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칼럼을 선보이겠습니다. ‘독서 산책’이라는 주제를 단 칼럼으로, 세대를 아울러 감동을 주는 책에 주목하렵니다. 책을 통해 삶의 진실한 순간을 포착하고 성장의 문턱을 넘어서는 경험을 함께하길 독자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칼럼의 시작은 제46회 <소년문학> 신인문학상 작품을 담습니다. 수상작품은 ‘성장동화의 관점에서 본 <긴긴밤>-연대와 정체성을 중심으로’입니다. [편집자 주]
1. 들어가며 - <긴긴밤>의 성장 서사
2. 상처 입은 영혼들의 연대 의식- 허물어진 경계의 삶, 흰바위코뿔소 노든
3. 공간의 서사를 통한 정체성 추구
4. 나가며 - 미완의 긴긴밤
1. 들어가며
- <긴긴밤>의 성장 서사
<긴긴밤>은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 ‘루리’의 글과 그림이다. 이 작품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이름 없는 펭귄, 그리고 그들을 있게 한 이들의 연대기다. 사막과 초원을 누비며 바다로 전개되는 동화의 배경은 혹독하나 아름다운 양가적 공간성을 담고 있다. 서정적 문체와 함축적인 삽화로 긴긴밤을 나는 인물들의 성장을 형상화하고 있다. 미술 이론을 공부하고 그림책에 애착을 가진 듯한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삽화 또한 특별하다. 인물들의 마음을 헤집는 묘사나 서술 없이도 그림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긴긴밤>에서는 연대를 자연의 순리로 여기는 동물들이 어린 생명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흰바위코뿔소인 노든은 어릴 적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는 상태로 코끼리 고아원에 들어간다. 고아원의 코끼리들은 종의 다름을 변별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코뿔소를 품어준다. 시간이 흐르자 노든은 코뿔소로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 세상에 나오지만 갖가지 상처를 입고 세상에 유일하게 홀로 남은 종이 되었다. 그러나 마치 운명처럼 펭귄 알을 품게 되고 새끼 펭귄이 태어나자 함께 길을 떠난다. 코끼리 고아원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연대는 펭귄이 자아를 찾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기까지 고귀한 정신적 유산으로 상속된다.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의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자신을 찾아 떠났다. 지혜롭고 자애로운 코끼리들 속에서 훌륭한 코끼리 식구가 되었지만, 코뿔소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생에서 인간의 폭력 앞에 아내와 딸 그리고 소중한 친구를 잃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다. 그런 그에게 새끼 펭귄이 맡겨지자 자신이 훌륭한 코뿔소가 되기를 바랐던 코끼리들의 마음이 다시 환원된다. 노든은 펭귄이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날 수 있을 때까지 길동무가 되어준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코끼리 고아원을 떠날 때와 같이 펭귄이 자신만의 꿈을 찾도록 떠나보낸다. 펭귄은 노쇠해진 노든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지만 결국 펭귄의 세계를 향해 바다로 뛰어들며 홀로서기를 한다.
동화의 공간은 단순히 사건이 진행되는 배경이 아닌 인물들의 정체성 형성에 변화가 일어나는 서사적 세계이다. 작품은 성장의 자양분이 된 코끼리 고아원, 시련의 공간인 동물원과 사막 그리고 초원,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상징하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공간적 서사가 매우 치밀하게 포진되어 있다. 특히 사막과 초원의 혹독함이 기나긴 시련을 겪어야 하는 인물들의 운명과 어우러져 서사에 리얼리티를 더한다.
<긴긴밤>은 미성숙한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이를 극복하며 변화와 성숙의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담은 성장동화 형태이다.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들어서는 인물이 겪는 내부·외부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각성을 주로 다룬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성장동화의 관점에서 <긴긴밤>은 가냘픈 탄생과 생명의 지속 사이에서 연대를 바탕으로 마침내 성숙하는 인물들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사춘기 전후의 독자들은 긴긴밤으로 이어지는 시련과 상실 가운데서도 이들을 우뚝 서게 하는 존재들의 찬란한 연대를 보게 될 것이다. 연대와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체화되어 사회적 의식으로 연결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나아가 작품은 생명 감수성을 바탕으로 차별의 벽을 넘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인생 여정을 그려 연령대를 불문하고 감동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 ‘연대와 정체성’이라는 성장 담론이 <긴긴밤>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이 글을 쓴다.
