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애인 지킴이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여성장애인 지킴이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 김형훈 기자
  • 승인 2023.03.22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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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부경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도움받아야 할 분들이 거절할 때 무기력해져

올해로 상담소 20주 맞아…비전도 선포하기로

“성인지 감수성 높아지면 폭력도 줄어들 것”

벌써 20이라는 숫자가 목전이다. 지난 2003년 출범한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출범 이듬해인 2004년부터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를 지키고 있는 홍부경 소장은 여성장애인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그는 상담을 하다가 감정이입이 돼 아픔을 함께 겪기도, 보람을 함께 느끼기도 한다.

“분명히 상처를 받아서 아프다고 하는데 도움을 거절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때는 제가 정말 무기력해져요.”

해가 갈수록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늘어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움의 외곽에 있는 여성장애인들이 많다. 그들에게 빛을 주고픈 심정이다. 물론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기자가 “보람을 느낄 때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홍 소장은 “아우~ 그럼요.”라며 웃으며 말한다.

“지원을 받은 장애인들이 독립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찾을 때가 좋죠. 저와 연락이 점점 끊기면 그 친구가 행복해지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그런 친구가 ‘저 결혼해요’라고 할 때, 울먹일 수밖엔 없어요. 결혼식장에 몰래 가서 모습을 지켜보기도 해요.”

여성장애인들과 함께하며 곁을 지키는 홍부경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미디어제주
여성장애인들과 함께하며 곁을 지키는 홍부경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장. ⓒ미디어제주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는 성폭력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다가, 지난 2017년부터 가정 폭력과 관련된 상담도 함께 해오고 있다. 그런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장애인은 생각보다 많다. 지난 한 해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문을 두드려 상담을 받은 경우는 3232건이나 된다. 이 가운데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가정폭력 상담은 1246건, 성폭력 상담은 1079건이다. 인식 전환이 되지 않고서는 폭력행위도 줄어들기 힘들다.

“여성을 대하는 인식이 바뀌어야겠죠.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면 타인에 대한 폭력도 줄지 않을까요?”

홍 소장이 상담에 관심을 기울인 건 농아인협회에 있을 때였다. 수화 통역을 지원하면서 상담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가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스스로 상담을 찾아 나섰기에 가능했다.

그는 도의회에 입성해 활동하고 있는 김경미 의원이 당시 소장을 맡을 때, 그와 함께 상담소의 토대를 닦았다. 출범 당시는 열악했다. 그러다 국비 지원을 받게 되면서 차츰 숨통이 트였다.

상담소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지만, 여전히 알리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연초엔 기관을 찾아다니며 상담소를 알리는 일을 한다. 알려야 하는 이유는 뭘까.

“제가 2004년 들어왔을 때 장애인 기관부터 돌면서 상담소를 알렸어요. 지금도 그런 활동을 계속 한답니다. 그러는 이유는 있어요. 매년 2월에 기관 홍보를 다니는데,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가 있어요. 몰라서 도움을 못 받는 이들이 있거든요.”

단 한 명이라도 피해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다. 상담소는 ‘제주판 도가니’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여성장애인 곁을 지켰다. 폭력 피해를 당하는 여성장애인의 든든한 버팀목임은 물론이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찾아가는 성교육’ 프로그램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자체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다. 오는 24일은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20주년 기념식을 겸해 비전도 선포할 계획이다. 비전은 뭘까.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는 여성장애인의 지킴이 역할을 항상 하고 있어요. 여성장애인 지킴이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이번 비전 선포식은 이걸 좀 더 구체화 시키려고요. 비전은 그날 알 수 있어요.”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가 20주년을 맞았다. 홍부경 소장은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져서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이 줄기를 바란다. 미디어제주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가 20주년을 맞았다. 홍부경 소장은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져서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이 줄기를 바란다. ⓒ미디어제주

상담소 출범 20년. 홍 소장이 상담소와 함께한 19년. 시간이 쌓이며 상담소의 일도 쌓인다. 그는 여성장애인들이 가정폭력을 입었을 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기를 꿈꾼다. 비장애인들은 그런 시설에서 보호를 받지만, 여성장애인들에겐 아직 그런 시설이 없다. 장애를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여성장애인을 보호해주길 기원한다. 아울러 피해를 입은 여성장애인들이 가족이랑 숨 쉴 수 있는 그런 공간도 마련되길 바란다. 여성장애인들은 귀한 꽃과 같기 때문이다.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에 걸린 문구가 인상적이다.

“향기롭고 따뜻해서 봄이 온 줄 알았는데 네가 온 거였구나.”

상담소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여성장애인들은 누구나 귀하다. 홍 소장은 오늘도 그런 이들의 지킴이로서, 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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