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기다려 만나자 한 사람들이 많았던 탓일까요.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린다’는 첫눈이 지난 주말,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렸습니다.
그 탓에 일시 하늘 길과 바닷길이 막혔고, 소담스런 첫눈의 설렘 속에 아련한 그리움을 고대했던 이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실망과 짜증으로
뒤엉켰습니다.
피해를 염려한 농가와 상인도 적잖았으나, 그나마 크지 않아 다행이었던 한 주였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12월, 그 정취를 찾아 잠시 마음을 비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어선을 타고 나가 서귀포 바다에서 본 정방폭포와, 그 너머 눈 덮인 한라산은 한마디로 장관입니다. 폭포 밑으로 낙하하는 물줄기의 힘은 변함없고 주변의 수풀은 여전히 가을빛을 띠고 있건만, 산은 영락없이 겨울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장엄한 절경에 넋을 놓고 바라본 이들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그만 보트에 몸을 실어 낚시에 여념 없는 이들이 그랬습니다. 혼자서 낚싯대를 드리운 ‘꾼’도 있었고 아들과, 또는 친구들과 함께 나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명색이 겨울인데, 배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게 선장의 전언입니다.
뭍으로 나오자, 이번엔 거리 곳곳마다 돌담 너머로 탐스럽게 열린 노란 감귤에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들른 곳은 서상효의 한 감귤원.
이곳에서 바라본 한라산 역시 영산(靈山)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잘 익은 감귤의 따뜻한 이미지와 한라산 설경의 차가운 질감 간의 교차. 그 색다른 만남이 절묘함을 넘어 제주 특유의 맛과 멋, 그 자체라 한다면 억지일까요.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이름난 강정천이었습니다. 은어가 서식하는 그 하천의 상류에서 한 무리의 화려한 원앙이 나란히 물위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산골 계곡의 물이 얼어 따뜻한 남녘의 이곳에 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떠돎이 이대로 끝나 이곳이 영원한 안식처였으면 하는, 잠시 부질없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원앙을 보면 누군가는 서로 싸우거나 떨어져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는데…첫눈이 녹은 뒤,
이처럼 제주의 12월은 또 다른 아름다움과 함께 여전히 따뜻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을 가로막고 있는 전기줄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래도 씁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