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에 놓인 ‘카사 델 아구아’를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델하우스이며, 다른 하나는 당당한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모델하우스’라고 부를 때는 전에도 얘기했듯이 단순한 건물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하지만 건축물로 바라볼 때는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건축물’이라는 말 속에는 땅을 생각하고, 주변의 다른 건축물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카사 델 아구아’라는 하나의 건축물을 두고 왜 이처럼 전혀 다른 두 개의 시선이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 이는 ‘모델하우스’라고 부르는 이와 ‘건축물’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인식차이에 기인한다. 공무원들은 당당하게 ‘모델하우스’라고 외친다. 철거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모델하우스’라는 공무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이 곳을 들른 이들은 놀란다. “모델하우스가 아닌 놀라운 건축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철거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 이 곳에서는 공평아트센터 공평갤러리가 기획한 ‘레고레타, 그의 공간을 품다’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공평아트센터가 이 곳에서 기획전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작가 김중만씨 등의 기획전이 이 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이 공평아트센터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번쯤은 ‘카사 델 아구아’를 찾겠다는 의지를 가졌고, 그렇게 해서 기획전은 준비됐다. 그런데 공평아트센터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건축물이 철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파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공평아트센터의 심영진 아트디렉터는 ‘철거’라는 말을 꺼내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앵커호텔을 짓는 기업이나 제주도의 공무원들이 만들 수 없는 브랜드 가치가 ‘카사 델 아구아’에 있다. 레고레타라는 명성만으로도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는데 왜 철거를 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철거하려는 서귀포시는 악역을 대신해주는 꼴이나 마찬가지다”고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심영진 아트디렉터는 “이제는 문화전쟁 시대다. 문화에 대해 얼마만큼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경쟁력에 차이가 난다. 제주는 세계7대자연경관이라는 뛰어난 자연에다 그 속에 근대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앵커호텔을 짓는 부영도 ‘카사 델 아구아’를 활용한다면 기업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라며 ‘철거’ 재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공교롭게도 ‘철거’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평아트센터의 기획전은 이 건축물의 철거를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다. 덩달아 기획전을 보려고 오는 이들이 최근 들어 부쩍 급증했다. 그런데 기획전보다 철거 위기에 놓인 이 건축물을 보려는 이들이 더 많다. 심영진 아트디렉터도 이 점을 인정했다. 기자가 심영진씨와 얘기를 나누는 중간에 20여명이 이 건축물을 둘러보고 빠져나가기도 했다.
심영진 아트디렉터는 “사실 기획전보다는 건축물을 보려고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건축과 학생들은 제주에 내려와서 이 건축물을 보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을 정도이다. 오는 12월이면 레고레타의 1주기인데, 그 때면 레고레타의 유작인 이 건축물이 언급될 게 뻔하다. 철거된다면 전 세계에 제주도의 문화수준을 알려주는 꼴이 된다”고 걱정했다.
현장에서 경기도 성남에서 왔다는 현종철·노승희씨 부부도 만났다. 이들도 철거는 있어서는 안된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현종철씨는 “너무 멋진 건축물이다. 절대 철거해서는 안 된다. 철거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레고레타의 작품이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데, 왜 없애고 부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승희씨도 “공무원들이 정말 쓸데없는 건 만들고 반드시 놔둬야 할 것은 없애려 애쓴다”며 예를 들기도 했다. 그는 “금릉 앞바다의 비양도를 보려는데 해녀상이 가로막고 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해녀상을 보면 전혀 고맙지 않다. 반면 이 건축물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아! 제주도이구나’ 느끼게 만든다. 문화가치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살려야 한다. 레고레타 유작의 가치를 깔아뭉개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카사 델 아구아’ 1층엔 이 곳을 오간 이들이 남긴 방명록이 있다. 수많은 이들이 적은 느낌은 한결같다. ‘철거’라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 일색이다.
취재를 끝내고 기사를 쓰려는 데 심영진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철거를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주고 있다”며 “이번 기획전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말을 이었다. 공평아트센터는 당초 8월 6일까지만 기획전을 열 계획이었다. 심영진 아트디렉터는 “서귀포시의 행정대집행에 대한 우려가 높다. 때문에 휴가철만이라도 ‘카사 델 아구아’를 지켜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8월말까지는 전시를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문화를 지켜야 할 공무원들은 문화파괴에 앞장서고 있고, 문화혜택을 받아야 할 이들은 ‘카사 델 아구아’를 지켜야 한다며 작은 힘을 하나 둘 모으고 있다. 참 이상한 현실이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