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책과 노니는 집> 1
<책과 노니는 집> 1
  • 조형민
  • 승인 2023.08.29 09:0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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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산책] 2

동화로 만나는 삶의 복잡성, 『책과 노니는 집』 <1>
― 역사동화의 살아 있는 어린이 像(상)을 만나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 역사동화로 만나는 낯선 시공간
2. 책으로 노니는 재미와 위기

3. 어린이의 역할: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4. 나가는 말 ― 서유당의 주인

 

1. 들어가는 말 ― 역사동화로 만나는 낯선 시공간

『책과 노니는 집』은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영서의 글과 김동성의 그림으로 창작되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산만한 성격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으려 용을 쓰고 있다고 소개한다. 어린이들이 그렇듯 한곳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이야기 한편을 끝내기까지 몹시도 많은 분주함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숨겨놓은 이곳저곳의 이야기와 인물의 개성을 채워 단단히 완성해낸 『책과 노니는 집』은 짧지 않은 호흡으로 이어지는 서사임에도 단숨에 읽게 되는 끌림이 있다. 아이들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도록 덜어내고 다듬고를 반복했을 작가의 손길이 책의 전편에서 느껴지는 작품이다.

『책과 노니는 집』은 조선 후기의 천주교 박해 사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서사의 중심에는 필사쟁이의 아들인 아홉 살 소년 장이가 있다. 장이는 두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장이 아버지는 책을 파는 사람인 최 서쾌의 책방에서 필사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러던 중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관아로 끌려가 산송장이 되어 돌아온다. 어린 장이는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를 잃을까 노심초사하지만 뒤숭숭한 시국에 부자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에게 필사를 주문하고 자취를 감춘 최 서쾌는 한밤중에 잠시 모습을 나타내고 부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사라진다. 아버지는 은혜를 입은 최 서쾌를 원망하지 말라며 장이를 타일렀지만 장이는 불안함과 슬픔을 떨칠 수가 없다. 아버지는 병세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잠행한 최 서쾌에게 장이를 부탁하고 끝내 숨을 거둔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3년 뒤, 장이가 최 서쾌의 책방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로 본격적인 전개를 맞는다.

아동문학이 교육적 가치에 매몰되어 문학 본연의 가치에 소홀한다면 문학은 교육의 도구 이상이 될 수 없다. 아동을 작은 성인으로 보려는 인식이 깔린 아동문학은 작품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에게 많은 제약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린이가 지닌 인간적 매력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주변과의 조화를 현실적으로 이끌어낸 작품만이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책읽기의 목적이 단순한 재미에 있지 않은 이상 문학은 아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지나친 사명감이나 신념을 바탕으로 인물의 고유성을 훼손한다면 이야기와 독자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나친 교훈주의는 인간을 이상적이고 상황에 순응하는 소극적 인물로 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역사동화는 유의미한 시대를 배경으로 살아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할 때 박제된 교과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견고한 신분제도와 집안 형편에 의해 스스로 운명을 감수해야 했던 작품 속 장이는 평지풍파를 겪으며 살아간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장이에게 돈을 갈취하는 허궁제비 등은 장이의 삶을 곤경에 빠뜨린다. 또 목숨을 걸고 천주학 책을 공급하는 최 서쾌와 양반 신분이지만 천주학을 믿는 홍 교리 그리고 측은지심을 지닌 기생 미적 아가씨 등은 장이의 세계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이다. 장이는 역사적 혼돈의 한복판에서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삶의 복잡성을 마주한다. 장이는 인물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맡겨진 일만을 수행하는 수동적 캐릭터가 아니다. 주변 세계에 호기심을 갖고 자신의 관점에서 이들을 판단하고 사리를 분별한다. 자신의 눈에 비친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쓰며 세상을 원망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여기서 독자들은 장이를 통해 낯선 세계에서 과연 장이가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남을지 감정이입하게 된다. 장이가 겪는 슬픔, 시행착오와 후회, 그리고 자신보다 강한 어른들을 도리어 보호하려는 장이의 투지는 서사의 중심에 선 장이를 더욱 입체적으로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책과 노니는 집』은 어린이들이 난해한 역사적 문제와 삶의 복잡성을 마주하면서 깊이 있는 책 읽기를 하기에 제격인 작품이다. 불우한 장이의 행복 찾기나 올바른 성인으로 바로 서기 등 흔히 예상되는 전개와 불일치하기에 더욱 낯설고 흥미진진하다. 이에 작품의 중요한 제재인 ‘필사쟁이’라는 시대적 직업과 ‘책’을 중심으로 현대에 맛볼 수 없는 감수성에 다가가 보고자 한다.
 

