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생산적인 하루
생산적인 하루
  • 홍기확
  • 승인 2023.07.28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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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42>

일반적인 직장인은 1년에 50개의 연락처를 추가한다고 한다. 나아가 활발한 직장인은 1년에 100개의 연락처를 추가한다고 한다.

얼마 전 내 연락처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니 2,200명이었다. 2004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가족, 친척을 빼니 19년간 100개의 연락처를 추가한 것이니 나는 활발한 직장인이었다.

여기서 내 특유의 불필요한 기획이 시작되었다.

1번 스텝. 하루에 100개의 연락처를 지운다.

2번 스텝. 20일간 2,000개의 연락처를 지운다.

3번 스텝. 200개가 남으면 그 숫자를 평생 유지한다.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이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지인의 수는 150명이라고 주장한다. 이 숫자를 ‘던바의 수’라고 한다.

이렇게 숫자를 지우고, 사석에서 서귀포시장님과 대화를 하다 물어보았다.

“시장님은 휴대폰에 전화번호가 몇 개 저장되어 있으세요?”

툴툴한 시장님은 휴대폰을 꺼내며 보여주신다. 보아 하니 5,900여명. 역시 마당발답다. 나는 이어서 물어보았다.

“저는 2,200명이 저장되어 있는데 얼마 전에 많이 지우고 400명만 남겼습니다. 밤낮으로, 주말에도 계속 전화가 와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서요.”

대화는 이어진다. 수필의 성격상 내용으로 보아 화자(話者)를 판단하시길. 힌트는 쌍따옴표 교대로 화자가 바뀐다.

“전화번호 지우면 전화 안 오냐?”

“제가 지웠던 번호는 모르는 번호나, 불필요한 번호가 되기 때문에 전화 안 받으려고요.”

“참, 나. 너랑 나랑 다른 점이 그거야. 냉정한 녀석아. 전화번호가 많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고, 다 연락하고 만나지더냐? 그걸 아깝게 지워? 그냥 가끔 문자나 보내고 안부나 묻고 그러면 되지.”

“간단한 거였네요.”

나는 아차 싶어 전화번호를 어떻게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여기저기에 접속해 보았다. 그러던 중 한참 동안 휴대폰으로 꼼지락대던 시장님이 뒤에서 웃으며 말한다.

“기확아, 나 방금 97명한테 문자 보냈다. ‘잘 지내시죠?’ 뭐, 이런 내용으로 말이야. 이러면 끝이야.”

생산적인 하루였던 첫 번째 사유. 아는 사람, 즉 지인(知人)이 모두 나의 진정한 친구, 지음(知音)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다.

시장님은 차량의 뒷자석에서 10분만 잔다고 하고서는, 1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고 계셨다. 그러다 다짜고짜 일어나서 휴게소를 들르자고 하신다. 나도 운전 중에 약간 졸렸던 터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저는 일과 삶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바로 일이 끝나고 내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서 일을 빨리 끝마치려고 노력합니다.”

역시 툴툴한 시장님. 야인(野人=백수) 생활을 오래 하신지라 답변도 의미심장하다.

“나는 집만 나오면 내 시간이야. 일이던 뭐든 그냥 집만 나오면 노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일하는 걸 피하지 않고 겁도 안 먹는다.”

아차 싶었다. 5번의 직장을 거치며 중간중간 백수를 하던 시절(명확히 말하면 무려 구직자나 취업준비생 신분)에 한결같이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산적인 하루였던 두 번째 사유. 초심(初心)을 생각하자. 까무러쳐도 자식 먹여 살리는 일거리와 밥거리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

‘생산적(生産的)’이란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1. 생산에 관계되는.

2. 그것이 바탕이 되어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뜻풀이 중 나는 두 번째 의미처럼, 대화가 바탕이 되어 새로운 하루가 생겨난 것 같다.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경영지도사(마케팅),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일상의 조각모음』, 2018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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