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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주택 하나가 제주시 도시재생 출발을 알리다
오랜 주택 하나가 제주시 도시재생 출발을 알리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4.03.12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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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건축자산을 찾아서] <2> 고씨주택

다급하게 걸려 온 전화 한 통. 10년 전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오랜 주택을 살리는 시발점이 된 전화였기에 그렇다.

기자는 제보를 먹고 산다. 제보는 생명줄이다. 제보를 한 귀로 흘려보내는 기자도 있으나, 자칫 흘려보낸 제보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기자에게 제보는 생명을 다루는 일과 같다. 119가 생명을 소홀히 다룬다면 어떻게 될까? 잘못 걸린 전화라며 구급차를 출동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기자를 찾는 제보도 그와 다르지 않다. 10년 전의 전화도 그랬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산지천 현장으로 내달렸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오랜 건축물이 기자를 반겼다.

시민의 노력으로 살아나서 제주시 도시재생의 시발점이 된 고씨주택. 미디어제주
시민의 노력으로 살아나서 제주시 도시재생의 시발점이 된 고씨주택. ⓒ미디어제주

제주시 산지천에 낮게 웅크린 오랜 주택은 뭇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바로 고씨주택으로, 제주의 대표적 도시재생 우수 사례로 꼽힌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이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해 지난해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했다. ‘다급한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고씨주택은 산지천변을 지키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되었을지 의문이다. 그럴 이유는 충분하다. 고씨주택은 애초에 남기고자 했던 건축물이 아니었다. 10년 전인 2014년 그해, 고씨주택은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의 희생물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탐라문화광장은 말이 광장이지, 광장이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시작된 거대 토목공사였다. 산지천 주변에 있는 건축물은 하나씩 허물어졌다. 산지천 서쪽으로 북수구광장과 산짓물공원을 만들고, 건너편에 세계음식테마거리를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수십 년의 기억을 지닌 건축물이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고씨주택도 그 틈에 끼었다. 다행히도 고씨주택은 환생을 해서 사람들을 품고 있다.

고씨주택에 들어서면 설명문을 마주하게 되는데, 거기엔 1949년 건축되었다고 나온다. 실제는 아니다. 훨씬 이전에 지어졌다. 10년 전 취재할 때 집주인이던 고한봉씨는 할아버지에 의해 지어진 집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세기에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가 1917년생이었으니 고씨주택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졌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건축대장에 처음 올라간 시기가 1949년일 뿐이다.

10년 전 첫눈에 들어온 고씨주택은 ‘한일절충형’ 건축물이었다. 일본식 기와, 테라스 전면에 달린 문, 내부에 화장실을 둔 점 등은 일본풍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고씨주택은 제주 살림집의 전형인 안거리와 밖거리 구조에다 온돌을 지닌 우리의 전통적 건축물이기도 했다. 안거리 뒤쪽 테라스에 비밀 창고가 있던 점도 기억에 선하다. 그 주택을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무조건 철거만이 능사일까. 그렇지는 않다. 제주도 당국은 건물 철거에 앞서 건축 전문가들에게 고씨주택의 가치를 한 번 물어봤으면 한다. 이 시기의 주택건물이 도내엔 거의 없다는 점에서 보존을 생각해볼 충분한 가치는 있어 보인다.” (미디어제주 2014년 6월 17일자)

행정은 추진하던 일을 잘 접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돌발상황이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이 있을 때마다 사업을 변경한다면 일 처리는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로 행정은 ‘예고된 대로’ 일을 추진한다.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은 사업지구에 있는 건축물은 “모조리 허문다”는 계획에 따라 일을 진행하고 있었고, 행정은 갑자기 등장한 고씨주택 문제에 대해 미덥잖은 반응을 보인 건 물론이다. 그럼에도 허물 계획을 접고, 보존하겠다는 뜻을 비친 배경에 시민의 역할이 한몫했다.

