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7 09:10 (토)
“공간의 멋과 맛, 그건 바로 다양성에 있답니다”
“공간의 멋과 맛, 그건 바로 다양성에 있답니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7.04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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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학교 공간을 찾아] <11> 아라초등학교

거대학교로 바뀌면서 ‘공간 이어 붙이기’
‘사이공간’을 적극 활용해 활력 불어넣어
아라초등학교. 미디어제주
아라초등학교. ⓒ미디어제주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학교를 향해 ‘교도소와 같다’고 혹독한 비판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널렸다. 게 중에 하나만 들어보자. 복도를 따라 방이 연속된다. 교도소와 학교가 지닌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걸 한마디로 “다양성 없는 공간이다”고 표현한다.

학교는 수많은 아이들이 노는 공간이다. 전혀 다른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일률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걸 알면서도 학교 공간은 같은 형태를 고집한다. 좀 더 관리하기 편하도록 꾸며진 게 학교 공간이다. 중앙현관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날개를 펴듯 교실을 갖춘 그런 학교 공간은 일제강점기 이후, 하나의 고정된 틀이었다.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은, 하이테크 시대를 살고 있으나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공간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만나는 공간은 정해져 있다.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평형의 크기만 차이 날 뿐, 이 집과 저 집의 공간은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그런 공간만 보는 아이들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당연히 아이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학교여야 한다. 학교는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공간의 다양성을 불러일으키고, 공간에 대한 멋을 가르쳐줄 수 있는 매우 좋은 곳이다.

작은학교에서 거대학교로 바뀐 아라초등학교는 각각 특성을 지닌 공간이 이어붙으면서 마치 미로와 같은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작은학교에서 거대학교로 바뀐 아라초등학교는 각각 특성을 지닌 공간이 이어붙으면서 마치 미로와 같은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이런 점이 오히려 공간에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미디어제주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학교 공간을 바꾸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진행된 학교공간재구조화 사업은 그나마 정형화된 학교 공간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런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아라초등학교(교장 이창환)를 찾았다. 아라초등학교는 자그마한 시골 학교였다가 지금은 제주에서 가장 큰 ‘거대학교’로 변했다. 학급수로 따진다면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학교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온 학교공간의 틀을 고수하던 아라초는 학생수 변화에 따라 변혁을 마주하게 된다. 이어 붙이고, 다시 공간을 덧붙이는 작업이 진행됐다. 사각형과 사각형이 만났다가, 원통과 사각형의 공간이 들어앉기도 한다. 공간의 높이도 서로 다르다. 본관에 신관이 붙고, 체육시설과 급식실 용도의 공간이 다시 본 건물에 붙게 된다. 최근에는 별관도 생겼다. 한 학교에 6개의 서로 다른 공간이 이어지다 보니, 그야말로 학교는 미로가 된다. 학교 공간이 너무 복잡하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 말엔 공감할 수 없다. 학교에서 미로를 마주하는 건 뜻밖의 행운이다. 어릴 때 놀이를 생각해보자. 숨을 곳이 많다는 점은, 또 다른 장점이 된다.

공간은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 아라초등학교는 ‘재미있는 학교, 꿈이 있는 학교, 사랑의 학교’를 내걸고 있다. 아라초등학교는 전체적으로 학교 공간이라는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어느 도심의 커다란 하이테크 건축물을 닮았다. 여러 가지 오브제가 하나의 공간에서 춤추는 듯하다.

사이공간을 활용한 공간으로, 아이들이 창밖으로 의자를 돌려 앉기도 한다. 미디어제주
사이공간을 활용한 공간으로, 아이들이 창밖으로 의자를 돌려 앉기도 한다. ⓒ미디어제주
사이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미디어제주
사이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미디어제주
아라초 아이들은 사이공간에서 다양한 재미를 추구한다. 미디어제주
아라초 아이들은 사이공간에서 다양한 재미를 추구한다. ⓒ미디어제주

늘어나는 학생수에 비해 놀 공간이 적었으나, 서관에 변화를 줬다. 서관은 지난 2000년 제주시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은 공간이다. 넓은 통창으로 볕이 들어온다. 교실로 나온 아이들은 복도에 새로 만들어진 공간을 놀이터 삼아 논다. ‘사이공간’의 활용이다. ‘사이공간’은 네덜란드 건축가 알도 반 아이크의 작품을 모델로 삼는데, 아라초의 사이공간은 층별로 구성되었다. 갓 만들어져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사이공간도 있고, ‘도란도란쉼터’나 ‘오솔놀이터’ 등의 이름을 부여받은 공간도 있다. 아이들은 마음껏 놀다가, 가볍게 책을 읽기도 하고, 토론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여느 카페에서 보는 풍경마냥, 의자를 창가로 죽 늘어서게 만들어서 바깥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도심의 학교에서 도심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멋과 맛이 있음을, 아이들은 이들 공간에서 깨우친다.

낙서가 있을 법한데, 낙서가 없는 특이한 공간도 이 학교에서 만날 수 있다. 가장 흔한 낙서 공간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공간이다. 그런데 5층까지 이어지는 ‘어린왕자 계단미술관’은 수많은 아이들이 오르고 내리지만 낙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아이들은 알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라는 곳을. 공간에 애착이 생기면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애착을 지닌 공간은, 아주 특별한 장소가 된다. 학교에서 공간의 다양성을 마주한 아라초 아이들이 커서, 어떤 모습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그릴지 자못 궁금하다.

커질대로 커진 아라초등학교. 이젠 바깥공간에 변화를 주고 있다. 본관과 신관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회색지대’에서 ‘컬러지대’로 바뀌었다. 아라초등학교 전교학생회가 이 공간의 ‘이름공모전’을 벌이고 있다. 아울러 학교의 작은 숲은 제주시 지원을 받아 변화를 꿈꾸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아이들은 새로운 학교숲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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