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인력 ‘60명 이상’ 제한…도내 업체 도전 차단
정량 평가에 뒤지며 입찰 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지역상생’ 네 글자는 행정을 하는 이들에겐 매우 매력적이다. 선전 도구로서 이만큼 매력적인 게 있을까 싶다. 그러기에 ‘지역상생’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그렇다면 실제 적용은 잘 되고 있을까?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올해 추진하고 있는 ‘학교 통합 홈페이지 전면 개편’을 보면 그렇다고 답하기 힘들다.
제주도교육청이 학교 통합 홈페이지 개편을 단행한 건 지난 2016년이다. 올해 제주도교육청이 전면 개편을 내세운 이유는 최신 웹 기술이 적용된 홈페이지가 필요했다는 이유에서다. 그건 좋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 시대이기에 홈페이지도 변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홈페이지 전면 개편에 대한 이유는 알겠는데,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있다. 다름 아니라 제주 도내 기업의 참여를 차단했다는 점이다. 이번 홈페이지 개편의 사업 금액은 5억7000만원 규모이다. 올해 3월말 전자입찰을 진행했고, 4월에 업체를 선정했다. 이 사업을 따낸 건 제주 도내 업체가 아닌, 다른 지역 업체에 돌아갔다.
전자입찰이니, 액수를 잘 찍은 업체가 선정됐으리라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평가항목의 배점 기준에서 제주 도내 업체는 사실상 ‘배제’를 받았다. 이유를 설명해보겠다. 이번 사업은 정량적 평가 항목이 문제이다. 정량적 평가는 △경영상태 △사회적 책임 △기술 능력 △수행 실적 등 4가지를 고려하는데, 기술 능력과 수행 실적이 각각 6점으로 배점이 가장 높다.
특히 제주도교육청의 제안요청서를 보면, 기술 능력은 홈페이지를 개편할 능력이 되는 인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느냐를 따지고 있다. ‘충분한 능력을 지닌 인력을 갖춘 업체에 주는 게 맞지 않느냐’는 말을 할 이들도 있을 텐데, 제주도교육청은 그게 불가능하도록 제안요청서에 담고 있다. 바로 기술인력을 60명 이상 보유한 업체에 한해서 만점인 6점을 주도록 했다. 도내 업체인 경우 많아야 30명대의 인력을 지니고 있다. 기술 인력이 30명이면 점수는 4.8점이다. 만점인 6점과 4.8점은 1.2점이라는 틈이 생긴다. 입찰은 0.1점 싸움이다. 입찰도 하기 전에 1.2점의 간극이 발생했으니, 이번 입찰은 제주 도내 업체에겐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어쩌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벌인 셈이다.
제주도교육청은 왜 기술 인력에 이토록 목을 맸을까? 기술 인력은 특급도 있고, 고급도 있고, 중급과 초급도 있다. 단순 숫자놀음이 아닌, 실제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인력에 대한 기준만 주면 될 일을, ‘60명 이상’으로 못을 박음으로써 제주 도내 업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다른 사업도 기술 인력을 ‘60명 이상’으로 두고 있을까? 궁금해서 조달청의 전자입찰을 뒤져봤다. 지난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사업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진행한 ‘모바일 앱 구축 및 홈페이지 개편’ 사업인데, 예산이 무려 110억2000만원이다.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면 기술 인력은 수백 명은 되어야겠지만, 아니다. 정량 평가엔 기술 인력 부문이 아예 없고, 정성 평가에 투입 인력의 경험과 자질이나 기술 능력 수준만 따지고 있다. 몇 명 이상이라는 숫자놀음은 없다.
제주도교육청이 추진하는 ‘학교 통합 홈페이지 전면 개편’은 한창 사업을 진행중이다. 업체는 정해졌고, 그걸 제주 도내 업체에게 줘라고 할 성질은 아니다. 앞으로가 더 문제이다. 그렇다면 제주도교육청은 지역상생이라는 키워드를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행정가는 ‘립 서비스’가 아닌, ‘실천력’이 중요하다. 제주 도내 업체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좀 더 여유를 주자. 그게 지역상생 아닌가. 다행이라면 제주도교육청도 이번 사안의 문제를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사업의 담당 팀장이 기자에게 했던 말로 마칠까 한다. 김광수 교육감의 뜻도 이와 같을테니.
“교육감님의 공약에도 지역상생이 있습니다. 이번 사안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앞으로는 지역 업체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다각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지 업체가 오더라도 지역 업체랑 공동 수급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지역 업체 참여는 앞으로는 ‘무조건’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