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제주에 삶 바친 푸른 눈의 신부, 그를 기리는 기념관 조성된다
제주에 삶 바친 푸른 눈의 신부, 그를 기리는 기념관 조성된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11.07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도, 임피제 신부 기념관조성 위한 용역 마무리
임피제 신부 초대 주임이었던 한림성당에 조성 예정
전시공간 및 다양한 문화활동 공간 ... 순례길 등도
1954년 제주에 들어온 뒤 2018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일평생 제주 발전에 공헌한 임피제 신부.
1954년 제주에 들어온 뒤 2018년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일평생 제주 발전에 공헌한 임피제 신부. /사진=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6.25 전쟁 직후 제주에 들어와 일평생을 제주에서 지내면서 제주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임피제(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의 기념관이 만들어진다.

제주도는 최근 ‘등록문화재 한림성당 종탑 임피제 신부 기념관조성 타당성 조사용역’ 최종보고서를 공개했다. 도는 이 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향후 임피제 신부의 기념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기념관은 전쟁 직후 임피제 신부가 부임했던 한림성당에 마련된다. 특히 지난해 6월 한림성당의 옛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한림성당의 종탑을 중심으로 기념관이 만들어지게 된다. 종탑 인근에 있는 한림성당 수녀기숙사동을 활용해 기념관 건물을 만들고, 그 외 외부공간까지 기념관 시설로 활용한다.

제주도는 기념관을  임피제 신부의 제주에 대한 희생과 헌신, 열정을 배우는 역사문화교육의 장이자, 종교와 지역민과의 유대 강황 및 협력 쳬게를 구축하기 위한 공동체 의식 함양의 장, 복합문화 향유의 장으로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임피제 신부의 활동모습 등을 담은 사진과 유품 등을 목록화 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전시실을 조성해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이와 동시에 임피제 신부의 활동과 정신을 홍보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프로그램도 구축해 시행한다.

동시에 제주의 돌인 현무암을 재료로 중세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옛 한림성당 종탑의 건축사적 가치와 당시 사진 및 기록들을 활용한 학술적 가치를 되살려 이를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아울러 이 기념관을 중심으로 각종 콘서트 등의 문화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장려함과 동시에 한림성당에서 성이시돌목장까지 이어지는 ‘임피제길’ 순례길 코스 조성 등도 검토한다.

임피제 신부는 전후 제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부다. 1928년 6월6일 아일랜드 도니골 주 래포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성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사제로 서품을 받았고, 1953년 전쟁으로 패허가 된 우리나라로 파견됐다.

임 신부가 제주에 온 것은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1954년 8월 당시 한림공소가 한림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임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임명됐다. 제주 한림읍에 자리를 잡은 임 신부는 그 후 평생을 제주에 머물며 제주발전에 이바지했다. 특히 제주도민들의 경제적자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임 신부는 한림성당 부임 이후 지역 학생들을 중심으로 ‘4H클럽’을 만들었다. 4H는 머리(head), 가슴(heart), 손(hand), 건강(health)의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명칭으로, 청소년은 물론 도내 젊은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성격이었다. 임 신부는 이 때 고향 가족들이 보내 준 후원금으로 양 35마리를 구입한 뒤 한림성당 뒤뜰에 우리를 만들고, 학생들이 이를 기르도록 했고, 양털로 실을 짜서 양말 등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후 돼지와 닭 등을 구해 한림읍 금악리 정물오름 인근에 돼지우리를 만들고, 닭과 돼지 종자를 나눠주는 ‘가축은행’을 설립했다. 또 한때 전국최고의 명품으로 각광을 받았던 한림수직의 전신인 직조강습소를 만들었고, 1961년에는 현재의 이시돌목장인 ‘한림목장’ 등을 개설, 목초지 개량 사업과 각종 가축 사육 등에 나섰다. 동시에 여러 종류의 농기구 사용 및 정비 기술 등을 교육하는 등 제주도내 영농 개선과 농촌 생활 부흥에 큰 기여를 했다.

아울러 1962년에는 제주 최초로 ‘한림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해 제주도민들의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만들었고, 같은해 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를 설립해 제주축산업의 기초를 마련하는 등 64년간 제주근대화 및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70년에는 ‘성이시돌복지병원’을 개원, 제주시 서부권 지역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1960년대 제주도내에 ‘태쉬폰’이라는 건축물을 남기기도 했다. 바람이 많은 제주땅에 알맞은 건물 모형을 연구한 끝에 태쉬폰 건축물을 보급하면서 제주는 물론 국내 근현대사 건축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현재 제주에 남아 있는 테쉬폰 2동은 국가등록문화제로 등록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전까지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과 아일랜드 양국 정부로부터 각각 국민훈장 모란장과 대통령상을 수여받기도 했으며 2018년 4월23일 숨을 거둔 이후 같은해 6월5일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이 추서됐다.

명예국민증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경제적 자립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헌신하신 귀하의 고귀한 봉사 정신을 높이 기리고, 대한민국과 맺은 소중한 인영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