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한결같다. 덥거나 습하면 적잖이 미치는 성격이다. 물론 성격이 모나거나 삐뚠 것도 아니고, 남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까닭 모를 울분을 혼자 삭이지도 않는다.
보통은 글로 푼다. 날이 덥고 습해면 샤워를 해도 반나절이면 땀에 절고, 세수를 여러 번 해도 얼굴은 기름으로 반짝인다. 여름. 하루에도 몇 번씩 폭염주의보와 호우주의보 재난안전문자가 번갈아 오는 장마의 끝물. 그래서 살짝 미쳐 숙제를 해 본다.
오늘의 숙제는 아내가 내주었다. 음식에 관한 내용으로 수필집을 내라는 몇 년간 묵은 숙제다. 그간 귀찮아서 쓰지 않았다. 떡볶이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데 글로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나 아내의 숙제는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초벌구이 식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5가지의 요리를 순서대로 정리하고 정의해 보겠다.
#1. 떡볶이: 항상 맞춤법이 헛갈린다. 떢볶이, 떡볶기, 떡복기, 떢볶기, 떠보기. 오늘도 이 단어를 정확히 적기 위해 네★버에 물어보았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맞춤법을 헛갈리는 사람은 더 많다. 그만큼 매우 독특한 요리이다. 내가 제일 좋아한다. 하루 두 끼는 연속으로 먹을 수 있다.
#2. 뼈감자탕: 보통 참치김치찌게, 스팸김치찌게처럼 우리나라 요리를 작명할 때는 보통 부재료, 주재료, 요리법 순으로 한다. 그런데 이 요리는 압도적으로 요리에 돼지의 (등)뼈가 많은데도 부재료인 감자보다 ‘뼈’가 앞에 나온다. 그만큼 매우 이상한 요리이다. 식당마다 차이가 있어 혹여 요리에 감자가 적게 나오면 빈정이 상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좋아한다. 하지만 집에서는 못 먹는 단점이 있다.
#3. 떡볶이: 또 나왔다. 하루 두 끼를 연속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날이 덥고 습하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하루 두 끼는 연속으로 먹을 수 있다.’
#4. 뼈해장국: 또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뼈감자탕과 뼈해장국은 결코 같은 음식이 아니다. 이름부터 다르다. 물론 뼈해장국에도 주방장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뼈감자탕과 같이 약간의 감자가 들어갈 수는 있다.
그래도 극단적인 차이를 말하자면 뼈‘해장’국의 용도는 ‘해장’에 있다. 뼈‘감자’탕의 용도가 ‘감자’가 아니지 않는가? 역시 집에서는 못 먹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주로 밥을 혼자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먹는다.
#5. 라면: 라면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 사람 중에 좋아하는 요리 5위 안에 라면을 빼먹는다면 랭킹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름 나를 제외한 지구인의 눈치를 보며 넣었다.
장점으로는 다들 말하듯이 짧은 조리시간과 간편함이다. 그러나 단점으로는 내가 항상 느끼는 바지만 집에서 끓여 먹고(조리시간 10분내외), 그 안에 온갖 부재료(계란, 파, 마늘, 만두, 새우, 어묵, 맛살, 다시마, 두부, 순두부, 김치, 깍두기, 오징어, 낙지, 주꾸미, 스팸, 비엔나소시지, 국수?, 새우젓?, 된장? - 내가 넣어본 것들로 항상 한 번에 다 넣는 것은 아님을 밝혀 둔다.)를 넣고, 밥상 닦고 설거지까지 한다면 시간도 오래 걸려, 배도 불러, 아무튼 상당히 귀찮은 요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혼자 있으면 반찬을 꺼내 밥을 차려 먹거나, 음식을 배달하기 귀찮아서, 간편하게(!) 라면을 끓여 먹는 미친 짓을 한다.
순위권에 들지 못한 요리들은 아쉬워 말라. 날이 계속 더우면 너희들도 6위부터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
아내이자 여신이여. 숙제 중에 일부는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숙제를 다하지 못해도 일부를 하거나, 대충이라도 다 했으면 선생님한테 맞지는 않았습니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경영지도사(마케팅),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일상의 조각모음』, 2018년, 지식과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