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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픈 사람에게 왜 배를 치료해요?"
"머리가 아픈 사람에게 왜 배를 치료해요?"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9.03.17 16:2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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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21개월째 의식불명, '오진' 규명의 끝없는 싸움

2007년 7월14일, 급성질환으로 119에 의해 모 종합병원으로 후송된 황모 할머니(82).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신우신염이라는 병명으로 입원했으나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입원한지 5일만에 뇌 전산화 단층촬영 및 척추천자 검사 등을 실시한 결과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판명됐다.

이후 노모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채, 21개월째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들 박모씨(41. 제주시 오등동)는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판명날 때부터 줄곧 명백한 '오진(誤診)'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머리를 치료해야 하는데, 멀쩡한 배를 치료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상식적으로 환자가 고열이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머리를 치료해야지, 어떻게 배를 치료했는지 혀를 찰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병원측은 환자측의 이러한 항의를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결국 경찰에는 물론 소비자단체에까지 '오진'에 대한 의뢰했다. 그러나 모두 만족스러운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먼저 경찰은 지난해 1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강현욱 박사에게 이 문제를 의뢰한 결과, "이번 건은 다른 질병과 합병되어 있는 경우로, 불가항력적인 오진에 해당한다"고 회신했다. 오진은 오진이나, 과실로 인정되는 오진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오진이라는 뜻이다.

강 교수는 "신우신염과 합병되어 있어 뇌수막염의 진단이 간과된 경우로 판단되며, 이는 오진에 해당하지만, 발열을 비롯한 그 외의 증상들이 뇌수막염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적이지 못했던 바, 의료진으로서는 적절한 조기진단이 한계상황이었을 것을 추정된다"고 소견을 피력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의 경우 "해당병원 의료진은 환자 및 보호자의 호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뇌수막염의 감별 진단이 지연되어 환자로 하여금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하고 환자의 치료를 지연시킨 것으로 사료된다"고 회신했다. 즉, 진단이 지연돼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했다는 소견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과실'이 아닌 '정상적 진료'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결론적으로 경찰에 감정의뢰를 했지만, 불가항력적인 오진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아들 박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입원했을 첫날부터 뇌수막염 판정이 내려지기까지 그 일련의 대화내용 등을 고려할 때 명백한 '오진'이라는 항변이다.

"불가항력적인 오진이라고 하는데 이해가 안돼요. 입원할 당시 7월21일 오전 중환자실 앞에서 주치의인 내과원장이 자기 스스로 2006년 신우신염 입원병력이 있어 치료했다면서 과실로 인한 오진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어요."

그는 "신우신염으로 오진해서 치료기회를 상실했으면, 과실로 인정되는 오진이어야 맞는 말이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불가항력적인 오진이라고 하는지 납득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처음 병원에 와서 4-5일 정도 약 처방을 잘 했으면 의식이 돌아오고 열이 떨어져야지, 계속 고열이 났느냐 하는 말입니다."

오진이라는 점을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병원측과의 장기간 논란을 벌여온 그는 17일 제주지방경찰청 기자실을 찾았다. 기자들에게 '억울함'을 항변하기 위해서다. 그가 틈틈히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사건개요' 문건에는 21개월이란 시간이 말해주듯 많은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경찰에서도 과실이 아닌 불가항력적인 오진이라고 하고, 이제 남은 것은 법원에 판단을 맡기는 일 뿐인데, 우리나라 법원이 이러한 의료사고에 대해 힘이 없는 약자 편을 잘 들어줄지 걱정입니다. 저희와 같은 억울한 사람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병원과의 힘겨운 싸움은 멈출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한편 경찰은 이 사건을 지난해 2월 종결했다. 이제 박씨는 병원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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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기 2009-03-19 18:12:29
의식불명인 상태로 병마와 싸우는 노모의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으로서의 참담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주위에서 종종 의료사고들이 일어나지만, 병원측의 과실을 인정하기보다는
환자측이 모든걸 안고가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오진으로 인한 한순간의 판단이 한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바라며,자신의 실수를 인정할수 있는 용기있는 대한민국의 의사가 되었음 합니다.

거로댁 2009-03-19 18:08:19
의식불명인 상태로 병마와 싸우는 노모의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으로서의 참담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주위에서 종종 의료사고들이 일어나지만, 병원측의 과실을 인정하기보다는
환자측이 모든걸 안고가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오진으로 인한 한순간의 판단이 한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바라며,자신의 실수를 인정할수 있는 용기있는 대한민국의 의사가 되었음 합니다.
가족들의 안타까

수기 2009-03-19 18:04:21
의식불명인 상태로 병마와 싸우는 노모의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으로서의 참담한 마음이 전해지네요. 주위에서 종종 의료사고들이 일어나지만, 병원측의 과실을 인정하기보다는
환자측이 모든걸 안고가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오진으로 인한 한순간의 판단이 한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바라며,자신의 실수를 인정할수 있는 용기있는 대한민국의 의사가 되었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