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는 한국 사회에서 개발의 첨병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고속도로는 발전의 지름길이었고 자본과 인력을 전국으로 퍼뜨린 핵심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이미 도로의 역할은 끝난 지가 오래되었다. 오히려 도로개발로 인해 환경․생태계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역효과 문제까지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국적으로 특히 제주도는 여전히 도로 개발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제주도는 서울을 제외하고 도로 포장률이 가장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왜 도로개발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제 도로개발은 문제점을 정부에서, 지자체에서 인식하고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있다. 이에 ‘도로 개발, 이제 되돌아 볼 때’란 주제로 4회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 길에서 도로로의 전환은 속도사회로의 전환이었다
오솔길이란 단어는 많은 이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솔길의 개념을 숲이나 들판의 호젓하고 조그마한 길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솔길의 어원이 오소리가 다녔던 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주도에서는 ‘지다리’라고도 불리는 오소리는 노루와 함께 제주의 대표적인 포유류이지만 굴속에 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오소리는 다리가 매우 짧다. 그러다보니 오소리가 다닌 곳은 배가 땅에 닿으면서 조그만 길이 만들어진다. 이를 우리 선조들은 오솔길이라 부른 것이다. 제주 선조들이 꿩이 다니는 길에 ‘꿩코’를 놓아 꿩을 사냥했듯이 우리의 선조들은 오소리가 다니는 길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지금의 도로는 차와 사람만이 다니는 곳이지만 ‘길’은 사람뿐만 아니라 뭇생명들이 다니던 소통의 공간임을 선조들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솔길뿐만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길에 수많은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세계에서 우리 민족만큼이나 이처럼 길에 관하여 많은 단어를 만들어낸 민족이 있을까 싶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살펴보자.
고샅길 - 마을의 좁은 골목길.
진창길 - 땅이 곤죽처럼 질퍽한 길.
잿길 - 언덕배기로 난 길.
오솔길 - 폭이 좁고 호젓한 길.
논길 - 논 사이에 난 길.
벼룻길 - 강가나 바닷가 낭떠러지로 통하는 비탈길.
나뭇길 - 나무꾼들이 나무하러 다니면서 낸 좁은 산길.
꼬부랑길 - 여러 굽이로 꼬부라진 길.
논틀길 - 꼬불꼬불한 논두렁 위로 난 길
자드락길- 낮은 산비탈 기슭에 난 길
숫눈길 - 눈이 소복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첫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
올레길 - 길에서 집까지 들어가는 제주의 좁은 길
참으로 아름다운 말들이다. 특히 ‘숫눈길’은 “눈이 소복이 내린 뒤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첫 발자국을 기다리는 길”이란 의미가 있는데 정말 미학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길은 인간적인 소통과 여유의 공간이었으며 인간뿐만 아니라 뭇생명을 배려할 줄 아는 문화가 담긴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수많은 길은 거의 사문화되었다. 추억속의 길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그 수많은 길 대신에 국도니 지방도니 하는 행정도로가 대체하고 있다. 길에서 도로로의 전환은 속도사회로의 진입을 알리는 거대한 전환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도로개발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도적인 개발사업 중의 하나이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시작한 고속도로 사업은 한국사회를 산업화로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좁은 농로가 시멘트로 확장 포장되었고 개발이 진행될 곳에는 어김없이 도로가 개설되면서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누구도 도로개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시작된 '토건국가'의 한계와 수명은 이미 끝나지가 오래 되었다. 토건국가의 가장 기본적 개발요소였던 도로개발은 실제 필요에 의해서도, 산업의 발전을 위한 것도 아닌 ‘토건카르텔’의 조직유지를 목적으로 변화된 지 오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채, 정작 한국 사회의 가장 오래된 병폐인 토건 카르텔은 거론하지 않고 있다. (물론 자신이 포함되었던 법조 카르텔도 심각하다)
도로개발로 인한 문제는 환경문제, 교통사고 문제, 침수피해 등 열거할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도로개발의 주목적인 산업의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보았을 때도 문제가 있다. 오히려 수많은 대규모 신설도로가 생기면서 지역 상권이 낙후되어가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가 상승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도로개발은 여전히 토지주들이 선호하는 개발이며 민원이 적기 때문에 행정당국도 가장 선호하는 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제주도는 서울을 제외하고 인구대비당 도로 면적이 전국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수많은 도로개발이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도로 공사는 끊임없이 계속될 예정이다.
과거 개발도상국이었던 상황에서는 도로밀도가 높은 것이 미덕이며, 경제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긍정적인 지표였다. 그러나 제주도의 도로개발은 이미 적정량을 넘어섰고 경제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그보다 더한 생태적․사회적․경제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도로개발은 제주도 관급공사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개발 사업에 비해 도로개발은 아무 장애물 없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 도로개발은 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첫째, 도로는 산업인프라에서 가장 핵심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예나 지금이나 지방정부는 개발정책 중 도로에 우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관성화되었다. 그래서 지역에 도로를 개설해주면 지역주민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자치단체장이나 자치단체 의원들은 지역구에 도로 개설이나 확장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지가의 상승이다. 도로 개설을 하면 지역주민들은 이동의 편의성이 담보되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더 큰 것은 도로주변 지가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맹지에서 비싼 대지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이 이해관계가 맞았던 점도 도로를 많이 개설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도로 개발은 부동산 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왔고 토건 비리의 온상이었다. 멀리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근의 김건희 여사의 양평고속도로 논란만 봐도 사례는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셋째, 비대화된 토목산업과 이를 유지하려는 정부와 지자체의 경기부양방식의 문제이다. 여전히 한국사회내에서 토목산업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환경부보다 국토교통부의 규모가 십 수 배에 이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산업계구조에서도 토목산업의 비중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제주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정작 시급하게 깨뜨려야 할 카르텔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토건 카르텔이다.
제주도의 특성상 제조업은 비중이 적은 대신 건설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2차 산업의 대부분인 토건업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상 제주도당국이 떠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흔한 경기부양책으로 도로개발은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 왔다.
미국의 대공황이후, 그 원인과 처방을 고민하던 중에 경제학자 케인즈는 공공건설사업을 일으키는 방식을 주장하였다. 도로, 항만, 공항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을 일으켜 토목업계를 살리고 소비를 진작시키면 자연스럽게 경기부양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방식은 유효했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 되어왔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였고 그것은 보수정권, 개혁정권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는 대규모의 토목사업을 발주하였다. 제주도도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공공사업을 빨리 발주하곤 한다. 제주도의 경기부양방식도 토목산업에 기대고 있다. 토목산업에서도 도로공사는 가장 수월한 공사에 속했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한국사회내에서, 특히 제주도내에서 도로개발은 무분별하게 이뤄져왔던 것이다.
양수남의 생태적 시선
양수남 칼럼니스트
제주대학교 농업경제학과 대학원(수료)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 친환경농업 팀장
(현)제주자연의벗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