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무겁고 무서운 4·3을, 그러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무겁고 무서운 4·3을, 그러지 않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9.26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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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샤워 바다>展 임흥순 작가를 만나다

오는 11월 12일까지 4·3평화기념관서 전시
고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으로 색다른 표현
말하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서 4·3을 설명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4·3은 기억을 지닌 이들에게, 기억이 없는 이들에게도 무섭다. 무겁기도 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이 있기에 그들을 말하려면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당시의 상황을 되짚으면 무섭기까지 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4·3을 그렇게 대해야 할까. 역사적 진실은 무겁고 무섭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임흥순 작가의 <기억 샤워 바다>展은 다르게 보인다. 표현하기에 따라 4·3은 무섭지도 않고, 그렇게 무겁지도 않을 수 있음을 말한다. 쉽게 다가설 수 없던 4·3을, 그는 다가가는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어떤 젊은 분이 그러더라고요. 죽음의 에너지를 삶의 에너지로 바꾸는 느낌이라고요.”

임흥순 작가. 미디어제주
임흥순 작가. ⓒ미디어제주

<기억 샤워 바다>展은 뜨개가 먼저 사람을 맞는다. 눈 위로 뜨개의 연속이다. 4·3평화기념관의 천창에서 내려오는 빛이 뜨개에 걸리기도 하고, 햇살은 뜨개 사이사이를 비집고 바닥에 내려앉는다. 한올 한올 꼬아서 만든 뜨개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머니와 누이의 뜨개질 모습이 순간 지나간다. 눈 위에 걸린 뜨개도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을 텐데.

<기억 샤워 바다>展은 틈만 나면 뜨개질했던 고(故)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으로 만들어냈다. 김동일 할머니는 4·3 당시 연락책이었다. 때문에 형무소 생활을 해야 했고, 할머니에게 이념이 덧씌워졌다. ‘빨갱이’라는 이념은 제주사람이라면 다 아는 고통이다. 그로 인한 연좌제의 아픈 기억은 아직도 제주사람들의 가슴에 새겨 있다.

4·3은 아프지만 <기억 샤워 바다>展은 다른 시선으로 응시하라고 주문을 왼다. 그 주문에 4·3의 아픈 기억도 치유된다.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이 없었더라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4·3도 없지 않았을까. 덕분에 김동일 할머니의 아픈 기억은 더 잘 이해된다.

“4.3 때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죽은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전달해왔는데, 그대로 전달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왔어요. 김동일 할머니의 억울함과 분노와 한탄이 지금 세대에게 똑같이 전달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무겁고, 무섭게 받아들이지 않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어요.”

임흥순 작가가 4·3을 처음으로 표현한 건 2011년에 내건 전시 <비는 마음>이었다. 제주 바깥 인물로 4·3을 전시로 내건 적이 없던 시절이다. 이듬해엔 장편 다큐멘터리 <비념>을 들고나왔다.

사실 임흥순 작가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낮은 자들의 이야기를 찾았고, 다른 데 눈을 돌린다는 게 4·3에 꽂히고 말았다. 다큐멘터리 <비념>은 제주에 뿌리를 둔 반달다큐의 김민경 대표와 함께 만들었다.

“4·3을 말하지 못한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비념>에 나오는) 강상희 할머니처럼요. (침묵하는) 그런 얘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제 나름대로 풀어냈어요. 시각 예술가이고 미술을 해왔기에 풍경으로 (4·3을) 대신해서 보여주게 되었죠.”

색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는 <기억 샤워 바다>展은 김동일 할머니의 뜨개와 옷으로 보여주고, 재일동포의 ‘입’으로도 보여준다. 영상으로 만나는 ‘바다’가 그렇다. 시인 김시종, 축구선수 안영학, 큐레이터 히비노 민용의 삶은 ‘재일’로 살아가는 삶과 4·3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김동일 할머니의 ‘기억’을 통해, 그 ‘기억’은 뜨개로 환생해 ‘샤워’하듯 관객을 씻겨준다. 그렇게 모인 기억은 이젠 멀리 ‘바다’로 나간다. 제주4·3의 기억은 바다라는 경계를 통해 일본과 인연을 맺는다.

임흥순 작가가 영상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미디어제주
임흥순 작가가 영상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미디어제주

“4·3 때 바다에 많은 분들이 수장되기도 했죠. 바다는 죽음과 삶을 가르기도 하는 등 많은 걸 생각하게 해요. 특히 제주도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가 어쩌면 보호막일 수도 있고, 고립일 수도 있어요. 또한 일본으로 이주하는 길이기도 하죠. 죽은 사람은 말하지 못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바다를 통해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기억 샤워 바다>展의 ‘바다’는 누군가의 말을 대신 해주고 있다. 억울하게 죽었던 이들을 대신하기도, 4·3을 꺼내지 않는 이들을 대신한 표현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바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길’일 수도 있다. 제주4·3을 바다라는 공유의 길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임흥순 작가의 표현방식은, 다음 4·3 기획에서 어떻게 표현될지도 궁금하다. <기억 샤워 바다>展은 11월 12일까지 만날 수 있다. 이왕이면 기획전의 영상인 ‘바다’를 관람해보길 추천한다. ‘바다’는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8회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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