10년 전 기자에게 제보 전화를 준 고영림 제주국제교류협회 회장. 미디어제주
10년 전 기자에게 제보 전화를 준 고영림 제주국제교류협회 회장. ⓒ미디어제주

10년 전 제보를 한 시민은 바로 사단법인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고영림 회장이었고, 건축가 김석윤씨(김건축 대표)가 힘을 보탰다. 이들이 고씨주택을 살린 장본인들이다. 고씨주택 생환 10년을 맞아 고영림씨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2013년 12월에 제주시 원도심 옛길 탐험을 할 때였어요.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으로) 주변 건물을 부수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김석윤 선생님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10분 만에 나타나더니, 이 집(고씨주택)을 발견하고서는 이런 집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러다 몇 개월 후에 그 집이 궁금해 봤더니 있더라고요. 마침 집주인이 있었고, (집 주인에게) 집이 뜯기지 않게 노력해보겠다며 김 기자에게 전화를 하게 됐죠. 2014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원회가 꾸려지자 고씨주택과 관련된 민원도 접수를 했어요.”

고씨주택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건축물이다. 건축을 문화로 바라보는 시민의 중요성,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건축물을 살리려는 적극적인 활동이 거기에 있다. 더 중요한 건 건축자산은 ‘당대의 삶’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주는 건축자산이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할 건축물은 사라지는 길을 걸었고, 사람들의 기억에는 전혀 없는 조선시대 건축물이 새로 만들어져 등장하곤 한다. 사람의 삶이 곧 건축인데, 과거만 대접을 받고 있다. 다른 문화재와 달리 건축은 ‘당대의 삶’이 중요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고씨주택은 그런 관행을 깨고, 도시재생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알린 건축물이었기에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고영림 회장도 그 점을 중요하게 본다.

“목포나 군산처럼 일제강점기 흔적을 강하게 느끼는 그런 집이 많잖아요. 그것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며, 부끄러워할 건 아니죠. 제주도민들도 그렇게 살아온 과정을, 건축 유산을 통해서 느끼면 좋죠. 건축이라는 유산이 있어야 이야기가 전승되고, 만일 그런 게 없으면 이야기도 소멸하게 마련입니다. 글로만 남아 있거나 말로만 전달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되려면 물리적인 공간이나 고씨주택과 같은 건축 유산이 있어야 해요.”

고씨주택은 현재 안거리를 ‘제주사랑방’으로, 밖거리는 관리사무실 겸 ‘제주책방’으로 쓰인다. 고영림 회장과 제주책방에서 10년 전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사람들이 계속 오간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고씨주택은 말한다. 고씨주택의 분위기를 풍기는 건축물은 제주시 원도심에서도 희귀하다. 그러고 보면 탐라문화광장은 수많은 고씨주택을 없애버렸다. 그럼에도 고씨주택이라도 있으니 위안을 삼는다.

마치 흉물처럼 고씨주택을 망치는 '북두칠성 제7도' 석조물. 미디어제주
마치 흉물처럼 고씨주택을 망치는 '북두칠성 제7도' 석조물. ⓒ미디어제주
자치경찰 건물도 고씨주택을 덜 돋보이게 만든다. 미디어제주
자치경찰 건물도 고씨주택을 덜 돋보이게 만든다. ⓒ미디어제주
고씨주택 주변은 공공 디자인 요소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설치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고씨주택 주변은 공공 디자인 요소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설치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고씨주택은 제주시 원도심에서 희귀한 건축물이기에 앞으로도 건축자산으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돋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고씨주택 주변은 고씨주택을 ‘덜 돋보이게’ 혹은 ‘감추려고’ 애쓴다. ‘고씨주택’이라고 가리키는 커다란 석조물, 테우에 앉아 물질에 나서는 어부와 해녀상은 너무 뜬금없다. 돌담은 어떤가. 제주스럽게 돌을 얹히지 않고 잘 다듬은 돌로 돌담을 두르니 어색하다. 게다가 고씨주택 돌담을 감싸고 있는 ‘북두칠성 제칠도’는 정말 눈엣가시다. 고씨주택을 전면에서 가리고 있는 자치경찰 가건물은 흉물이다. 고씨주택을 잘 살려두었으나, 고씨주택 주변의 공공디자인은 그야말로 ‘영점’에 가깝다.

살아난 지 10년. 고씨주택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더 돋보이게 해달라고 기자에게 말하는 듯하다. 공공디자인 측면에서 ‘북두칠성 제칠도’를 비롯해 쓸데없는 설치물은 제발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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