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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쏟아진 한라산, 탐방객 안전 위해 눈 뚫고 길 내는 발길들
폭설 쏟아진 한라산, 탐방객 안전 위해 눈 뚫고 길 내는 발길들
  • 고원상 기자
  • 승인 2022.12.2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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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국립공원, 25일부터 눈에 길내는 작업 본격 돌입
체력 상당히 많이 소요 ... 시간도 평소보다 3배 이상
모노레일 제설도 병행 ... "탐방객들 안전 위해 반드시 필요"
한라산 성판악 탐방로에서 눈에 길을 내고 있는 '러셀'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한라산국립공원.
한라산 성판악 탐방로에서 눈에 길을 내고 있는 '러셀'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한라산국립공원.

[미디어제주 고원상 기자] 지난 21일부터 나흘간 한라산에 역대급의 폭설이 쏟아졌다. 지점에 따라서는 1m에 가까운 눈이 쏟아지면서 한라산은 말그대로 눈에 파묻혔다.

지난 24일 기준 어리목 탐방로 인근에 있는 사제비에는 모두 98.3cm누적 적설이 기록됐으며, 관음사 탐방로 인근인 삼각봉에도 85cm의 누적 적설이 기록됐다. 어리목에는 63.8cm의 눈이 내렸다.

이와 같은 적설량은 12월 3주차에 한라산에 내린 눈 위로 쌓인 것이긴 하지만,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나흘간 상당히 많은 눈이 내림 셈이다.

이처럼 많은 눈이 내리면서 한라산 중턱에 있는 일부 대피소에서는 시설이 눈에 파묻혀 문을 대피소에 접근을 할 수 없을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실상 탐방로도 사라졌다.

탐방로 역시 눈에 파묻혀 사라진 상태에서 일반 탐방객들을 받을 경우 탐방객들이 길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아울러 깊은 눈을 뚫고 가는 과정에서 탈진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소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 눈이 그치자마자 눈에 길을 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탐방로를 개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탐방로가 눈에 파묻혀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길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드는데다, 작업에 나서는 이들의 체력 소모도 극심하다. 

설산에서 길을 만드는 작업을 산악용어로 ‘러셀’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몇명의 인원이 한 조를 이뤄 한줄로 눈에 길을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눈을 밟으며 다지고 사람이 지나갈 수있는 충분한 폭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소에서는 지난 25일부터 이와 같은 작업에 돌입했다. 산안안전대와 함께 13명의 인원이 한라산 정상을 갈 수 있는 성판악 탐방로에서부터 눈을 뚫고 길을 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성판악 탐방로의 경우 총 길이가 9.6km에 달한다. 탐방로가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일반인이 이 탐방로를 통해 정상까지 가는데에는 3시간에서 4시간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나흘 동안 내린 눈의 영향으로 탐방로에는 지점에 따라 사람의 허리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이와 같은 눈을 파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작업에는 상당히 많은 체력이 요구된다. 왠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도 쉬지 않고 100m를 나아가는 게 힘들 정도다. 

특히 특정 인원이 한줄로 서서 길을 만들며 전진하는 작업이다보니 선두에 있는 사람의 체력 소모가 가장 극심하다. 이 때문에 러셀 작업에서는 지속적으로 선두를 바꿔가며 길을 만들고 앞으로 전진한다. 선두에 섰던 사람은 눈을 뚫다 체력이 떨어지면 일행의 가장 뒤로 이동하고, 뒤에서 따라오며 체력을 회복한다. 그렇게 다시 선두 차례가 오면 회복된 체력을 바탕으로 눈을 뚫는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보니 소요되는 시간도 일반적인 등산시간에 비해 2배에서 3배 이상 소요된다. 

지난 25일 이뤄진 작업에서도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극심한 체력소모를 요하는 작업인데다 성판악 등산로의 경우 한라산의 모든 탐방로 중에서도 가장 긴 탐방로이기 때문에 선발대와 후발대가 나눠서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3명의 인원 중 선발대는 9명이었다. 이들이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러셀’ 작업을 하면서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7.3km에 달하는 길이다. 상당한 구간에 걸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선발대가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대피소의 입구는 눈에 파묻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선발대는 진달래밭 대피소 입구를 가로막은 눈을 파내는 작업까지 끝마쳤다.

25일 한라산국립공원 성판악 탐방로 중간에 있는 진달래밭대피소가 눈에 파묻혀 있다. /사진=한라산국립공원.
25일 한라산국립공원 성판악 탐방로 중간에 있는 진달래밭대피소가 눈에 파묻혀 있다. /사진=한라산국립공원.

나머지 후발대인 4명은 이후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아침이 밝자마자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정상을 거쳐 관음사 탐방로로 내려가는 코스를 따라 길을 내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처럼 길을 나는 것에 더해 모노레일 위로 쌓인 눈을 치우는 작업도 병행해야 했다. 그 때문에 더욱 많은 체력을 소비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모노레일이 작동을 하지 않게 될 경우 등산로 중간에서 일반 등산객의 안잔사고가 발생해도 발빠른 대처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탐방로로 일반 탐방객들을 받기 위해서는 모노레일도 반드시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작업이 어리목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까지 이어지는 탐방로에서도 이뤄졌다. 특히 어리목과 영실 탐방로는 1100도로를 통해 진입해야하는데, 1100도로의 경우 도로가 정상화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면서 러셀작업 역시 뒤늦게 시작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측에서는 하루 빨리 탐방객들에게 탐방로를 개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어리목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까지 이어지는 탐방로의 경우는 26일 오전 11시부터 5명의 인원이 투입돼 작업이 시작됐다. 

이들 5명은 약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눈 위에 길을 내며 어리목 탐방로 중간쯤에 자리잡은 만세동산까지 간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라면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직원들이 40분에서 1시간에 올라가는 거리다. 평소보다 3배 이상 걸린 셈이다. 체력 소모의 차이는 이보다 더욱 크다.

어리목 탐방로 인근에서는 보다 앞서 어승생악에 대한 러셀 작업이 이뤄졌다. 어승생악은 입구에서 정상까지 1.3km로 한라산 탐방로 중에서는 매우 짧은 코스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는 이 코스에 6명을 투입, 1시간에 걸쳐서 길을 만들어냈다.  이 덕분에 어승생악 탐방로의 경우는 26일 오전부터 탐방이 가능해졌다.

현윤석 한라산국립공원 소장은 “산안안전대 등 다른 이들의 도움도 받고 있지만, 눈이 상당히 많이 내리다보니 진척이 안되고 있다”며 “하지만 이와 같은 작업은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으로 직원들 다수가 나서 탐방로에 길을 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우 힘든 작업이긴 하지만 직원들 모두 하루 빨리 일반 탐방객들이 하루 빨리 한라산의 설경을 즐기고, 보다 안전하게 산행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심정으로 나서고 있다”며 “탐방객분들도 겨울 한라산 탐방에 나서기 전에 체온관리 및 안전사고 주의 등에 더욱 신경써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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