2. 책으로 노니는 재미와 위기

작품은 필사쟁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직업과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천주학 ‘책’으로 조선의 시공간을 재현해냈다. 단순히 시대를 묘사하고 이해시키는 목적과 방식을 탈피하고 특정 계층의 인물과 사건에 주목한 것이다. 필사쟁이는 조선 후기 서민문화가 발전하고 문학 향유계층이 서민층까지 확대되면서 새롭게 생겨난 직업군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장이와 장이 아버지의 직업은 휘몰아치는 위기와 갈등 속에 장이가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던 ‘문자’가 서민 삶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서민의식은 변화한다. 대표적 인물인 장이는 문자를 흉내 내어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책을 갈구하는 이들의 정신적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다. 필사쟁이라는 직업을 통해 장이는 이제 막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던 문자를 흉내 내기 시작한 서민 계층에서 그 안의 의미를 탐독하기 시작해 나가는 정신적 성장의 변모 과정을 겪는다.

“간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쓰셨어요?”
“우리에겐 밥이 될 이야기, 누군가에겐 동무가 될 이야기,
그리고 또 나중에 우리 부자에게 손바닥만 한 책방을 열어 줄 이야기를 썼지.”

- 본문 중 -

밤새 필사를 한 아버지와 장이가 나눈 소담의 일부다. 장이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그저 베껴 쓰는 일에 한정하지 않는다. 힘든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일로 가치 부여한다. 더불어 두 부자의 꿈인 책방을 열게 해 줄 강력한 내적 동기다. 신분제 사회에서 정해진 태생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꿀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글’이었음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필사는 단순히 베껴쓴다는 의미지만 글에 실려있는 인물들의 바람과 꿈이 컸던 만큼 작품에서 필사 행위는 좀 더 고귀해진다.

“네가 상대하는 손님들은 행세하는 집안에 글깨나 읽는 양반 선비들이다. 손님을 찾아갈 때, 매무새도 단정히 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 귀찮게 하지 말거라. 넌 주막거리에서 술심부름하는 아이가 아니다. 네가 하는 일은 지식을 배달하는 일이야. 값진 일이다. 명심해야 한다.”

- 본문 중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이는 최 서쾌의 책방에서 필사한 책을 배달하는 심부름을 하며 살아간다. 최 서쾌는 천주학 책에 연루되어 일찍 돌아간 장이 아버지를 대신해 장이를 거둔다. 아버지를 여읜 장이를 보면서 최 서쾌의 마음 또한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이에 대한 훈육에서 장이가 어떻게든 번듯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책을 읽는 본래 목적은 지식을 얻기 위함이다. 지식을 얻음은 단순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책읽기로부터 얻은 지식을 자기화하고 생활 속에서 구사하며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최 서쾌는 장이에게 책을 매개재로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세와 책을 통해 맺는 인간관계를 귀히 여기는 교육을 행한다. 장이가 주변 세계를 받아들이는 긍정적 인식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정신적 기반을 닦아준 것이다.

“아버지 손에 끌려 어린 나이에 기생집에 팔려 온 아이한테 『심청전』 얘기를 해 주었어?” [중략]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고, 장사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해.”