2. 상처 입은 영혼들의 연대 의식
- 허물어진 경계의 삶, 흰바위코뿔소 노든
이 작품은 코뿔소와 코끼리, 펭귄. 도무지 연결성 없는 존재들이 <긴긴밤>의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지금껏 상상치 못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것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정작 인간조차도 잃어가고 있는 삶의 본질을 되살리는 서사로 가득 차 있다. 긴긴밤의 시작과 지속, 그리고 빛의 도래까지 이어지는 기적 같은 이 이야기는 모두 상처 입은 존재들이 있어 가능하다.
가. 함께가 답이다!
노든의 출생은 고귀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 노든의 첫 기억은 가족을 잃은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코끼리 고아원의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코끼리들과 흰바위코뿔소 한 마리의 희한한 동거는 노든이 향후 자신과 비슷한 존재인 새끼 펭귄을 품을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이 된다. 어린 노든은 자신이 코끼리인 줄 알았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코와 귀를 보며 어렴풋이 무리와 자신이 다름을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코끼리들은 노든이 코뿔소인 사실이 중요치 않았다.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가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코끼리들의 정신적 지주인 할머니 코끼리는 노든에게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임을 깨우쳐준다. 다른 존재를 품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사랑을 요구한다. 아직 자생능력이 없는 어린 코뿔소를 위해 코끼리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노든을 양육한다. 현명하고 따뜻한 코끼리들을 보며 노든은 자신이 코뿔소의 겉모습을 지닌 코끼리라고도 생각했다. 종을 구분 짓고 영역을 나누는 오늘날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째서 노든을 코뿔소 무리로 보내지 않는가?’, ‘왜 코끼리는 코뿔소를 내치지 않는가?’ 등으로 편견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한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함께 하는 것이 답이다!
인간 세계와 비교할 때 코끼리들의 행위는 비상식적이고 실익 없는 결정이다. 유사성 있는 집단끼리 무리를 짓고 무리의 안정을 위한 의사결정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현시대에 코끼리 무리가 보인 포용은 낯설기까지 하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상식에 어긋난 작품의 변주는 더욱 빛을 발한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보호자 없는 코끼리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버려진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한다. 거기에 자신들과 다름은 중요치 않다. 다수의 강자와 소수의 약자 논리 또한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한 점에서 고아원은 노든에게 연대의 삶의 기착지인 셈이다. 비판적 읽기가 오늘날 독서 교육의 주된 방향인 바, 독자들은 자연스러운 두 종의 만남이 인간의 상식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가치임을 현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든은 까마귀로부터 바깥세상의 코뿔소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자신과 닮은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노든은 자신을 품어준 코끼리들이 더 친근했으며 어른이 된 자신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면 늠름한 코끼리의 모습을 그렸다. 그렇게 코끼리로 살아가던 그에게 이제 스스로의 앞날을 선택할 시간이 다가온다. 바깥세상으로 나아가 자신에게 왜 뿔이 있는지 알고 싶은 반면 가족 같은 코끼리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포기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다. 노든은 자신 앞에 놓인 안락함과 의문의 무모함 속에서 주저한다. 결국 코끼리 고아원에 남는 것을 선택한 그에게 할머니 코끼리는 뜻밖의 반응을 보인다.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자신들의 품을 떠나지 않으려는 정든 코뿔소. 그러나 연륜의 코끼리는 주저하는 노든에게 넓은 세상으로 가 새로운 인연을 맺으라고 권한다. 종속과 통제로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할머니 코끼리의 대답은 전혀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그녀는 가혹한 야생에서 보호자 없이 살아가야 할 노든을 겁주지도, 안정적 선택을 한 노든을 칭찬하지도 않는다. 코뿔소인 자신을 찾으려는 본능적 호기심을 죽이고 야생성을 잃어갈 어린 생명이 안타까웠을까. 바깥세상을 향한 막연한 동경으로 노든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은 마냥 앉아서 치러지는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선 경험들이 쌓여야 비로소 나의 삶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코끼리들이 노든을 떠나보내며 한 말이다. 연대의 정신은 노든을 성숙한 코뿔소로 성장하는 가장 기초적인 발판이 되어준다. 처음 노든을 맞았을 때도 이제 그를 보내야 할 때도 그들에게는 어떤 심리적 장벽도 없다. 코끼리들의 모습에 투영된 연대의 모습은 동화적 형상화로 독자들에게 체화된다. 또한 코끼리들은 타인을 사랑으로 품어 노든이라는 흰바위코뿔소가 존재해야 할 의미를 밝혔다. 사랑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노든은 이제 외연을 확장하고 자신의 새로운 안식처를 향해 떠난다.
