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멋진 일이었다. 지난 20일 중문 컨벤션센터 옆에서 일어난 일은 참으로 멋졌다. 제주와 자메이카를 섞어 만든 사우스 카니발의 음악은 한여름의 시원한 얼음빙수 같았으며, 이종혁 재즈밴드와 이병기 색소폰 연주는 빙수와 어우러진 열대과일 같았다. 그리고 이 모두를 담아낸 양진건 시인의 헌정시 ‘물의 집, 카사 델 아구아’는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제1회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시민문화제, ‘바람의 언덕에서 희망을 노래하다’는 말 그대로 우리에게 희망이 무엇인지 듣게 해주었다. 행사를 진행한 사람들, 빵과 커피를 제공한 사람들, 자신의 재능을 무대에 펼친 사람들 모두가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하나의 바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그 자리 그대로 보전되는 것이었다.
이들의 희망의 노래가 바람의 언덕을 지나 온누리에 퍼지기를 원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무지의 벽은 높기만 하다. 그 높은 벽 중에 하나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이전하자는 생각이다. 이 작은 집을 철거하여 다른 곳에 그대로 짓자는 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 작은 집을 다른 곳에 짓자는 것은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사유의 가벼움이다. 건축이 이 땅에 자리 잡는 것, 뿌리내리는 것은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노르웨이 건축가 노베르그 슐츠는 장소에는 혼이 있다고 말했다. ‘이 정신은 장소에 생명을 주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며, 그 본질을 결정한다’고 했다. 장소에 혼이 있고, 그 혼이 그 장소에 세워진 건축과 영원히 함께 한다는 뜻이다. 슐츠는 이를 ‘장소의 혼(Genius Loci)’이라 했다. 장소에는 혼이 있고, 그 혼은 건축에 담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건축이 장소를 차지하고 세워지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장소의 혼, 곧 ‘게니우스 로키’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섭지코지의 휘닉스 아일랜드를 디자인할 때 설정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이곳에 가면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표지가 곳곳에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게니우스 로키이다. 게니우스 로키의 일본어 발음이 지니어스 로사이이다. 원어를 그대로 발음하면 게니우스 로키가 맞다. 어쨌든 안도 다다오는 섭지코지를 디자인 할 때 섭지코지가 가진 장소의 혼에 주목을 했다. 슐츠의 말대로 다다오는 ‘건축의 기본적인 행위로서 장소의 소명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다오는 제주의 그 땅, 그 장소로서 섭지코지를 보았던 것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도 마찬가지였다. <건축문화> 2009년 8월호에는 제주의 땅에 대한 그의 생각이 분명하게 실려 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제주의 앞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보는 지형에 순응한 건축물을 짓고자 했고, 그 결과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였음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말라있지만 제주바다와 맞닿아 있는 이 작은 집의 조그마한 연못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제주바다가 그 앞에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곳, 그 장소의 혼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 바로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인 것이다. 그래서 이 작은 집을 옮기자는 생각은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사유의 가벼움인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있는 그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낙관주의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는 제주사람입니다’, ‘나는 남원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구체적으로 나를 설명한다. 성산사람, 대정사람 등등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장소와 연관지어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장소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장소와 분리될 수 없듯이 건축도 장소와 분리될 수 없다. 더욱이 건축가가 그 장소의 혼을 이해하고 지은 건축은 그 장소와 분리될 수 없다. 분리되는 순간 그 혼은 소멸하는 것이며, 건축은 생명을 잃는 것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오페라 하우스 하나가 한 도시와 그 나라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었다. 바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이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예산부족이라는 현실 앞에 사라질 뻔 했으며, 15년이라는 오랜 공사기간 때문에 좌절될 뻔 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을 넘어서서 완성된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를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만들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오페라 하우스를 디자인한 사람은 호주출신이 아닌 덴마크 태생의 요른 웃존이라는 건축가였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디자인했지만 이제는 시드니의 문화유산이며 호주의 자랑이 되었다. 호주 사람은 그 누구도 외국인이 디자인했다고 외국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호주의 국민은 모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리고 이 오페라 하우스를 다른 곳으로 이전 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요른 웃존이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해서가 아니라 시드니에 있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소중한 것은 이 작은 집이 이 땅 제주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집이 건축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작품을 넘어서 더 소중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이 땅 제주에 있고,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작은 집이 제주의 문화유산이며, 제주의 자랑인 것이다.
이 작은 집이 부산에 있다고, 부산의 명소가 되었다고, 외국인 관광객이 추천하는 부산의 명물이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우리는 이를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 작은 집이 이 땅 제주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축복이다. 그리고 그 장소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더 없는 기쁨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집에서 제주의 땅이 가진 혼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에게는 이제 이 작은 집을 제주의 문화유산으로 지켜야할 소명이 있다.<김형준·제주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