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 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1991년 11월7일 오후 7시40분께 서귀포시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 사무실 3층 옥상계단에서 25세의 젊은 청년이 온 몸에 불을 사르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는 끝내 숨을 거뒀다.
#제주사랑 청년의 '숭고한 항거'
당시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에서 일하던 고(故) 양용찬 열사가 바로 그이다.

그의 활동이 한창일 무렵인 1990년부터 제주사회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의 제정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반대투쟁의 분위기가 크게 확산됐다.
1991년 들어서는 공무원을 동원해 좌석을 선점해 버리는 해프닝을 연출하며 제주도와 정부는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공청회를 연이어 강행했고, 그해 정기국회에 이 법안을 제출했다.
특별법이 통과되기 바로 한달전, 그는 '특별법 저지'를 위해 온 몸을 사르는 분신항거를 했다.
그의 희생은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투쟁을 더욱 고조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재야.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정치인사 및 도민들까지 특별법 반대투쟁 대열에 합류했다.
제주시 뿐만 아니라 서귀포시에서도 대규모 항의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그러나 도민사회의 이러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사독재정권의 민자당을 필두로 한 국회는 이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됐다.
#양 열사 14주기 추모행사, 특별자치도 투쟁으로 승화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오늘, 11월2일(음력 10월1일)은 양 열사의 기일이다.
'제주사랑 양용찬 열사 추모사업회'(대표 이영일)는 제14주기를 맞아 제주특별자치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과 연계해 추모제를 엄수키로 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과 '제주도 행정체제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4일 입법예고돼 9일 제주지역 공청회가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치러지는 이날 행사는 제1부 도민결의대회, 제2부 양용찬 열사 추모제' 순으로 나눠 진행된다.
추모사업회의 이영일 회장은 "14주기를 맞는 시점에서 터져나온 제주특별자치도를 둘러싼 반발 분위기가 과거 제주도개발특별법의 일방적 처리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특별자치도 공공성 강화는 양 열사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이번에 특별자치도 공공성 강화 투쟁과 함께 추모제를 개최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6일 단합행사를 갖는 제주대학교 민주동우회(회장 문정모)에서는 자체행사가 끝난 후 집회장소로 함께 이동하기로 하는 등 집회 참여 독려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추모사업회는 7일 오전 양 열사의 묘소를 참배한다.
핵폐기물도, 먹고죽는 독약도
자기지방에 이익이 된다면
목숨걸고 유치한다는데
제주는,제주는,
몇몇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이
우리 제주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운다는것을
생각하시길.
이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와 후손에게
영광스런 변방을 물려줄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