연대 의식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인간성을 토대로 한다. 또한 이러한 본성이 타자에게도 똑같이 현존함을 인정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아동청소년 독자들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시작된 연대의 모습을 통해 각자도생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상호협력의 가치가 창출되는 사회적 연대에 대해 이미지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 남겨진 자의 무게
고아원을 나온 노든은 바깥세상의 규모와 다양성에 매료된다. 고아원에 갇혀 있을 때 보지 못한 자연의 생동감이 노든을 감싼다. 석양으로 물드는 대지의 찬란함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나무와 들판의 풍광. 그 틈에서 생명체들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끼리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코끼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코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코뿔소들이 있어야만 했다. 다른 코뿔소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노든을 코뿔소답게 만들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야생의 삶에서 노든 또한 자신과 같은 코뿔소들 속으로 들어가기를 갈구한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서툰 노든에게 생존을 위해서라도 가족은 필연적이다. 마침내 노든은 빛나는 흰뿔을 가진 코뿔소를 만나 가족을 이루게 되었고 딸이 태어난다. 세 가족은 함께 초원을 누비고 나무 기둥에 코뿔을 문지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노든에게 아내와 딸은 가장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 무엇이었다. 노든은 감히 그 반짝임에 대해 함부로 입을 떼지 못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노든에게 사랑의 의미는 더 확장되고 갱신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세 가족은 밀렵꾼들에게 공격받게 되고 노든 혼자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뿔이 깊게 잘려나간 아내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노든의 딸은 몸에 여러 발의 총알이 박힌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 가족의 안식처였던 진흙 구덩이는 코뿔소의 피로 가득했다. 긴긴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간들에 의해 구조된 노든은 파라다이스 동물원으로 옮겨진다. 노든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에게 사나운 공격성을 보였고 밤이 되면 악몽을 꿨다. 피폐해진 그에게 다시금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준 이는 동물원의 또 다른 코뿔소인 앙가부다. 둘은 동물원을 탈출하는 계획을 세우고 세밀하게 준비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원에 뿔 사냥꾼이 잠입하면서 앙가부는 뿔이 잘려나간 채 죽고 만다. 노든이 더 이상 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물원 사람들은 노든의 뿔을 잘라낸다. 노든은 가까스로 부여잡은 삶의 끈이 잘린 상태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가 되었다.
가족과 친구를 잃고 철조망에 갇힌 노든.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남은 자에게 운 좋은 삶이란 없었다. 눈뜨고 숨 쉬는 모든 시간 속에 노든은 응고된 아픔으로 무너져갔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과 홀로 남겨졌다는 고립감은 노든에게 가장 치명적인 아픔이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에 익숙했으며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법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기억과 온기를 뒤로 한 채 그는 이제 홀로 견뎌야 한다. 차라리 남겨진 자가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더 용감하게 가족을 지켰더라면, 내가 앙가부와 그날도 함께 있었더라면. 후회와 죄책감으로 침잠된 그에게 살아남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동화 속 긴긴밤은 노든이 평화로웠던 코끼리 고아원을 거쳐 가정을 이루고 행복에 충만했을 때 가장 극적인 시련으로 찾아온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을 잃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것도 불가항력적인 인간의 폭력성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연대와 사랑을 본성적 가치로 삼아온 노든에게 이러한 무차별적 공격은 극심한 심리적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살아야 할 의지를 잃었으며 차츰 복수의 씨앗을 마음속에 심게 된다.
노든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굴곡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인생의 가치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상실은 긴긴밤의 시작이지만 빛을 기다리는 마음의 깊이와 인내를 더한다. 살아남은 자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긴긴밤의 행로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든은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내면이 강한 인물이다. 기억 없는 출생과 고아원에 맡겨진 자, 그리고 소중한 이들을 잃고 살아남은 무게를 견뎌야 하는 자. 그러나 노든의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죄의식과 패배 의식으로 해체된 자아는 상처 입은 자들 간의 또 다른 연대로 삶의 불씨를 되살린다.
다. 다시, ‘우리’
치쿠와 윔보는 파라다이스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펭귄들이다. 어려서부터 둘은 단짝이었고, 커서도 각별한 사이로 유명했다. 동물원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산 둘에게 걱정이란 없었다. 하지만 펭귄 우리에 버려진 알을 둘이 품게 되면서 치쿠는 오만가지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검은 반점이 있는 불운한 알을 품지 않으려 했기에 치쿠와 윔보는 버려진 펭귄 알의 아빠가 되어주기로 한다. 두 펭귄에게 알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동물원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버려진 알은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설레는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그들은 생동감을 느끼고 알을 부화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창출했다.
