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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모두에게서 배척당한 재일 조선인들의 삶
남과 북 모두에게서 배척당한 재일 조선인들의 삶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3.11.2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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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교육투쟁, 스이타(吹田) 항쟁까지 … 김시종 선생의 발자취를 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를 폭격하고 있는 미군 폭격기의 모습. /자료사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를 폭격하고 있는 미군 폭격기의 모습. /자료사진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디아스포라(Diaspora)’.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이나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재일 조선인과 고려인, 조선족 등 일제강점기에 뿔뿔이 흩어졌던 이들을 일컫는 표헌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재일 조선인들은 남과 북 어느 국적도 갖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이른바 ‘경계인’인 셈이다.

지난 18일, 일본 오사카 재일한국기독회관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진 ‘연극, 김시종’을 관람한 제주 방문단 일행의 이튿날 답사 일정은 김시종 선생이 4.3 당시 제주를 떠나 일본에 와서 활동했던 여정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일행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오사카부청 앞. 이 곳은 미 군정의 지시를 받은 일본 문부성이 1948년 조선인 학교를 폐쇄하고 학생들을 일본인 학교로 편입시키도록 한 이른바 ‘조선학교 폐쇄령’에 반발하면서 들고 일어선 ‘4.24 한신(阪神) 교육투쟁’이 시작된 곳이다.

일본에 사는 재일 한국인 어린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치던 조선인 학교가 미 군정의 지령을 받은 일본 문부성에 의해 폐쇄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재일 조선인들이 1948년 3월부터 대규모 항의 투쟁에 나선 것이었다.

연인원 103만 명이 참가한 이 시위에는 참가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경찰 병력이 동원되는 과정에서 소년 김태일이 희생된 것을 비롯해 부상자 150명, 체포된 한국인은 3076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어 일행은 윤봉길 의사가 구금돼 있었던 오사카 성 안의 위수형무소 터를 찾았지만,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사카 성 밖으로 나온 일행은 재일 조선인들의 사회 운동을 기리기 위해 1970년 오사카성 공원에 건립된 오사카사회운동현창탑(大阪社會運動顯彰塔) 현장을 찾았다.

현창탑에는 애초 제주 출신 활동가인 김문준과 조몽구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었으나, 이후 현창탑을 건립한 오사카사회운동협회 활동이 흐지부지되면서 리모델링 과정에서 위패가 대부분 다른 곳으로 옮겨진 상태라고 한다.

이어 오사카 대공습 쿄바시역 폭격 피해자 위령비를 찾은 일행은 한국전쟁 당시 ‘군수 열차를 한 시간 늦추면 1000명의 동포를 구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나섰던 이른바 ‘스이타(吹田) 항쟁’에 나섰던 현장을 찾아 둘러보기도 했다.

김시종 선생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스이타 항쟁에 대해 이같이 회고하고 있다.

“미카테야마에서의 철야전야제를 자정쯤 한 발 먼저 빠져나온 나는 연락계인 H군의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넘어 센리오카로 향하는 길에 다른 코스로 따로 가고 있는 행동대의 현황을 확인하고, 선로에 누워있는 결사대원들의 취재도 마치고, 시위대의 합류 지점인 야마다무라에 꼬리부대인 나카니시 조를 따라잡으니 새벽 3시 반경이었습니다. 그날은 군수열차 운행 저지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조국방위대에서 선발된 열두 명의 청년이 선로에 눕는다는 결사의 투쟁까지 짜여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날 군수열차는 운행되지 않아 큰일 없이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25일 미명의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국철 센리오카 앞의 완만하게 꺾어지는 선로에 몸을 체인으로 잇고 묵묵히 누워있던 광경은 지금 상기해도 뭉클하게 북받쳐오릅니다.

‘군수열차를 한 시간 늦추면 동포를 천 명 살릴 수 있다!’

저 정실한 호소는 육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반전평화를 향한 맹세가 되어 나의 마음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일행을 안내한 민중가수 최상돈씨는 “이 스이타 항쟁은 남한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조차 지금까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남과 북에서 피해 사실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4.3과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한국전쟁 당시 철도를 막아 군수 열차를 지연시키려 했던 스이타 항쟁에 나섰던 길을 돌아보는 여정을 마무리하는 산오락회의 공연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한국전쟁 당시 철도를 막아 군수 열차를 지연시키려 했던 스이타 항쟁에 나섰던 길을 돌아보는 여정을 마무리하는 산오락회의 공연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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