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7-21 00:07 (일)
가을 제주 달리기로 하나된 이들, 모두에게 축제였던 시간
가을 제주 달리기로 하나된 이들, 모두에게 축제였던 시간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3.10.10 15: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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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트랜스제주 by UTMB, 3일에 걸쳐 열려
3300명 참가, 경쟁 없이 모두가 친구가 된 대회
마지막 주자 27시간50분 달려, 감동 만들어내기도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대회 참가자들이 스타트라인에 집결해 있다. /사진=서귀포시.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대회 참가자들이 스타트라인에 집결해 있다. /사진=서귀포시.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달리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축제였다. 한켠에선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다양한 부스가 설치됐고, 각종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다른 편에선 많은 이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분위기를 즐겼다.

이들이 모인 장소는 산을 뛰어오르는 ‘트레일러닝 대회장’이었다. 하지만 대회의 참가자들에게 누가 먼저 들어오고 누가 늦게 들어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큰 의미를 가졌다.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기에 이들에게 이 ‘달리기 대회’는 대회가 아니라 축제가 될 수 있었다. 제주에서 열린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인 ‘트랜스제주 by UTMB’ 달리기로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이었다.

‘트랜스제주’는 2016년 500여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것으로 서귀포에서 시작된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다. 그 역사는 길지 않지만 2016년 이후 대회 규모를 매년 키워가면서 어느 덧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3일에 걸쳐 진행된 올해 대회는 그 규모가 더욱 커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트레일러닝 대회인 ‘울트라 트레일 드 몽블랑(Ultra Trail du Mont Blanc·UTMB)’ 월드시리즈에 포함되면서, 외국인 참가자들의 수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전체 참가자 3300명 중 절반이 넘는 1590명의 선수가 외국인이었다. 외국인 참가자만 보면 제주도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국제대회다.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대회 참가자들이 스타트라인에서 출발하고 있다./사진=서귀포시.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대회 참가자들이 스타트라인에서 출발하고 있다./사진=서귀포시.

이처럼 큰 국제대회는 잠시나마 서귀포의 모습을 바꿔놓기도 했다. 대회 전날 이른 아침부터 월드컵경기장 주변 서귀포 시내를 달려보는 이들의 수가 상당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달리는 이들 중에는 중국과 홍콩, 태국, 싱가포르 등 다양한 나라에서 찾아온 이들이 많았다. 그 외에 유럽과 북미 등 서구권에서 온 이들도 대회 전날부터 서귀포 시내를 달렸다. 할망들이 앉아 있는 서귀포 골목을 다양한 국적의 러너들이 달렸고, 서귀포 주민이 산책을 즐기던 해안가를 많은 이들이 뛰었다. 잠시나마 서귀포는 러너들의 도시가 됐다.

이들은 다양한 국적과 출신,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건너편에서 달려오는 다른 이들을 만날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고, 응원을 건넸다. 이들에게 다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달리기가 이들의 언어였고 소통의 창구였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들은 달리기로 하나가 되고 있었다.

오전 가벼운 달리기로 몸을 푼 이들은 6일 오전 10시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 제주월드컵경기장 앞 광장의 각종 부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겼다.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회장은 활기가 넘쳤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대회가 마무리되는 8일 오후까지 지속됐다.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6일 오전 제주월드컵경기장의 모습.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기 전날이지만 많은 이들이 대회장에 모여 대회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6일 오전 제주월드컵경기장의 모습.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기 전날이지만 많은 이들이 대회장에 모여 대회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된 7일, 이날 뛴 모든 이들이 주인공

이번 대회는 4개 코스로 나눠 진행됐다. 표선면 가시리의 오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10km와 20km, 제주월드컵경기장과 한라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50km, 100km 코스다. 일찌감치  20km 코스에 참가신청을 해두었던 본 기자는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는 7일 이른 오전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으로 향했다.

10km와 20km 대회는 오전 10시 출발이었다. 50km와 100km 선수들은 그보다 앞선 오전 6시경 제주월드컵경기장의 스타트라인을 출발했다. 20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수많은 환호성과 함께 한라산을 향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아직은 해가 떠오르지 않은 어두운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규모는 작았지만 가시리에서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랑말체험공원에 모인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응원을 건넸고, 몸을 푸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 때만큼은 처음 만나는 이들도 친구가 되는 듯 했다. 한편에서는 흥겨운 풍악이 울렸다.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되기에 앞서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흥겨운 장단을 펼쳐놓고 있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그 주변으로 모여들어 한껏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 가운데 가시리에서의 출발시간인 오전 10시가 가까워졌다. 참가자들은 스타트라인에 모여들었다. 출발 직전까지 서로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건넸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이날 스타트라인에 선 이들은 서로에게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목적지까지 나아갈 친구들이었다. 처음보는 이들 모두가 이날 스타트라인에서 친구가 되었고, 달리는 코스 안에서 친구가 됐다.

