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의사가 여기 있어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의사가 여기 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8.02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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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자가 된 전영웅 봉개영웅의원 원장

진료실 풍경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 펴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질타

제주 바라보며 “성찰하는 개인이 나왔으면”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기자는 누군가를 만나는 게 일상이다. 명함은 순식간에 날아간다. 그렇게 세상에 뿌린 내 명함은 수천 개나 된다. 어디에 뿌렸는지 모를 정도이다. 휴대폰에도 만난 이의 숫자는 늘어간다. 그 숫자는 약속을 실현했다는 증표이다. 증표를 남기려면 만남이 성사돼야 하는데, 최근에는 그러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며 해보지 못한, 인터뷰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메모를 하고서도 잊고 말았다. ‘토요일에 쉬어본 적이 얼마인가?’라며 스스로 행복에 겨워 지내고 있는데, 아뿔싸!

“오고 계신지요. 12시 반 말씀드렸었는데요.”

한 통의 문자. 2시간 전에 들어온 문자였다.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그랬지, 토요일에 맘껏 쉰다는 건, 상상의 영역에 불과했음을…. 약속을 어긴 지 거의 한 달 만에 인터뷰 주인공을 마주하게 됐다. 봉개영웅의원의 전영웅 원장이다. 수염을 듬성듬성 드러낸, 진료실의 공간을 지키는 의사이다. 아니다. 그는 얼마 전에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을 펴낸 작가이다.

전영웅 봉개영웅의원 원장. 미디어제주
전영웅 봉개영웅의원 원장. 미디어제주

의사는 어떤 직업일까. 선입견일 수는 있지만 수많은 환자를 대하다 보니, 환자를 의학적 관점으로만 들여다보지 않을까? 기자로서 평소에 지녔던 지론은 그랬다. 하지만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의 저자는 기자의 그런 지론을 뭉개버렸다. 한마디로 그는 환자와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의사였다. 그런 의사도 있었음을 책을 통해 배웠다.

“기침 몸살로 온 환자라면 계절이나 환경적 요인으로도 판단해요. (많은 의사들이) 워낙 비슷한 환자들이 많이 오니까 매너리즘에 빠져서 의학적 관점으로만 보기도 하죠. 그런 환자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 다른 데서 설명을 못 들었다고 하며 가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전영웅 원장은 전공의 수련을 마친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끄적였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과 이야기를 나눈다.

“전공의 수련이 끝날 시점에, 블로그가 뜨기 시작했어요. 저도 글을 써볼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당직 때마다, 시간 나는 대로 끄적인 게 꾸준히 쓰게 됐죠.”

책을 낸 저자이지만 그는 ‘글’과는 먼 존재였다. 국어에 자신이 없어서 대학도 ‘국어 없는 본고서’를 치르는 곳을 택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글로서 세상을 말한다.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은 그가 쓴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일부이지만, 사람의 가치를 말하는 책이다.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아프지만 일을 하러 몸을 일으켜야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에 그대로 배어 있다. 그는 책에서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를 꺼낸다. 잠시 책의 한 문장으로 들어가 보자.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을 둘러싼 수많은 혐오와 갈등을 방치해 둠으로써 구조 자체에 대한 불만을 잠재운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일 뿐인데 그들을 향한 불쾌한 시선을 방관으로 일관한다. 세상은 그렇게 교활하게 존재의 부정을 먼 산 바라보듯 한다. 구조 자체에 도전하는 계급의 반동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문장은 안타깝게 읽힌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 소수자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가 되어버렸고, 그 순간 계급사회로 치닫는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책에서 보인 글처럼, 전영웅 원장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의료 문턱이 너무 낮아서 재정 낭비가 되고 있어요. 의료보험은 여전히 비급여가 많고, 비급여는 비쌀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의료비는 여전히 비쌉니다. 복지는 아직도 힘들고, 일하다가 아프면 빨리 일하러 가야 한다고 그래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이기 때문이죠. 치료받을 수 있는 시간에 대한 보장도 필요해요. 그분들도 의료보험에 속해 있으니까 그 안에서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죠.”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그걸 놓치고 있다.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보고 있다. 좁은 진료실이라는 공간. 그 공간은 의사와 환자라는 객체끼리의 만남이 하루에도 쉼 없이 일어난다. 환자를 의학적 관점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전영웅 원장에게 진료실은 어떤 공간일까.

전영웅 원장이 최근 펴낸 책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 속지에 사인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전영웅 원장이 최근 펴낸 책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 속지에 사인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의사는 치료가 아닌, 환자의 회복을 돕는다는 건 일반적인 개념이기도 하죠. 감기약도 그때그때 불편한 증상을 가라앉히는 거지 감기를 낫게 하는 약품이 아니잖아요. 의사들은 감기가 낫는 동안 환자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약을 처방 내리는 거고, 필요하면 조치를 해주는 거죠.”

진료실의 지배자가 아닌,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읽어서 위로도 줄 수 있고, 위안도 줄 수 있고, 공감도 할 수 있는 공간이 곧 전영웅 원장이 지내는 진료실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환자를 봐온 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가장 많은 나날을 제주에 있는 환자들을 보며 살았다. 알고 보면 그는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내려온 때는 2010년. 제주가 변곡점을 맞는 시점이다. 2010년을 전후로 제주도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제주에 살아야지!”라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온 건 아니었다. 우연찮게 밟은 제주라는 땅은 그에게 너무 괜찮았다. 살다 보니 좋아서 계속 사는 셈이다. 제주사람이 된 그는, 제주를 어떻게 바라볼까.

“없던 것들도 마구 생기고, 건물도 많아졌죠. 한적했던 해안도로도 빼곡해졌어요. 예전엔 귤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런 풍경도 사라졌어요.”

아름다운 곳을 남기면 좋으련면, 그러지 못한 현실을 눈앞에서 봐야만 한다. 속상하다. 자본과 연결된 이익 구조가 판치는 제주를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그는 말한다. ‘성찰하는 개인이 나와야 한다’고.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은 환자와의 관계를 주로 담았지만, 책 속에서 제주가 처한 상황도 살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의 속내를 더 알고 싶다면 전영웅 작가를 만날 수 있는 북토크 자리로 향해보자. 그의 북토크는 8월 12일 토요일 저녁 7시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있는 달리책방에서 진행된다. 어쩌면 그날 성찰하는 개인을 만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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