둘은 함께 알을 품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동물원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고 알을 품은 윔보는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면서도 품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운 좋게 살아남은 치쿠는 마지막 숨을 붙들고 있던 윔보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알과 함께 늦지 않게 탈출하기 위해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윔보와 작별한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 꺼져가는 사랑을 지키지 못한 치쿠의 선택에 가슴이 저린다.
치쿠와 윔보의 낯선 알에 대한 사랑은 노든을 향한 코끼리들의 사랑과 맞닿아 있다. 낯선 누군가를 포용하고 희생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닌가 보다. 특히 동화에서는 폭력적 강자인 인간이 아닌 약자인 동물들의 연대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연대의 정신은 연약한 존재들의 가냘픈 삶을 비추는 지극히 밝은 별과도 같다. 사회적 연대가 공동의 이익을 향한 투쟁과 쟁취의 과정이기도 하나 이렇듯 누군가의 삶을 잠잠히 밝히는 내재된 가치임이 동화로 형상화된다.
한편, 불타는 파라다이스 동물원을 빠져나오던 중 노든과 치쿠는 피란길을 함께 한다. 코뿔소와 펭귄. 두 인물이 이제 긴긴밤을 함께하게 된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밤과 검은 길을 그들은 함께 걷는다.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우리’가 되었다. 앞을 향해 걷기만 하던 그들에게 마침내 새로운 목적지가 생겼다. 바다. 치쿠는 바다에 닿으면 다른 펭귄들을 만나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말한다. 노든은 치쿠가 말한 바다라는 곳이 궁금해졌고 파란 지평선을 상상하며 다시금 생동하는 마음을 느낀다. 상실의 아픔으로 가슴 언저리가 욱신거리지만 무의미한 삶은 노든에게 익숙치 않다.
하지만 펭귄에게 사막과 초원은 너무나 혹독했다. 노든의 보살핌에도 치쿠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치쿠는 노든에게 펭귄 알을 부탁한다. 치쿠는 그렇게 떠났지만 노든은 슬퍼할 새도 없다. 알의 온기가 식지 않게 하려고 알을 앞발로 품고 노심초사한다. 노든이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끼며 긴긴밤을 걱정하던 그 밤에 새끼 펭귄인 ‘나’가 태어난다.
3. 공간의 서사를 통한 정체성 추구
후반부 서사는 연대의 가치를 이룬 인물들의 정신적 상속자인 새끼 펭귄이 자아를 찾아 바다에 이르는 구조를 취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노든과 새끼 펭귄의 행로의 핵심인 야생의 길과 바다의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정체성의 확장을 논해 본다. 또한 길에서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하는 노든이 생애 마지막 힘을 다해 바다를 향하는 여정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가. 혹독한 야생에서 ‘나’로 살아남기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다.”
새끼 펭귄, ‘나’는 이름이 없다. 정체성을 시대 가치로 여기는 오늘날 이름 없는 존재는 억압받고 불우한 존재로 예상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펭귄은 처음 동화의 문을 열며 자신을 존재하게끔 한 아버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동화는 작은 알에 불과했던 자신을 살아 있게끔 한 아버지들을 향한 헌사이자 자신의 존재 과정이다.
전쟁의 포화와 거친 피란길 속에서도 살아남은 새끼 펭귄. 노든은 펭귄에게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바로 치쿠와 윔보다. 남겨진 자들이 품고 살아갈 죄책감과 상실감을 뒤로 한 채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교육한다. 나를 살린 그들의 몫까지 살아내는 것이 무거운 아픔을 견뎌야 하는 까닭이다.
작품에서 야생의 길은 인물들이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자 폭력성이 잠재된 공간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은 자유를 허락한다. 들고 남을 통제하지 않고 사방이 뚫려 있는 길은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가능성의 공간으로 표상된다. 고아원과 동물원은 안락함과 평화를 보장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인물들의 정체성은 공간적 제약이 있는 곳에서 인간의 통제로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이 속한 공간이 곧 자신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해 줄 새로운 공간을 모색한다. 노든과 새끼 펭귄에게 야생은 현실과 대비되는 그곳을 향한 희망의 공간이다.