코스는 아름다웠다.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 주변으로 펼쳐진 농장의 초원을 지나 곶자왈처럼 수풀이 우거진 숲길 구간을 통과했다. 숲길을 달리다보면 어느새 오르막 길이 나타나고, 따라비오름의 부드러운 능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따라비오름을 지나선 억새가 성인의 키만큼 자라난 들판을 지났다. 억새가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구간에선 달리는 이들 얼굴에 놀라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숨이 막히고, 다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 자체가 힘겨웠지만, 풍경 속에선 그와 같은 힘듦이 잊혀지기도 했다. 그렇게 억새의 들판을 지나고 대록산까지 넘어서는 구간은 20km 구간으로 소개됐지만, 실제로 달린 거리는 18Km 가량이었다.

기자가 이 거리를 달린 시간은 1시간46분12초로 기록됐다. 이 시간 동안 코스에서 만나는 선수들은 서로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응원의 목소리로 밀어주었다. 대록산과 따라비오름을 탐방하던 일반인들도 참가자들에게 힘찬 응원을 건넸다.

참가자들이 피니시라인에 들어왔을 때는 가시리 부녀회에서 정성스럽게 끓여낸 국수가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참가자들에게는 지역의 따뜻한 인심까지 더해졌다.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표선면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에서 대회에 앞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2023 트랜스제주 by UTMB가 열린 지난 7일 오전 표선면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에서 대회에 앞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미디어제주.

♢ 온전한 자신과의 싸움, 모두에게 이어진 감동의 시간

가시리에서의 대회는 비교적 짧게 끝났다. 대회가 시작되고 3시간여가 지나가면서 마지막 선수까지 피니시라인에 들어왔다. 모두의 환호와 축하 속에서 마지막 선수까지 무사히 들어온 뒤, 기자가 향한 곳은 50km·100km 대회가 펼쳐지고 있던 제주월드컵경기장이었다. 기자가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을 때엔 50km 코스의 선두권은 모두 피니시라인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코스를 뛰고 있었다. 윗세오름을 오르고 백록담을 넘고 있었다. 100km 주자들이 출발한지 12시간이 지나고 해가 모두 넘어갔을 무렵, 한 일본인 여성 선수가 피니시라인을 향해 달려왔다. 이 여성 선수는 피니시라인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아이를 향해 다가가 포옹했다. 그 주변에선 수많은 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 후로도 수많은 선수들이 100km를 달리고 월드컵경기장으로 되돌아왔을 때, 월드컵경기장에 있던 많은 이들은 피니시라인을 향해 들어오는 이들을 향해 박수를 치고, 잠시나마 함께 달리며 힘을 더해주었다.

대회가 마무리되는 8일 오전에는 27시간 50여분을 달린 100km 마지막 주자가 피니시라인을 향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100km의 컷오프 시간은 28시간이었다. 컷오프를 불과 10여분 남기고 들어오던 마지막 주자는 양쪽 다리를 모두 절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때 대회장에 있던 모두가 그 주자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 주자가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주변에서 힘찬 박수소리가 울렸고, 월드컵경기장 광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 주자와 함께 걸었다. 27시간50분을 뛰고 걷고 오른 마지막 주자의 끈기는 대회장의 모든 이들을 한 마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1등 주자부터 마지막 주자까지 모든 이들의 레이스는 이날 대회에 함께 한 이들에게 감동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올해 트랜스제주는 하나의 축제가 됐다. 이 축제같은 달리기 대회는 앞으로도 서귀포시와 한라산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다. UTMB 본 대회가 열리는 프랑스 샤모니에서는 대회가 이어지는 일주일 동안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고 한다. 제주에서도 국경과 인종, 언어, 그 모든 것을 넘어 달리기로 한 마음이 되는 시간이 지난 3일 동안 이어졌다. 그러기 때문에 이 대회가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내년에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멋진 이야기가 녹아나는 감동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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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준 2023-10-10 16:32:06
27시간 50분 주자 존경스럽네요 ! 재미있는 기사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