다.

 

이곳에서 100여m 떨어져 있는 '행기머체'는 동양에서 가장 큰 크립토돔으로 높이 7m, 지름 18m다. 머체 위에 '행기물'(놋그릇에 담긴 물)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갑마장 길의 출발 지점이었던 '조랑말 체험공원'에는 제주의 오랜 목축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조랑말 박물관'과 조랑말을 직접 보고 승마를 체험할 수 있는 '조랑말 승마장' 몽골식 텐트인 게르에서 식사와 숙박을 할 수 있는 '조랑말 캠핑장'이 있다.

 

 

 
 
 
 

햇볕 좋은 봄날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갑마장 길을 걷고 나서, 제주의 목축문화와 역사를 살피고, 게르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조랑말을 만지기도 하고 타보기도 하는 체험에 이르기까지 제주 말의 모든 것이 담긴 가시리의 하루는 재미와 보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고희범 객원필진.<미디어제주>
<프로필>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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