그러나 사막의 긴긴밤은 인간의 탐욕이 도사리는 위협적 공간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 인간은 다시 한번 흰바위코뿔소를 포획하려는 시도를 한다. 노든은 감춰왔던 복수심이 타올라 인간에게 대적했고 빗소리에 묻힌 새끼 펭귄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인간이 쏜 총알이 난사되고 새끼 펭귄이 위험에 처하자 노든은 복수를 포기하고 새끼 펭귄을 물고 도망친다. 복수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 새끼 펭귄은 복수하지 말고 자신과 살자며 노든을 향해 호소한다. 노든은 그 모든 인생의 회한을 삼키며 그저 눈물을 흘린다.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한 두 인물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진다.
개발심리학자인 에릭슨에 따르면. 자아정체성은 개인이 청소년기 동안에 획득해야 하는 일종의 포괄적인 성취로서 성인기 이전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유래하며 성인기의 과제를 해낼 수 있게 한다. 자아정체성 안에는 개인적 정체감 이외에도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상 및 정체성과의 내적 연대를 유지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곳 또 그 안에서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개인의 정체감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러한 모든 경험은 타인 또는 외부환경과의 교섭을 통해서 일어난다. 따라서 새끼 펭귄이 속한 야생과 노든과의 친밀도는 어린 펭귄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보여주는 방향타가 된다.
새끼 펭귄은 그간 노든의 보호 속에 척박한 삶을 어떻게든 이어왔다. 그러나 최대치의 폭력을 눈앞에서 경험함으로써 노든과 선대의 아버지들이 겪었던 인생의 고통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저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였던 이전과는 달리 긴긴밤의 구체성을 깨닫고 성장한다. 이처럼 새끼 펭귄에게 길은 체험의 직접성을 통해 자아를 갱신해 나가는 성장의 공간이다. 펭귄은 내면을 확장하고 외적인 적응력을 높여 아버지들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간다. 이 모든 기적의 발판은 유일한 타인인 노든과의 가슴을 울리는 경험에 기반한다.
나. 노든의 초록색 지평선
점점 노쇠해져 가는 노든은 새끼 펭귄에게 빨리 바다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둘 중 누구도 본 적이 없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일한 가족인 두 인물은 바다를 찾아서 걷고 또 걷는다.
”바다에 도착하면 그다음은요?”
”그다음에는 다른 펭귄들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야지. 바다에서는 바람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어서 먼 곳도 금방 갈 수 있대.” [중략]
”바다에 도착하면, 나는 더는 같이 갈 수 없어. 너 혼자 가야 돼.”
바다를 찾게 되는 상상만으로도 들뜬 새끼 펭귄은 헤어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미 수차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노든이 어린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작별이 될 것이다. 노든의 쓰라리고 착잡한 마음을 어린 나는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러기에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를 품은 현재가 미래로 갈 수 있는 동력은 새로움을 향한 갈망이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 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
노든은 새끼 펭귄을 바다로 보내준 뒤 인간들에게 복수하면서 살고자 한다.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인 인간들을 파멸시켜야 절망을 끝낼 수 있으리라. 세상에 혼자 남은 흰바위코뿔소인 노든은 돌아갈 곳도 찾아야 할 누군가도 없다. 관계가 끊어지면 잊고 있던 불행이 다시 노든의 인생을 덮칠 것이다. 새끼 펭귄마저 떠나고 나면 텅 빈 자신을 마주할 노든은 조금씩 나를 떠나보낼 채비를 한다.
이제 노든은 사막에서 완전히 기력을 잃고 쓰러진다. 인간들이 노든을 발견하고 구조를 위해 응급처치를 하는 사이 새끼 펭귄은 빨리 떠나자며 노든을 재촉한다. 그러나 노든은 자신의 지평선은 초록 평원이라며 남는 쪽을 택한다. 기력이 없는 데다 계속 동행한다면 펭귄에게 오히려 짐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목숨을 빚진 자인 노든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뒤 새끼 펭귄을 자유케 한다.
노든은 자신의 이상향도 아닌 바다를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다. 그에게 지평선은 그저 모든 고통을 잠재우고 하루하루의 의미를 부여해준 미지의 공간이다. 새끼 펭귄이 바다의 지평선을 향한 것은 자기 발견을 위한 주체적 목표성을 띤다. 그러나 노든의 지평선은 의미가 다르다. 그는 굴곡진 삶에서 살아남은 빚진 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바다’라는 추상적 목표를 설정하고 도달하는 ‘과정’에 충실했다. 노든은 새끼 펭귄이 바다에 이르러 새 삶을 찾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자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노든이 이르러야 할 지평선은 공간적·물리적 의미 외에도 새끼 펭귄이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순간의 의미도 내포한다.
