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소꿉놀이 같이했던 예쁜 그 누나
소꿉놀이 같이했던 예쁜 그 누나
  • 이성복 객원필진
  • 승인 2009.01.29 10:1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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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16)소꿉놀이

아버지는 전화 한 통을 받으시더니 급히 외출준비를 서두르셨다. 조카들은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두 다리를 붙들고선 나가지 말라고 조른다. 아버지는 조르는 조카들을 달래며 삼촌과 놀고 있으라며 두 조카를 맡기고 나가셨다.

아버지가 나가시자 조카들은 나에게 놀아 달라며 막무가내로 떼썼다.

집 밖 공원에나 데리고 나가려고 하니 날씨가 너무 춥다. 괜히 데리고 나갔다가 감기 걸리면 어떡하나 싶어 나가자는 것을 겨우 달래놓고, 어린이 TV프로그램을 켜놓고 “삼촌 잠깐 컴퓨터 작업을 하려니까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어?” 하고 인터넷 자료를 검색했다. 그러고는 조카들이 놀고 있는 안방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둘이서 TV는 안보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연 줄도 모르고 소꿉놀이에 한창이다. 조카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 어릴 적 소꿉놀이 하던 때가 떠오른다.

프로야구가 시작되어 내 관심은 야구에 쏠리기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TV프로가 다양한 것도 아니고,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있는 거라곤 집 짓는 공사장에서 남은 나무나 돌멩이 정도가 주 놀이기구였다.

당시 내 또래 남자친구들은 축구공이나 야구공을 갖고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았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나로서는 동네 누나나 내 또래 여자애들과 같이 한 모퉁이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소꿉놀이를 할라치면 납작하고 둥근 돌멩이가 그릇으로 쓰였고, 모래는 밥, 반찬은 길가에 난 풀을 이용하여 아기자기한 모양으로 만들곤 했다.

몇몇 친구들은 남자가 여자들과 같이 논다며 놀리기도 했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었다. 남자친구들과 볼을 차며 어울리진 못했지만 누나들과 여자애들이랑 소꿉놀이를 할 때면 남자가 귀한 상황이라 항상 주연급 대우를 받았었다.

놀이가 시작되면 서로 배역을 정하는데, 당시 제일 많이 하던 놀이가 ‘아빠, 엄마놀이’였고, 그 중에 제일 예뻤던 누나가 나랑 부부 역할을 가장 많이 했었다.

그 누나는 그 당시에도 또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이 다른 여자친구들에게 질투심을 많이 사곤 했었다.

그렇게 인기 많고, 예쁜 누나랑 매일같이 짝을 하다 한번은 다른 형이 그 누나랑 짝이 되고, 나는 조금은 못생긴 애랑 짝을 하게 되어 나도 모르게 놀이를 하면서 괜히 심통을 부려서 형, 누나들로부터 혼난 적도 있었다.

‘지금쯤 그 누나는 소꿉놀이가 아닌 진짜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잘 살고 있겠지? ․ ․ ․ ’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조약돌로 떡 해놓고, 모래알로 소반지어 언니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 그 옛날 소꿉놀이를 생각하며 흥얼거려본다. <미디어제주>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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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2009-02-13 09:58:40
티 없이 예쁜 꾸었던 어린시절.......
시간에 버스를 타고 어느던 여기까지 왔네요...

지니 2009-02-12 13:17:30
글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습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기억 저편에서 꼭꼭 숨어있던 추억이 하나씩 향기를 내며 제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나만의 거기, 그곳이 아직도 눈에 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