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7-18 18:52 (목)
억압·굴레 속에서 제주남방큰돌고래가 만드는 '희망의 서사'
억압·굴레 속에서 제주남방큰돌고래가 만드는 '희망의 서사'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11.13 1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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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지정 위한 법개정 추진
한때 그물에 잡히고 수족관에 갇혔던 신세에서 벗어나
보호 위한 큰 한 걸음 ... 어업활동 제약 "도정 지원할 것"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제주남방큰돌고래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물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고 있다.

한 때 어민들이 처 놓은 그물에 걸리고, 불법포획돼 수족관에 갇히는 신세에 처하기도 했으며, 환경오염과 각종 개발에 살아갈 터전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도 돌고래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더해져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권리인 ‘생태법인’을 얻으려 하고 있다. 삶을 위협하는 온갖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이야기를 써내려 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제주남방큰돌고래는 예로부터 제주바다에서 어민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왔다. ‘수애기’로도 불리며 제주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옆에서 장난을 지키도 하고, 제주연안 최상위 포식자로서 같은 포식자인 상어의 접근을 막으며 해녀 등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했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해안가 어디에서든 남방큰돌고래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의 바다는 점차 남방큰돌고래들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갔다. 그 중 하나가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커진 어업활동에 따른 혼획 문제였다.

♢제주남방큰돌고래 희망의 여정 하나, 수족관에서 고향 바다로

우리나라는 1986년 상업적인 포경을 금지한 국제포경위원회(IWC)에 가입했다. 이에 따라 어업활동의 일환으로 바다에 설치한 그물에 고래류가 우연히 걸려드는 ‘혼획’이 이뤄지더라도 확인 즉시 그물을 풀어 잡힌 고래를 풀어주거나 해양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하지만 제주의 바다를 해엄치던 남방큰돌고래에게는 이와 같은 내용이 적용되지 못했다. 남방큰돌고래의 혼획을 확인한 어민들은 그물을 풀어 남방큰돌고래를 풀어주는대신, 이 돌고래들을 수족관에 팔았다. 제주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던 남방큰돌고래들은 드넓은 집을 눈앞에 두고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불과 몇 백만원에 제주도내 한 수족관으로 팔려나갔다. 자유를 잃어버리는데 오간 돈은 겨우 몇 백만원에 불과했다. 돌고래들을 사들인 곳은 제주 서귀포시 중문의 현 ‘퍼시픽리솜’의 전신인 ‘로얄마린파크’였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로얄마린파크’는 1986년 9월10일 제주에서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돌고래쇼를 위해 일본에서 ‘큰돌고래’를 수입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제주 연안의 어선 그물에 종종 남방큰돌고래들이 혼획된다는 점을 파악하고 남방큰돌고래를 혼획한 어민들에게서 남방큰돌고래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1990년 7월 ‘해돌이’라는 이름의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25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어민과 업체의 거래를 통해 수족관에 갇혔다.

이는 모두 불법행위였지만, 이를 문제삼는 이들은 당시엔 아무도 없었다. 일부 기사에선 로얄마린파크가 제주남방큰돌고래를 훈련시키고 있는데다, 다른 지역의 수족관에 공급한다는 내용까지 아무렇지 않게 보도되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붉은 원 속의 돌고래는 지난 2013년 7월 야생방류된 남방큰돌고래인 '춘삼이'다. /사진=미디어제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붉은 원 속의 돌고래는 지난 2013년 7월 야생방류된 남방큰돌고래인 '춘삼이'다. /사진=미디어제주.

하지만 이렇게 갇힌 돌고래들이 모두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돌고래들의 불법포획사실을 알고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도내 안팎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2007년 제주 앞바다에서 관찰됐다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9년 서울대공원의 수족관에 갇혀 있는 것이 확인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수족관에 갇힌 남방큰돌고래의 야생방류 여론을 만드는데 기폭제가 됐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제돌이’는 2013년 7월18일 김녕앞바다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역시 어민의 그물에 혼획돼 수족관에 갇혔던 남방큰돌고래 ‘춘삼이’와 ‘삼팔이’도 같은 날 제주바다로 돌아갔다. 그 중 ‘삼팔이’는 야생방류를 위한 적응훈련 중 먼저 그물을 뚫고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나선 수족관에서 끝까지 돌고래쇼 동원을 거부했던 남방큰돌고래인 ‘복순이’와 ‘태산이’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유를 빼앗겼던 제주남방큰돌고래들의 ‘잔혹사’에 ‘희망’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자유’ 가로막는 요소는 더 증가 … 그래도 돌고래는 어디선가 헤엄친다

하지만 남방큰돌고래들의 위기는 이 ‘혼획’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면서 제주바다의 오염이 심화되자 남방큰돌고래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해안가 개발의 가속화와 해상풍력발전단지의 구축 등 역시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 제주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정읍 해안가와 구좌읍 해안가 등으로 한정되기 시작했다.

남방큰돌고래들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한정된 장소에 머물게 되자, 그 한정된 장소는 ‘돌고래 명소’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돌고래 명소’가 된 곳에는 또 다른 개발의 물결이 들어오기도 했고, 일부 관광선박들이 무리한 돌고래 선박관광을 이어가면서 남방큰돌고래에게 지나치게 접근,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다수의 낚시선박까지 남방큰돌고래에게 지나치게 접근하는 사례가 확인되면서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헤엄을 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무리에 과도하게 접근한 관광선박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지난 6월 헤엄을 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무리에 과도하게 접근한 관광선박의 모습. /사진=미디어제주.