초록 평원은 노든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곳이자 모든 고통의 산실. 그리고 마지막 삶의 목표를 실현하고 퇴장을 준비하는 생애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다양한 사건을 통해 작가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서사의 방향을 전환해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긴긴밤과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지평선에서 두 인물은 작별한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코뿔소가 되어 자신의 곁에 남겠다는 새끼 펭귄을 다독이는 노든이다.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갈 때 노든에게 코끼리들이 건넨 말이기도 하다. 노든을 움직였던 그 말은 새끼 펭귄에게도 여전히 힘을 작동한다. 눈시울을 뜨겁게 한 작품 속 명장면 중 하나이다. 노든의 말이 이토록 처연한 까닭은 노든의 긴긴밤이 이제 끝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다. 모든 것을 품게 한 나의 바다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중략]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바다를 마주한 새끼 펭귄은 자신에게 새겨진 모든 기억을 품는다. 자신의 아버지들을 떠올리고 진정한 자신을 마주한다. 이제 새끼 펭귄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삶은 어디로 향할 것인지. 자신이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던 노든을 떠나 곧 바다로 뛰어들 운명을 선택한 자 또한 자신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향해 새끼 펭귄은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다. 남겨진 발자국은 그가 사막과 초원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펭귄임을 기억한다. 작품 속 누구도 안주를 반기지 않는다. 내가 마주한 세상, 내가 관계 맺는 모든 이가 곧 나이기 때문이다. 삶의 고난은 힘겹지만, 그로 인해 나는 더욱 선명해졌다.
바다는 앞선 모든 인물을 향한 위로의 공간이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은 결국 바다로 수렴된다. 바다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 없었던 중층적 시련은 바다에 이른 새끼 펭귄에 의해 내재화되고 정체성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파란 지평선을 향한 여정은 비단 새끼 펭귄 개인적 차원을 넘어 작품 전체의 인물, 나아가 독자를 향한 작가의 초대이다.
4. 나가며
- 미완의 긴긴밤
<긴긴밤>은 아동문학의 진부함을 벗어나 작품성과 감동을 동시에 획득한 수작이다. 오늘날 아동청소년은 과거의 연령적 개념을 떠나 성인이 되는 과도기에 있는 사회학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자극이 넘쳐나는 오늘날 교훈적이거나 교과서적인 성장 지도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작품은 연대와 정체성이라는 인생의 두 축을 청소년의 관점과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으로 잘 그려냈다.
따라서 소년소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작품에 함의된 다양한 주제에 대한 독후 활동을 해 보길 제안한다. 책 읽기는 작가가 작품 곳곳에 숨겨놓은 질문을 찾아 나가는 능동적인 활동이다.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거기에 대한 답 사이에 끊임없는 서사 전개와 인물의 변화가 존재한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는 상상 속 세계에 주인공들을 던져놓고 그들의 선택과 운명을 존중하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있다. 작가는 결코 서두르거나 인물들의 선택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작품의 전개가 그러할수록 독후 활동의 창의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상상 속 세계와 현실 세계는 모두 녹록치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떠올려 보면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이자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본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소설 세계의 서정성과 인물들의 성장성을 현실 세계와 비교해보고 나 자신의 시점으로 교체해 볼 수 있다. 독자들은 경쟁과 경계로 견고해진 세상을 보며 자신의 주변에 노든과 코끼리들, 치쿠와 윔보, 새끼 펭귄은 누구인지 연상해 볼 수 있다. 또한, 동화 속 인물들에 자신의 감정과 의식을 투영해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그러한 선택은 인생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 본다. 적극적인 읽기란 결국 문학의 메시지를 나의 것으로 치환해보고 조금씩 그 답을 깨달아가는 성장의 일환이다.
감동과 여운의 긴긴밤은 우리 삶과 닮았다. 끝나지 않고 계속되지만, 그 속에서 틀림없이 성장하고 세계는 확장된다. 그래서 인생은 더욱 아름답다. 고정된 자아와 세계만이 존재한다면 긴긴밤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 곧 자신을 찾아 새로운 여행을 떠날 아동청소년 독자들이 갈림길에 마주했을 때, 노든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고단한 여행길에 믿을만한 길동무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고단한 여행길에 우리는 각자 어떤 선택을 할지 자문하게 되는 밤이다.
어른들도 읽으면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다르지만, 연대가 미완성의 자아를 강하게 성장시키는 시선이 와닿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