- 본문 중 -

장이는 기생집인 도리원의 어린 소녀인 낙심이에게 측은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다섯 살 때 도리원에 팔려 온 낙심이는 기생 미적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낙심이는 동네 왈패인 허궁제비의 위협으로부터 장이를 구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고마운 낙심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장이는 아버지 심 봉사를 위해 팔려 간 심청이 얘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낙심이는 딸을 팔아먹은 심 봉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에 최 서쾌는 어릴 때 팔려 와 온갖 눈치를 다 보고 자란 아이에게 상처를 건드린 이야기를 했다며 장이를 나무란다. 영문을 몰랐던 장이는 사람을 대할 때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마음 시중을 들어야 함을 깨닫는다.

낙심이는 버림받은 태생으로 평생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장이와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부모의 부재와 상실을 경험한 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감당하기에도 힘든 처지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운명에 억눌려있지 않고 어린이 본연의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무장되어 있다. 두 아이는 어린이의 천연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서 서로에게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작은 갈등을 표출하기도 한다. 두 어린이 인물의 캐릭터성이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장치가 된다는 점도 작품의 문학적 충실성을 드러낸다.

한편 작품에서 ‘책’은 모든 서사의 열쇠이다. 장이가 홀로서게 되는 시점인 장이 아버지의 죽음부터 필사쟁이가 되어 독립을 앞두기까지 모든 단초는 책이다. 장이는 어릴 적부터 책을 베껴쓰는 아버지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아버지와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책은 장이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친숙한 대상이다. 최 서캐는 천주학 책을 몰래 필사해 홍 교리와 도리원 등에 제공하는 공급책이다. 관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최 서캐는 표지를 바꿔 책을 완성한 뒤 장이에게 책 심부름을 시킨다. 장이는 책 심부름을 하며 홍 교리와 기생 미적 아가씨 등을 만나고 점차 세상에 대해 눈을 떠간다. 이렇듯 책이 아니었다면 접점을 이루지 못했을 인물들을 모아놓고 작품은 차츰 장이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어렵고 재미없어도 걱정 마라. 네가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 ‘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

- 본문 중 -

장이는 최 서쾌의 심부름으로 홍문관 교리의 집에 드나들게 된다. 남들보다 젊은 나이에 조정 최고의 요직에 오른 홍 교리는 고관대작들을 조상으로 둔 가문의 수재다. 그런 홍 교리는 책 심부름을 하는 장이에게 문답하는 것을 즐긴다. 그는 책의 담백한 맛을 논하며 장이가 책을 계속 가까이 하기를 바란다. 장이는 홍 교리가 말한 담백한 맛을 두고 닭곰탕을 떠올리지만 자신의 처지에 가까이하기 힘든 인물인 홍 교리의 말을 곱씹는다. 어릴 적 숟가락보다 붓을 먼저 잡았던 장이는 필사쟁이의 피가 흐르는 아이다. 그런 장이에게 서유당(홍 교리의 집 사랑채)의 홍 교리는 필사 너머의 지식의 세계를 제시하는 인도자의 역할을 한다. 장이는 홍 교리를 통해 추상적이지만 자신의 인생 목표를 새롭게 상정하려는 내적 성장에 가까이 다가간다. 또한 천한 신분의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준 홍 교리가 위기에 닥쳤을 때 그를 구하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최 서쾌로부터 얻은 배움과 홍 교리의 지지로 인해 장이는 성장하고 종속적 인물에서 주도적 위치로 자리매김한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천주실의』가 최 서쾌와 홍 교리를 다시 한번 위험에 빠뜨리게 되자 장이는 다시 한번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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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희 2023-08-31 18:52:12
아이들과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도하고 색다르기도 하네요. 좋은 책은 아이가 읽어도 좋고 어른이 읽어도 좋은 것 같아요. 책 속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게 되는 이런 즐거움을 못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책과 노니는 즐거움을...

정미주 2023-08-31 14:21:37
아동문학이 교육적 가치에만 매몰되어 문학성을 상실하는 것을 경계해야 함에 공감이 가네요. 요즘 널리 읽히는 소설들을 보면 독자의 대상이 청소년,성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 것 같아요. 또 성인이 읽어도 공감가고 감동을 주는 아동 문학 작품이 많기도 하고요. 세대로 막론하고 감동을 주는 아동문학 작품을 소개해 주시길 기대할게요. 아이들과 함께 읽어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