지난해 9월에는 이와 같은 선박의 접근을 막기 위한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이 개정안에도 구멍은 존재해 선박에 의한 남방큰돌고래 악영향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발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서식지가 대폭 줄었는데, 그 줄어든 서식지 안에서도 새로운 위협들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이처럼 각종 악영향이 끊이질 않다보니 제주 연안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도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내질 못하고 있다. 남방큰돌고래의 경우 2012년 처음으로 보호종으로 지정됐지만, 그 이후에도 각종 요인들로 인해 매년 10여마리가 폐사체로 발견되고 있고,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도 100~120여마리에서 늘어나질 못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대표는 이를 두고 “보호종 지정 이후 개체수가 어느 정도라도 늘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며 “이는 보호종 지정 이후에도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위협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업과정에서의 혼획만이 아니라 해양오염 및 연안 개발에 따른 따른 서식지 감소와 선박충돌 문제 등이 남방큰돌고래들에게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양한 악영향 속에서 죽는 남방큰돌고래의 규모는 발견되는 것보다 더욱 클 수도 있다. 해양생태보전연구소 마크(MARC)에 따르면 2015년 이후 해마다 많게는 25마리에서 적게는 15마리 정도의 새끼 남방큰돌고래가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많은 새끼들이 태어나고 있음에도 수년 동안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결국 숨을 거두는 돌고래의 숫자가 보이는 것보다 더욱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이런 상황에서도 제주남방큰돌고래는 계속해서 제주의 연안에 머물고 있다. 여전히 제주 바다를 고향으로 삼아, 지금 이 순간에도 헤엄치고 있다.

돌고래를 지키려는 다양한 노력들도 더해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활동 등을 포함한 민간차원에서의 돌고래 보호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으며, 돌고래의 보호를 바탕으로 한 각종 연구단체의 활동도 힘을 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제도적 차원의 보호방안까지 더욱 두터워지려 한다. ‘생태법인’이라는 장치를 통해 남방큰돌고래와의 공존 움직임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 2025년까지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부여 … 공존 위한 한 걸음

생태법인은 사람 외에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 등 비인간 존재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동·식물이 생태법인을 부여받게 되면 생태후견인 및 대리인이 지정되고, 이들이 생태법인으로 지정된 동·식물의 권리를 대신해서 행사하게 된다.

제주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남방큰돌고래를 이 ‘생태법인’으로 지정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초 관련 토론회 등이 열린 것을 시작으로 오영훈 제주도지사 역시 지난해 취임 이후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지정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생태법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언급했고, 올해 1월에는 ‘해양생태계 보호방안 마련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통해 생태법인 부여를 위한 제주도정 차원의 논의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3월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이 구성됐다. 워킹그룹 위원장은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류에서도 큰 역할을 했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였다.

최재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 위원장이 13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제주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지정을 위한 법적근거 마련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최재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 위원장이 13일 오전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제주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지정을 위한 법적근거 마련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은 구성 이후 생태법인 제도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으며, 13일에는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2025년까지 제주남방큰돌고래에 생태법인격을 부여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도민공론화 및 공감대 형성을 통해 생태법인 제도화 특례가 담긴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보완할 예정이며, 제22대 정기국회에 법률안을 상정해 여·야 합의 제1호 법안으로 발의되도록 추진한다..

아울러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생태후견인으로 ‘생태후견위원회’를 두고, 이 위원회가 남방큰돌고래를 대표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오영훈 지사는 이와 같은 내용을 발표하면서 ‘공존’을 강조했다. 이번 생태법인 지정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 추진을 두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으로 대전화하는 사회 혁신”이라며 “생태계의 균형과 가치를 유지하는 자연존재들과의 공존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 생태법인 도입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에 제주의 소중한 생태가치를 알리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남방큰돌고래. /사진=미디어제주.

이외에도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지정에 따른 어업인들의 어업활동 일부 제한 우려 등에 대해서도 이 ‘공존’을 언급하며 제주도정 차원에서 어업인들의 일부 수익을 보전해줄 것임을 강조했다.

오 지사는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했을 때 어업활동의 제한이라던가, 경제활동에 대한 어느 정도 제약이 갈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해녀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녀분들이 남방큰돌고래가 유영을 하면서 소통하고 바다라는 공간을 같이 쓰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이 바다를 같이 쓰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늦추면 안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업인들도 함께 제주바다를 지키는 주체이기 때문에 경제 및 어업활동에 대한 어느 정도 보상은 제주도나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법인은 이처럼 남방큰돌고래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면서 ‘공존’을 말하고, ‘미래’를 말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아울러 남방큰돌고래에게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물에 잡히고 갇히고, 오염과 각종 개발에 시달리고, 어선과 관광선박의 프로펠러에 상처입고, 각종 소음에 고통받으면서도 제주바다에서 견디면서 살아온 남방큰돌고래에게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개념이다.

넘어야 할 산은 앞으로도 많다. 제주특별법의 개정부터가 쉽지가 않다. 개정 이후에도 제도적으로 갖춰져야 할 부분들이 상당하다. 하지만 남방큰돌고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넘어왔던 산이 더욱 많을지도 모른다. ‘희망’을 향한 헤엄에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앞으로 더욱 나은 미래를 향한 헤엄을 더욱 힘차게 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수많은 굴레와 억압, 고통을 견뎌온 남방큰돌고래의 희망의 서사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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