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언제 농부가 될까?
언제 농부가 될까?
  • 홍기확
  • 승인 2023.07.2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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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조각모음]<41>

흔히 평생직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조기퇴직, 기술 변천의 급속도로 20대까지 공부한 지식으로 60대까지 써먹는 평생직장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평생직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공식도 깨졌다. 내가 태어났던 1979년에 있던 직업들 다수가 2023년에는 사라졌거나 아니면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 생각해보라. 1979년에 가장 인기가 좋던 ‘종합상사 직원’이란 직업을 지금 MZ세대가 뭔지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생직업과 평생직장은 정말 없을까에 대해 십 수년간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먼저 평생직업.

내가 어떤 직업을 경험하던, 마지막 직업은 농부(農夫)다. 불변이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의 소위 4차 산업혁명까지 직업의 이름과 개념이 변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 농부다.

산업혁명 이전 농경사회에는 실업률이 0%였다. 다시 말해 지구에 노는 사람이 없었다. 현대 경제학에서 꿈꾸는 사회의 ‘완전고용’이라는 이상향은, 역설적으로 현대 경제학 이전 인류의 역사 전체에 구현되고 있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실업을 만들고 지구를 망친 것이다.

농경사회는 모든 사람이 노동을 했다. 어린아이는 그보다 어린 아이를 돌보거나, 청소년은 일손을 보탰고, 노인이라도 죽기 직전까지 마늘을 다듬더라도 집안에서 혹은 농사일에서 기여를 했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그래서 은퇴 준비를 시작한 30살 때부터 무려 십 년이 넘는 고민 끝에 선택한 평생직업이 농부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부고란에 ‘前 000근무’나 ‘00의 아버지’가 아니라 ‘농부(農夫), 홍기확’으로 남고 싶다. 첫 번째 유언(遺言)이다.

“내가 죽은 후 죽는 날까지 현역(現役)으로, 농부(農夫)라는 직업을 가지며 살았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후손들도 가능하면 마지막 직업은 농부를 선택하는 것을 고려하라.”

다음은 평생직장.

농부를 하며 함께 해야 할 일은 발해의 언어였던 ‘가림토 문자’의 해독이다. 아직까지 아무도 글자의 뜻을 풀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이 내가 이 일을 해야할 단 하나의 이유다. 그래서 집에 서재를 꾸미고 평생직장인 ‘집’에서 해독을 할 것이다.

발해 문자 해독은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30대~50대는 한창 일할 나이니 60대 이후에 직장이든 주된 일자리든 끝내고 하려 한다. 내가 죽을 때까지 못하면 유언(遺言)으로 남기면 된다. 아들이든 손자든 유언이라는 데 알아서 하는 척이라도 하겠지.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도, 같은 역사학자였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이 ‘본인이 작업중이던 역사책 집필의 완성’이란 유언을 이어 받아 완성한 것이다.

아버지인 사마담은 관리로 재직해 쉽게 자리를 못 비워 책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아들인 사마천은 아버지 사후에 백수라 여행을 다니며 역사 유적지를 답사를 통해 자료를 고증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연구자료와 아들의 정리가 합쳐지지 않았다면, 둘 중 한 명의 힘만으로 방대한 역사서를 집필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죽기 전까지 발해 문자 해독을 못 한다면 유언으로 남기면 된다. 두 번째 유언이다.

“홍씨 집안의 자녀들은 대대로 은퇴 후 발해문자를 해독하는 데 힘쓰라. 이 유언은 해독 이전까지 유효하다. 만약 발해문자를 해독하는 후손이 있다면, 그 후손부터는 다른 꿈을 꾸어도 좋다.”

최근 농부가 되기 위해서, 농사에 대해 미리 배우기 위해, 모 대학의 농학과(農學科)를 편입했었다. 항상 공부만 하는 나는 아내에게 농학과에 원서 넣은 것을 숨겼다. 하지만 조금 눈치가 보여 결국 말했다.

아내는 말이 없다.

침묵이 일다가, 그러다가, 의심쩍은 눈빛으로 묻는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거 없어?”

내가 미쳤지. 낚였다. 생각 없이 대답을 해 버렸다.

“바둑도 거의 아마추어 단급 실력이니 그것도 단증 따고, 서예도 오랫동안 했는데 문예대전에 나갈 수 있도록 연습하고, 동양화 같은 것도 급한 일 끝내면 배우려고.”

그러자 아내도 미쳤다. 낚였다. 대화의 맥락을 완전히 놓치며 대답한다.

“와! 당신 동양화 같은 거 잘 그릴 것 같아. 그거는 꼭 배우면 좋겠다.”

흠. 이러니 같이 살지.

자. 그런데, 나는 언제 농부가 될까?


 

일상의 조각모음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04~2010 : (주)빙그레, 파주시, 고양시, 국방부 근무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경영지도사(마케팅), 박물관 및 미술관 준학예사, 관광통역안내사(영어)
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지식과감성#
『느리게 걷는 사람』, 2016년, 지식과감성#
『일상의 조각모음』, 2018년, 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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